擧賢者(거현자)는 守令之職(수령지직)이라.
인재의 추천은 수령의 직책이다.
雖古今殊制(수고금수제)라도 而擧賢(이거현)은 不可忘也(불가망야)니라
비록 옛날과 지금의 제도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인재천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요순시대에도 인재를 기르는 방법에는 일정한 2 가지 규칙이 있었다.
가장 꼭대기 머리가 되는 인재는 태학에서 교육하였고, 하나는 만백성 중에서 뛰어난
인재를 천거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제도가 무너지고 나서 직접 현령과 군수가 인재를
추천하였다. 이 방법은 결국 근친한 사람만을 등용하여 혈족과 지인의 폐단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과거제도로 사람을 취하여 쓰는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이 방법도 비루해져서
또 다시 군현으로 하여금 인재를 천거하여 쓰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를 鄕貢(향공)이라 한다.
인재를 천거하여 국가의 일을 맡기는 것은 백성의 삶을 보살피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이방원으로 알려진 사람이 조선시대의 태종임금이다. 그에게는 조대림이라는 사위가 있었다.
이자는 임금의 사위라는 직책을 활용하여 백성을 고혈을 교묘하게 짜내었다.
자신은 뒤로 빠진 채 조선의 법률을 교묘하게 피해나가면서 앞잡이를 내세우고 재물을 갈취 하였다.
앞으로는 청렴한 척 하면서 뒤로는 갈취한 돈으로 최고의 술, 고기 최고의 옷. 대저택에 살면서
"임금의 사위가 되니 세상에 겁나는게 없구나"하면서 그 사악한 기운을 드러내니 만 백성이
조대림에 대하여 지탄을 하였다. 이에 당시 대사헌이었던 맹사성이 조대림이 국법을 문란케
하였다고 잡아다가 매를 치고 타작을 하였다.
태종은 뒤늦게 이 보고를 받고 "감히 임금의 사위를 그깟 일로 매를 치다니 당장 맹사성을 잡아다가
저자 거리에서 목을 치라" 하명하였다. 이에 영의정 성석린과 도승지 황희가 직분을 행한 맹사성을
처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극구 만류하였다. 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효수형은 그대로 집행이 되었다.
이때, 지혜로운 황희가 대신들이 일을 보는 政院(정원)에 관노를 시켜 기왓장을 모두 벗겨내도록 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태종이 까닭을 물으니 황희의 짓이었다. 임금 앞에 불려온 황희는
"정직한 신하가 죽고, 바른말을 하는 신하가 죽는데 대신들이 국가 일을 보는 정원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태종은 비로소 그의 잘못을 깨닫고 맹사성의 처형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중종 때 조광조라는 인물은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정치를 실현하면 요순시대처럼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라는 학문을 주장한 학자이다. 그는 천하의 명문 대학자인 김광필의 수제자고, 그의
깊은 학문이 전국에 명성이 자자하니 성균관 학생 200명이 그를 벼슬을 줄 것을 천거하기도 하였다.
중종은 그에게 대과에 급제하면 받을 수 있는 6품 벼슬을 내렸으나 조광조는 사양하고 당당하게
시험을 보아서 장원급제를 하고 관직에 나간 사람이다. 이때 그의 나이가 34살이었다.
조광조가 그의 이상정치를 실험하면서 요순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려하자 시기, 질투하는
간신모리배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남곤과 심정이라는 간신모리배들이다.
남곤과 심정은 조광조를 죽이기 위해 홍경주를 끌어들였는데 홍경주의 딸이 바로 임금의 후궁이었다.
홍경주는 비원의 나뭇잎에 꿀을 발라서 글을 써 놓았다. 走肖爲王(주초위왕)란 글자를 꿀을 바른 붓으로
나뭇잎 마다 써서 벌레가 파먹도록 한 것이다. 주초위란 趙(나라 조)란 뜻이니 즉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이 나뭇잎을 임금에게 전한 여인이 바로 임금의 후궁인 홍경주의 딸이었다.
중종은 조광주에게 사약을 내렸고 영의정 정광필, 안달등이 임금에게 고하여 만류하였으나 듣지를 않았다.
천하의 위대한 인재인 조광조가 중종의 어리석음과 간신모리배들의 협잡에 의하여 죽어간 것이다.
이 당시 남곤과 심정의 두 간신모리배들은 계속 아첨과 협잡을 통하여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고
후한이 두려운 선비들에게 파직과 사약을 내리게 하여 100명에 가까운 인재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기묘사화이다.
태종은 어진 신하의 말을 들었으나 중종은 신하의 충언을 듣지 않았다.
하늘이 내린 인재를 스스로 거부한 우매한 임금, 현명한 임금의 두 예화라 할 수가 있다.
작금의 증산도 단체를 보면 그 우두머리의 인재등용에 관한 우매함을 엿 볼 수 있다.
고소질과 뻔뻔함이 묻어나는 사위란 자의 행실과 간신모리배 아첨꾼이 판을 치는 곳에
어찌 후천개벽이 존재할 수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천자가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그 비겁한 행위는
스스로 자신감을 상실한 대표적인 언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충직하고 강직한 인재는 백성의 삶을 중심으로 충직하고 강직할 뿐이다.
간신모리배를 볼 줄 모르는 자가 한낱 미물과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모리배와 협잡을 하니 어찌 미물이라 아니 부를 수 있겠는가.
증산도의 안경전이 헤아려야 할 대목인 동시에 간신모리배들이 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이다.
경전도를 박살내고 증산도를 살리는 혁명은 댓글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