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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4 21:01
[옥산진첩] 솥을 얻고 장량을 얻는다
 글쓴이 : 칠현금
 
浮烟疑薊樹 遠聚滴居庸. 髥友固吾御 茅蘆障隙風.
西子亦難逢 魯魚未陽舍. 扁舟秋水歸 是范是張也.
연무와 계수가 미혹하지만, 멀리 거용관이 뚜렷하다.
(송림을 벗하여 곤오와 어숙에 이르니,) 모옥초려는 틈새의 바람을 막아준다.
서시는 역시 만나기 어렵고 노어같아 따사로운 집은 아니다.
조각배 가을 강에 돌아오니 이는 범씨요 장씨니라.
 
[譯] 계문연수가 나타나고 멀리 거용관이 보이는데, 송림을 벗하여 곤오와 어숙에 이르니 모옥초려에서 쉬어간다. 서시같은 미인도 없고 따사로운 집도 아니다. 조각배가 돌아오는데 범씨와 장씨가 온다.
 
[해석] 옥산진첩에서 이 부분은 오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연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거용관을 바라보면서 묵어가는 밤에 범씨와 장씨를 만난다는 것인데, ‘髥友固吾御’라는 구절은 추후 확인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髥宇昆吾御’ 정도로 보고 의미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아 이렇게 해석한다. 솔잎을 나타내는 글자로 연행기에서 ‘髥’이란 글자를 취해 쓴다. 송림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곤오와 어숙은 지명으로 풀이되는데, 지명 이전에 곤오에 대하여는 역사적 스토리가 있다.
 
두보 추흥 제8수
昆吾御宿自逶迤 (곤오어숙자위이)    昆吾(정자)御宿(냇물)길은 구부려져 있고
紫閣峰陰入渼陂 (자각봉음입미피)    紫閣峰(누각)그늘은 渼陂(저수지)잠겨있다네.
香稻啄餘鸚鵡粒 (향도탁여앵무립)    앵무새가 쪼다 남긴 香稻(벼)낱알
碧梧棲老鳳凰枝 (벽오서로봉황지)    봉황이 깃들어 늙는 碧梧桐의 가지.
佳人拾翠春相問 (가인습취춘상문)    佳人은 花草를 캐며 봄에 서로 안부를 묻고
仙侶同舟晩更移 (선려동주만갱이)    仙人들은 함께 배를 타고 밤이면 더욱 더 이동한다네.
綵筆昔曾干氣象 (채필석증간기상)    文彩가 옛날에는 天子를 움직일 수 있었는데
白頭今望苦低垂 (백두금망고저수)    흰 머리로 바라보는 지금 괴로이 고개를 떨군다.
 
위 두보의 추흥8수에 곤오와 어숙이 등장한다. 자각봉(紫閣峰)은 가을을 나타내는 누각으로 보기도 하고 고유명사로도 풀이한다. 미파(渼陂)는 장안 서쪽의 저수지라고 한다. 곤오와 어숙이 등장하고 모옥초려가 나온다면, 이러한 배경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근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실록 > 광해군 9년 정사(1617,만력 45) > 6월27일 (경신)
제대로 이지도 않은 띠풀집과 세 층의 계단을 흙으로 쌓은 집에 거처하였는데도, 아주 먼 옛날부터 다스림에 대해 말할 때면 반드시 요순(堯舜)을 칭한다. 그리고 하대(夏代) 말기로 내려와 곤오(昆吾)가 기와를 구운 것에 대해서 검소한 덕을 숭상하는 임금이 이미 사치스럽다고 하였다. 
 
위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조의 기사는 모옥초려가 곤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곤오에 대하여는 별로도 논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우선 하우시절에 곤오가 주정을 제조했다는 것은 정설이다. (夏后時鑄鼎於昆吾) 기록상으로는 <竹書紀年>에 하나라 제8세 제분 33년에 곤오씨의 아들을 유소국에 봉했다고 한다. 이는 제분 이전에 곤오씨족이 있었다는 것인데, 중국사에는 청동기의 제작과 노나라 건국과 관련지어져 있기도 한데, 진주소씨晉州蘇氏 족보서문 <부소보서扶蘇譜序>에 따르면, 곤오는 한국桓國을 세운 한인천제 축융의 61세손으로 태하공 기풍(己豊)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그의 족성族姓인 己를 씨칭氏稱으로 가진 제곡고신의 학정을 피하여 그의 일족을 이끌고 단국檀國의 홍제에게 귀순하여 불함산 북쪽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소씨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전한다.
 
곤오는 한인천제의 후손으로서 곤오를 족성으로 가지고 있었고, 제곡고신은 황제의 아들로서 기己를 씨칭으로 받은 집안이었는데, 족성은 모계집단이고, 씨칭은 부계집단이므로 기己라는 글자를 종족명에 붙였어도 같은 혈족 다른 집안이었던 사연이 있다.
 
<좌전左傳> 魯昭公 12년 기록에는 “옛날에 선왕 웅역熊繹이 창업을 할 때 형산에 있었는데, 그곳이 길을 울타리로 막고, 쪽빛실로 가리듯, 풀이 무성한 곳이었다. 황조皇祖가 백부 곤오였다. 옛날에 허락한 이 집이었다”라는 말이 나온다. 웅역 혹은 웅색의 선조가 곤오인데, 진주소씨족보서문에 나오는 적제 한인천제의 61세 손 기풍己豊의 아들 흘紇이 ‘좌전’에서는 제요帝堯의 신하가 되어 명문거족으로 뿌리를 내리었는데, 초를 창업한 곤오의 후손 웅역이었다고 말한다. 즉 곤오족도 웅씨족의 일파라는 말이다. 초나라는 형초에서 일어났는데, 초나라의 계열이 축융씨 유웅씨 계열이며 거기서 청동솥을 제작하였다는 것이다. <좌전左傳>은 이를 곤어지허(昆吾之虛)라고 하고 유융주(有戎州)라고 하였으며 그 곳에 기성족己姓족이 산다고 하였다. 유융이 육웅, 축융이고 유웅인 것이다.
 
거용관과 계문연수는 황도팔경의 하나이다. “거용첩취(居庸疊翠 거용관의 첩첩한 푸른 산)ㆍ옥천수홍(玉泉垂虹 옥천에 드리운 무지개)ㆍ태액추풍(太液秋風 태액의 가을바람)ㆍ경도춘음(瓊島春陰 경도의 봄빛)ㆍ계문비우(薊門飛雨 계문의 내리는 비)ㆍ서산적설(西山積雪 서산의 쌓이는 눈)ㆍ노구효월(蘆溝曉月 노구의 새벽달)ㆍ금대석조(金臺夕照 금대의 석양 빛)를 꼽아오다가 영락(永樂) 연간에 관각(館閣)에 제공(諸公)들이 계문비우를 계문연수(薊門煙樹 계문의 연기 어린 나무)로 고쳤더니, 건륭(乾隆) 16년에는 옥천수홍을 옥천박돌(玉泉趵突 옥천의 출렁거리는 물결)로, 서산적설을 서산청설(西山晴雪 서산의 개인 눈)로 고치고 계문연수는 계문비우로 환원하였다.” 하였다.(김명창(金明昌)의 《일사(逸事)》)
 
서자(西子)는 춘추 시대 월(越)나라의 미인이었던 서시(西施)를 가리킨다.
 
고봉집(高峯集) > 고봉속집 제1권 > 시(詩)
편주로 남월에 가 소선을 조문하면서 / 扁舟適越吊蘇仙
백학봉 앞에서 한번 슬퍼한다네 / 白鶴峯前一悵然
무너진 집에 지금도 왕찬의 우물이 남아 있고 / 廢宅尙留王粲井
먼 나라에 부질없이 유주의 시편을 전파했네 / 要荒空播柳州篇
강산은 변함없는데 사람은 어디에 있나 / 江山不改人何在
모죽은 찾기 어려워라 자취 이미 옮겨 갔네 / 茅竹難尋跡已遷
우두커니 서서 두 줄기 눈물을 흘릴 만하니 / 延佇可堪雙下淚
가련한 것은 당일 어진 이를 버린 걸세 / 最憐當日棄名賢
 
[주D-001]왕찬(王粲)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자는 중선(仲宣)이다. 박학다식하였고 문사(文詞)가 넉넉하였다. 한말(漢末)에 형주(荊州)로 피난하여 유표(劉表)에게 의지하였고, 뒤에는 위(魏)에서 벼슬하여 관직이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주D-002]유주(柳州) :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좌천되어 유주 자사(幽州刺史)를 역임했으므로 유종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고봉집의 국학고전원의 주가 참으로 이채롭다. 유종원이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역임했으므로 유주(柳州)가 유종원을 가리킨다고 한다. 유주(幽州)는 단군이 도읍한 곳이고 아사달 평양인데 거기가 유주(幽州)이고 유주(柳州)라고 한다. 북경 연경 유성 계문연수 곤오 등 일련의 지리적 관계가 절묘하게 얽힌다. 현대판 역사가 얼마나 극심하게 왜곡되어 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데, 바로 이 옥산진첩이 그 중첩되고 질곡된 구조 속에서 전체를 얽어내어 꿰매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건, 계문연수가 나오고 거용관이 나오고 거기서 곤오 어숙이 등장하면서 솥(鼎)을 취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주역을 봐야 하는데 기술하기로 한다.
 
마지막 구절 ‘扁舟秋水歸 是范是張也’라고 한, 가을 강에 돌아오는 편주에 범씨와 장씨가 등장한다. 이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초나라와 관련된 곤오가 등장한다면 이 범씨와 장씨는 범증과 장량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천하쟁패를 위한 책사가 등장하는 구절로 해석된다. (다음 구절을 볼 때, 물론 범씨는 취하지 못하고 장량만 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범씨와 장씨에 관련된 다른 자료를 더 알아보기로 한다.
 
- 범씨: 하 夏나라 공갑(公甲) 때는 공갑이 옥황상제로부터 용 네 마리를 선물로 받아 황하와 한수漢水에 각각 암수 두 마리를 넣어 두었는데, 이 용들을 기를 수 없어 환룡씨의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대신 환룡씨에게 용 길들이는 법을 배운 유루劉累라는 자를 찾아 그에게 ‘어룡’을 씨로 주고 용 사육을 맡겼다. 그런데 네 마리 용 중 암놈 한 마리가 죽자 어룡은 이 죽은 용을 소금에 절여 임금에게 몰래 먹였다. 임금이 그 맛에 반해 계속해서 이 고기를 찾자 그는 겁이 나서 노현 魯縣으로 달아났다. 어룡의 후손은 범(范)씨로 불렸다. 그러나 춘추시대에는 이들 씨족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장노(張魯) :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중국 오두미도의 대성자. 후한 말기, 익주(사천성) 장관하에서 부대장이 되었으며 한중(협서성 남부)공략에 성공해서 독립했다. 이 정권은 조부인 장릉에서 아버지인 장형을 거쳐서 전해진 오두미도(五斗米道)의 교법을 정비하고, 그 신앙을 정신적 유대로 하는 동시에, 교단 조직을 그대로 행정에 활용한 일종의 종교왕국으로, 30년 정도 독립을 유지했는데 215년, 조종의 군문으로 내려가, 장로 등은 조종의 근거지인 업(하북성 남단)으로 옮겨서 이 종교왕국은 붕괴했다.
 
위 어룡씨와 장노에 대한 사실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범씨와 장씨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이에 짜맞추는 이들의 잡부자작에 의한 몰이해가 결국 운명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어떤 시사점을 제시하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노현의 범씨 이야기와 오두미교의 장노가 세운 교단의 운명이 현재로선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광대무변한 선천역사의 지리 인사에 얽힌 이러한 중첩성의 효과로 인하여 한발짝 사이에서 운명의 길이 달라진다.
 
그러면, “終日空廷霹 魚龍不暫閒 奔流于海息 爲是道途艱”이라는 구절도 이중해석으로 다시 보아야 한다. 벼락이 친다는 것이니 주역의 진(震)괘를 취하여 따로 보아야 하겠지만, “종일토록 빈 뜨락에 벼락치니 어룡은 잠시도 한가롭지 못하여 분주하게 달려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길은 너무도 어려운 길이니라”는 것은 어룡이 이 길을 가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룡이 용이 못되면 이무기이다.
 
노나라 범씨인 어룡과 윗 구절은 상통하는 의미가 있다. 노양도(魯陽道)를 묻는다는 구절과 “西子亦難逢 魯魚未陽舍”라고 하는 서시는 없고 노와 어는 따사로운 집이 아니다라는 이 구절이 일관되게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옥산진첩은 하나하나의 그림첩 혹은 글씨첩으로 이해하면 된다. 핵심은 연경 즉 평양 아사달 장안의 화산으로 가서 월어를 돌이켜 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 선천역사로 얽혀진 난맥상이 오버랩되어 있는 불가피한 역사적 과정에 불러쓰야 할 범증과 장량같은 천하의 인재의 등용에 이러한 샛길의 유사성있는 난법의 편린들이 같이 싹터서 길화개길실하고 흉화개흉실하는 것이다. 노양도를 묻노니 기회는 두 번이라고 한 이유를 이 구절을 풀면서 알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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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이정 13-12-08 02:33
 
네.... 와.....
해롱대사 13-12-08 06:07
 
옥산진첩은 하나하나의 그림첩 혹은 글씨첩으로 이해하면 된다. 핵심은 연경 즉 평양 아사달 장안의 화산으로 가서 월어를 돌이켜 오는 것이다.  난법의 편린들이 같이 싹터서 길화개길실하고 흉화개흉실하는 것이다. 노양도를 묻노니 기회는 두 번이라고 한 이유를 이 구절을 풀면서 알만하다 하겠다. 

잘 익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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