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齊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화목和睦입니다. 가정마다 환경이 달라서 화목해지는 방법론을 연구해야 할것이며 기본적인 것은 효도와 적덕과 우애가 되겠고, 이것의 가장 빠른 지름길을 스스로가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의 가화만사성의 뜻글을 보겠습니다.
가화만사성
家 : 집 가. 和 : 화할 화. 萬 : 일만 만. 事 : 일 사. 成 : 이룰 성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것
모든 일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가정은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최소 단위이자, 사회생활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근간인 가정이 화목하지 않으면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의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 결국 서로 반목하게 된다.
예부터 가정의 화목은 가정을 다스리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자 사회생활의 근본으로 중시되었다. 《대학(大學)》에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8조목으로 삼아 집안의 다스림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격물부터 수신까지는 개인적인 것이고, 제가부터 평천하까지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으로,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치가(治家)편에도 "자식이 효도하면 양친이 즐거워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는 말이 나온다. 또 조상이 덕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후손에게 경사가 따른다는 뜻의 한자성어 '적덕지가 필유여경(積德之家必有餘慶)' 역시 가화만사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밖에도 가정의 화목과 관련된 고사나 글 등은 유교 경전이나 서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라 하여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보는 것도 가화만사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다음은 치국治國하는 임금님의 언로와 소통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나라의 흥망은 자유롭게 말할 권리에 달렸다
저자 정조대왕
출전 『홍재전서』 '훈어 1(訓語一)'
"나라의 언로(言路)가 열리느냐 닫히느냐 하는 문제는 진실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중대사인데, 오늘날처럼 신하들의 간언(諫言;분간하는말;직언)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전해오는 말에 나라를 일으키는 왕은 간언을 잘하는 신하에게 상을 내린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간언하는 신하에게 상을 준 덕행은 없고 오히려 간언하는 신하를 죽였다는 이름만 얻었다. 언로가 열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왕위를 물려받은 이후로 단 한 명의 간관(諫官)도 죄를 물은 적이 없는데도 저 괴팍하고 귀신같은 무리들은 매번 간언을 할 기회를 만날 때마다 불평불만과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
예전에는 윤약연과 한후익이 그랬고, 요즘에는 이택징과 이유백의 무리가 겉으로는 부지런히 애쓰는 척 말하면서 공공연히 어그러지고 방자한 계책을 부려 반역하려는 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나는 한결같이 기쁘게 받아들여 죄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흉악한 죄가 드러나고, 반역의 행위가 점차 드러난 뒤에야 스스로 하늘의 꾸짖음을 받고 이어서 법의 처벌을 받게 되었다.
내가 비록 덕이 없다고 하지만, 어찌 한두 마디 귀에 거슬린 말을 했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아 벌을 주었겠는가? 그런데 조정 밖의 여러 신하들은 이런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개는 어떤 상소를 올리고 또 다른 아무개는 어떤 말을 임금에게 아뢰었다가 법망에 걸려들어 큰 죄를 받았다. 이것은 앞서 처벌받은 사람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경계다."라고 말한다. 이 어찌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까닭으로 '언로(言路)'라는 두 글자는 지금 시대가 꺼리는 말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말(語)이 임금이 타는 수레에 다다르면 서로 돌아보고 놀라면서, 몸에 재앙을 입힌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나 역시 근심하고 두렵게 여겨 쉽게 신하들에게 간언하라고 하지 못하고 있다.
'상궁지계(傷弓之戒, 화살을 맞은 적이 있는 새는 활시위 당기는 소리만 듣고도 떨어진다는 뜻)'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교훈이지만, 모두 나 스스로 반성할 곳을 지적해 주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도저히 다스릴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어찌 말 없는 날이 있을 수 있겠는가?
최근에 『국조보감』을 강론한 적이 있는데, 뛰어난 신하와 명석한 재상들이 임금을 바로잡고 일으켜 세운 말들이 아직껏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감탄하게 할 뿐 아니라 종종 지금의 잘못과 딱 들어맞는 경우도 있었다.
뒤돌아 살펴보면, 지금 조정의 신하들 중에 옛사람들에게 미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혜롭고 충성스러우며 믿음이 두터워 서슴지 않고 간언할 수 있는 사람이 어찌 아주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나와 관계가 서먹서먹한 신하는 법에 걸려들까 두려워 감히 말하지 못하고, 가까이 있거나 나와 관계가 친밀한 신하는 비위를 맞추느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외에 누가 내게 간언을 하겠는가? 지금 신하들이 내가 간언을 좋아하고, 간언하지 않는 신하들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반드시 이와 같이 어물거리고 있지 못할 것이다. 너(서용보) 또한 훗날 삼사(三司, 사헌부·사간원·홍문관)에 드나들 인재이니, 반드시 내가 마음을 열고 신하들에게 간언을 구하는 고민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아래에서 위로 가려면 물이 증발되어야 합니다.
물을 증발시키려면 따뜻한 온도가 필요합니다.
언어의 소통에도 일방적일때는 권위적이라서 만인이 원성과 원망을 하게 되고
결국 나라를 망치게 됩니다. 치국의 법이 소통에 달려있는데, 아래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간언을 할수 있도록 따뜻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즉, 신하나 백성이 간언할수 있게 하는
제도를 갖추면 될 것입니다. 간언을 할수 없는 것은 법을 무서워 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지금 서나동은 여우,늑대 때문에 간언을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 또한 간언을 소화하기엔 심법이 부족함을 느낄수 있습니다.
성품이 괴팍하고 폭력적이며 욕설을 즐기는 리더는 조직을 망하게 하는 장본인입니다.
정조대왕은 아주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통을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