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라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면 명분파와 실리파가 대립되기 마련이다.
가장 이해 관계가 크고 책임이 무거운 임금과 정승은 얼른 단안을 내리지 못했다.
양쪽이 다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객관에서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노중련이 화를 발끈 냈다.
[지지리 못난 것들!]
그는 곧 상국 평원군을 찾아갔다.
[들리는 소문에 대감께서 장차 진나라 왕에게 제호를 올리려 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평원군 조승은 노중련의 이 말에 겁부터 났다.
[조승은 이미 화살에 맞은 새와도 같은 몸인데 어찌 감히 일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위왕이 장군 신원연을 보내 권고해 온 계책이네.]
노중련은 평원군의 무책임한 말에 안색이 달라졌다.
[대감께선 천하의 어진 공자신데 내 나라 운명을 남의 나라 사신에 맡기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내 대감을 위해 그를 꾸짖어 돌려보내겠습니다.]
평원군은 노중련이 만나고자 한다는 뜻을 곧 신원연에게 전했다.
신원연도 노중련의 이름만은 일찍부터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말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자기의 계책을 깨뜨릴까 겁이 먼저 났다.
[난 만나지 않겠습니다. 몸이 아프다고 사양해 주십시요.]
그도 양심에는 어느 정도 찔리는 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마시고 만나 보십시요. 그에게 무슨 좋은 안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평원군은 굳이 싫다는 신원연을 굳이 만나 보라고 강요했다.
하는 수 없이 만나 보기로 했다.
평원군이 노중련을 데리고 신원연이 있는 공관으로 왔다.
신원연은 노중련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신선같은 풍채에 놀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선생님의 백옥 같이 맑은 얼굴을 볼 때, 평원군에게 무슨 청탁이 있어 오셨을 리는 만무한데,어떻게 이런 포위된 성중에 오래 머룰러 계시면서 떠나지 않으시는지?]
신원연도 무장이면서 말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 가운데에는 풍자가 적잖이 섞여 있었다.
[이 사람은 평원군에게 청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장군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부탁을………]
[조나라를 도와 주시고 진나라를 황제로 만들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조나라를 어떻게 도우라는 말씀이신지?]
[나는 장차 위나라와 연나라로 하여금 조나라를 돕게 할 작정입니다.
초나라와 제나라는 이미 돕고 있는 중이니까요.]
일부러 상대방에게 공격해 오도록 헛점을 보여 준 것이다.
신원연은 그 헛점을 웃음으로 찌르며
[연나라는 모르겠습니다만 위나라로 말하면 이 사람이 곧 위나라 조정에서 보내 온 사람인데 선생께서 나를 어떻게 조나라를 돕도록 만들겠다는 겁니까?] 하고 반문했다.
[위나라에선 아직 진나라를 황제로 만드는 데 어떤 해독이 미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만일 그 해독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면 조나라를 자연 돕게 됩니다.]
[진나라를 황제로 부르는데 어떤 해독이 미친다는 건지………]
[진나라를 예의를 버리고 교만을 첫째로 삼고 있는 나라로서,
힘과 속임수로 침략을 일삼고 있지 않습니까.
저네들이 지금 같은 제후의 위치에서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만일 황제라는 칭호를 붙히게 될때 그 포확이 한결 더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입니다.
나는 차라리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망정 차마 장군처럼 그 명성이 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위나라는 자진해서 그 밑에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위나라가 어찌 자진해서 밑에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열사람의 종이 한 사람의 주인을 쫓는 것이 힘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그렇겠습니까?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무척 비겁한 이야기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위나라는 스스로를 종으로 보고 있는 겁니까?
내 장차 진나라 임금으로 하여금 위나라 임금을 삶거나 젓을 담그게 만들겠소.]
노중련이 성난 소리를 하자 신원연도 따라 화를 냈다.
[선생이 어떻게 진왕으로 하여금 위왕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조용히 내 말씀을 들으십시요.
옛날 구후(九侯)와 악후(顎侯) 문왕(文旺)은 주왕(紂王)의 삼공(三公)이었습니다.
구후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어 주왕에게 바쳤던 바
딸이 주왕의 음탕한 행동에 응하지 않자 주왕은 성난 나머지
딸을 죽이고 구후를 젓을 담그고 말았습니다.
악후가 이를 간하자 악후는 끓는 가마에 넣어 삶았고, 이 소문을 듣고 문왕이 탄식을 하자,
문왕마저 유리(유里) 옥에 갇혀 하마터면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삼공의 지혜가 주왕(紂王)만 못해서입니까?
천자와 제후라는 위치가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했던 겁니다.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의 이름을 붙이게 되면 반드시 위나라를 조회에 들어오도록 강요할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진왕이 악후의 처분을 내리는 것을 누가 감히 금할 수 있겠습니까?]
[ …………… ]
신원연은 한풀 꺽여 대답을 못 하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진나라가 황제의 칭호를 붙이게 될때 머지 않아 반드시 제후들의 대신을 바꾸어 그들이 싫어하는 사람을 쫓아내고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앉힐 것이며,
또 그들의 딸과 간사한 첩들로서 제후들의 부인을 삼을 것이니
위왕인들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겠으며 장군인들 오늘의 작과 녹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이해관계가 막상 자기 발등에 와 떨어지자 신원연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은 과연 천하의 고귀한 선비십니다.
내 곧 우리 임금께 말씀드려 다시는 그 이야기를 논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자기의 의견이 아니었던 것처럼 둘러댔다.
이때 현장에 달려와 있던 진왕은, 위나라 사신이 자기에게 황제의 이름을 올리도록 교섭차 와 있다는 소식을 듣자 기쁨을 감추지 못해 하며 곧 공격을 늦추도록 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위나라 사신도 이미 돌아가 버렸단 말을 듣자,
진왕은 실망이나 노여움보다도 두려운 생각이 앞섰다.
[필연 이 포위된 성 안에 얕보지 못할 인물이 있는 것 같다. 잘못하다간 기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하고 진왕을 곧 군대를 분수(분水)로 옮겨 주둔 시킨 다음,
대장 왕흘(王흘)에게 만일에 대비할 수 있는 경계 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노중련은 신원연의 무모한 고식책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성급한 공격을 늦추는 효과까지 가져다준 셈이었다.
그 뒤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이 진비(晋비)의 군사를 빼앗아,
진나라 군사를 격퇴시키고 조나라를 구원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멸망의 위기에서 도리어 승리를 얻게 되자,
평원군(平原君)은 노중련을 군(君)으로 봉하려 했다.
평원군은 그렇게 착한 사람 대우하기를 자기 일처럼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노중련이 그것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사자가 세 번까지 노중련을 찾아가 평원군의 진정을 전했으나 노중련은 끝내 이를 사양했다. 그러자 평원군은 환영의 잔치를 베풀고 그를 청했다.
술이 서로 거나하게 취했을 때, 평원군은 천금을 앞에 놓고 노중련에게 축수의 잔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