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蘇秦) 장의(張義) 세치 혀(三寸舌) [二]
소진은 제에 들어간 연의 첩자답게 차차 국력을 피폐시켜 갔지만
제나라에 헤성처럼 나타난 현인(賢人) 맹상군(孟嘗君)으로 인해 민왕의 신임이 차차 엷어져 갔다.
(때는 왔다!) 소진을 시기하던 무리들이 들고 일어났다. 「소진은 왕의 신임을 잃었다, 제거하자!」
드디어 암살 기도가 이루어졌다. 어느날------ 민왕을 뵈오러 궁안으로 들어가던 소진은 복도를 지나다가
눈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후다닥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눈앞에서 번쩍하는 비수를 미쳐 피할 틈이 없었다. 소진의 배에 비수를 꽂은 괴한은 번개같이 사라져 버렸다.
(나를 죽이겠단 말이지………이놈들, 어디 두고 보자………)
흐르는 피로 인하여 의식을 잃어 가면서도 소진은 이를 갈며 별렸다. 소진은 최후의 기력을 다하여 민왕 앞으로 기어갔다.
민왕은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하고 깜짝 놀랐다. 「어서 범인을 잡아랏!」 민왕은 벽력같이 호령했다.
「전하 범인은 벌써 숨어 버렸을 것입니다.
신이 죽거든 신의 목을 쳐서 길거리에 효수한 후 『소진은 연나라 첩자라 효수한다. 금명간에 소진을 체포하여 처형하려던 참이었는데 누군가 뜻이 있어 과인을 대신하여 천주(天誅)를 내렸으니 천금(千金)을 하사하리라』는 방을 내 붙이십시오.
그러면 범인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올 것입니다.」
이에 민왕은 슬픔을 거두고, 소진의 시체를 효수하자,
「소진은 내가 죽였다!」
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달려온 자가 있었다. 그 하수인은 곧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배후의 인물들을 모조리 고백해 버렸다. 소진을 암살한 일당은 모두 소진이 벼른 대로 참형을 당하고야 말았다. 그야말고 모사(謀士)다운 최후였다.
자기의 시신(屍身)에 더 할 수 없는 모욕을 가하면서 꾀로서 원수를 갚았던 것이다.
「소진이 암살당했다!」 는 소식은 금새 온 중원 땅에 번져 갔다.
장의는 (이제야 내 세 치의 혓바닥을 마음대로 휘두를 때가 됐다!」고 기뻐했다.
천하의 일곱 나라를 자기 혀끝 하나로 휘두를 자신이 만만한데 언제나 검은 그림자처럼 위협이 돼 오던
적의 동맹국의 두뇌가 죽은 것이다. 장의의 마음이 날아갈 것 같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의는 이제 각국의 제후가 모두 허수아비로만 보였다.
장의는 곧 위왕 앞으로 나아갔다. 「전하 용단을 내리셔서 진과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육 국 동맹을 어찌 믿겠습니까.
소진은 천하를 경영하려 했지만 결국 자기 목숨하나 지키지 못하고 자객의 손에 죽고 말지 않았습니까?
부모 형제들도 재물(財物) 때문에 서로 싸우는데 하물며 적대 관계에 있던 나라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모두들 소진의 말만 믿고서 진을 대적(對敵)하려 하지만, 만일 하나라도 배반하는 날이면
그 나라가 진과 손을 잡고서 위를 칠 때 어찌 당하시겠습니까. 선수를 쓰셔야 합니다.」
위의 애왕(哀王)은 장의의 진언을 듣고 문득 불안을 느껴 그를 강화의 사절로 파견했다. 진나라로 돌아간 장의는 물론 진과 위의 강화조약을 맺게 했다. 목적을 달성한 장의는 이제 위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위나라를 배반하게 한 공으로 즉시 정승자리에 올랐다.
위를 배신시키기는 했지만 진의 혜문왕은 커다란 걱정거리가 남아 있었다.
육국 중에서 가장 강대한 초와 제가 화친한 이상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혜문왕의 걱정을 안 장의는 선뜻 장담하고 나섰다. 「신이 초로 가서 이 혀끝으로 제와 적대시키고 오겠습니다.」
거침없이 자기의 세 치밖에 안되는 혀끝을 자랑했다.
초의 회왕(懷王)은 당시 육 국의 맹주(盟主)였다. 그 맹주 앞에나선 장의는
「저는 진, 초 두나라의 화친을 맺게 하고자 왔습니다.」
거침없이 내뱉었다. 「과인도 왜 진과 친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소.
그러나 진이 항상 침략하고 있어서 늘 적대하게 되는 거요.」
「지금 강국은 초, 제, 진, 세 나라뿐입니다.
진은 제와 손을 잡고 싶으면 잡을 수 있고, 초와 손을 잡고 싶으면 잡을 수 있습니다.
제와 진은 혼인을 한 사이지만 늘 적대만 하고 있어서 초와 화친하려는 것이니 아무런 의심도 하시지 마십시오.
만일 전하께서 화친을 맺으신다면 우리는 이전에 뺏은 초의 영지인 상어(商於)땅 육백 리를 모두 전하께 돌려드리겠습니다.
또한 진의 왕비를 보내어 대왕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무엇? 상어의 땅을 돌려 주겠다고?」
회왕은 신하들과 의논도 하지 않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뜸
「상어의 땅만 돌려 준다면 제나라와 절교하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오!」하고 승낙했다.
초의 회왕은 장의에게 정승의 인수와 황금 백일(百鎰), 양마(良馬)사십 필을 하사했다.
그리고 곧 「북관(北關)에 역마를 보내 제의 사신을 일체 입국시키지 말도록 하여라.
그리고 봉후축(逢侯丑)! 그대는
장의와 함께 진나라로 가서 상어의 땅을 돌려 받아 가지고 오라.」하고 명령하였다.
장의는 봉후축과 함께 진으로 갔다. 그러나 이 지모 많은 세객(說客)의 머리에는 물론 계략이 들어 있었다.
함양(咸陽)이 가까와졌을 때 일부러 술에 취한 척하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종자들이 놀라서 장의를 부축해 일으키자
「발목 뼈가 분질러진 모양이오. 꽤 시큰거리오. 의원의 치료를 받아야겠어, 먼저 급히 가오.」
하는 인사를 봉후축에게 남긴 채 횡하니 수레를 몰게 했다.
도성 함양으로 들어간 장의는 저택으로 돌아 자자마자 곧 왕께 상주문을 썼다.
봉후축을 역관(驛館)에 머물게 하되 마나시지 마시라는 진언과 함께 자기는 돌연 발병하여 뵈옵지 못한다는 사죄였다.
봉후축은 왕궁에서 부름이 있기만을 기다렸으나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스스로 찾아 갔다.
그러나 수문장에게 막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장의를 찾아 갔으나 장의는 병이라는 핑계로 만나 주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났다.
참다못한 봉후축은 혜문왕에, 신랄한 독촉의 상주문을 올렸다. 상어의 땅 육 백리를 약속대로 속히 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진나라 혜문왕의 답장은 장의가 그런 약속을 한 이상 실행하겠다, 그러나 초와 제가 동맹을 파기했다는 보고를 못 받았다.
확실히 입증만 할 수 있고 장의가 보증만 하면 당장 돌려 주겠다는 내용 이었다.
초나라 회왕은 봉후축이 보낸 보고문을 읽고서는 「제나라와 절교를 해야 땅을 주겠다고?.」
하고 송유(宋遺)라는 음성이 큰 장한을 불러들였다.
「제나라의 국경으로 가서 제의 관문 수비병들에게 제왕의 욕설을 실컷 퍼붓고 오너라.」하고 명령했다.
송유는 관문 수비병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가운데 그 큰 목소리로 있는 욕설 없는 욕설을 다 퍼부어 대고 도망쳤다.
보고를 받은 제나라 민왕은 온 얼굴에 핏대를 세우면서 후들후들 떨었다.
「어찌 초의 모욕을 견디랴, 진과 손을 잡아 초를 멸망시키고야 말겠다.」
한편 함양의 장의는 제나라의 사신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입궐하기 위해 수레를 몰았다.
궁궐 앞에 이르니 봉후축이 초초히 서성대고 있었다.
「아니, 왜 아직까지 땅을 받아 가지 않고 여기 계시오?」
장의는 시치미를 떼었다. 「진왕께선 장의공의 보증이 있어야 땅을 주겠다는 거요. 어서 상어의 땅을 주오.」
「상어의 땅? 무슨 말이오! 내가 약속한 것은 나에게 하사된 사방 육십리 가량의 고을이오.
그것이야 전하의 윤허(允許)를 받으나마나 내가 바치면 그만이오.」
말 싸움이 벌어졌으나 봉후축은 장의를 당할 재주가 없었다.
봉후축의 보고를 받은 초 회왕은 미칠 듯이 노했다.
「장의란 놈을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 곧 진을 친다. 출병 준비를 하라!」
그때 진진(陳軫)이란 신하가, 진을 쳐야 승산이 없다고 만류하며 오히려
「진에게 성을 두어 개 바치고 진과 손을 잡은 후 어차피 원수가 된 제를 치면
그 이상의 땅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하고 진언을 드렸다.
그러나 회왕의 분노는 타오르는 불길과도 같았다. 기어이 진을 치겠다고 군사를 냈다.
하지만 초는 연전 연패였다.
진, 제가 동맹을 맺고 대항했기 때문이었다. 초나라 회왕은 할수 없이 휴전 제의를 했다.
「초나라의 금중(黔中) 땅과 상어의 땅을 바꾸겠다면 군사를 거두겠다.」
진은 상어를 주는 대신 그 몇 배 넓고 기름진 금중을 달라고 했다.
회왕은 상어의 땅쯤은 아무래도 좋았다. 필요한 것은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장의뿐이었다.
「장의를 보내 주면 금중의 땅을 그냥 바치겠다.」
는 회답이 진나라 혜문왕에게로 날아왔다.
평소의 장의를 시기하던 신하들은 「장의 한 사람과 금중을 바꾼다는 것은 큰 이득입니다. 곧 장의를 보내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그러나 혜문왕은 도저히 자기의 수족처럼 아끼는 장의를 내줄 수가 없었다.
「전하, 신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금중의 땅을 얻으시고 신을 보내주십시오.」
장의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청했다.
「안되오. 초나라로 가면 반드시 살아날 방도만 있다면 가도 좋소만………」
「초왕의 애첩 중에 정수(鄭袖)라는 여자가 있고, 충신 중에 근상이라는 신하가 있습니다.
두 사람만 잘 이용하면 염려 없습니다.
안심하고 보내 주십시오.」 진왕은 장의를 보냈다.
장의를 즉시 옥에 가둔 초왕은 그가 입국하는 길로 근상과 연락을 취한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근상은 장의의 지시대로 정수 부인을 찾아갔다.
「진왕이 장의를 가둔 것을 알고, 초나라에게서 뺏은 땅과 자기 나라의 왕녀(王女)를 줄 테니
장의를 돌려보내 달라는 교환조건을 내세웠습니다.
만일 진나라의 왕녀가 와서 초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면 부인의 입장이 어찌되겠습니까?
전하에게 말씀드려 장의를 그냥 놓아 보내도록 하십시오.」
정수는 가슴이 철렁하여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근상은 묘계를 일러 주었다.
정수는 왕의 품에 보드라운 몸을 비비대며 말했다.
「장의와 금중을 바꾸신다는 것은 잘못 생각이에요. 장의를 죽이고 기름진 옥토를 잃으면 무슨 득이 있으신가요?
장의는 오로지 자기가 섬기는 진을 위해서 일했을 뿐이예요.
충신(忠臣)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장의를 살려서 잘 꾀어 초의 신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이튿날엔 근상이 아뢰었다.
「장의 하나쯤 죽여 보았자 진나라에 무슨 타격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금중과 바꾸시다니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차라리 장의를 살려주어 진나라와 우호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양책이십니다.」
연거푸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곧 장의를 옥에서 풀어주고 빈객으로 후대했을 뿐만 아니라
우호관계를 맺도록 해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귀국시켰다.
진왕은 장의가 끄떡없이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우호관계를 맺자고 제의를 가지고 온 데 대해 그저 아연해질 뿐이었다.
그 후 장의는 육국의 동맹을 깨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당시 제왕은 장의에게 한 번 속은 일이 있었다. 분함을 참지 못하여
「장의를 잡아 보내는 나라에게 성(城) 열을 주겠다.」는 선포를 할 정도였다.
장의는 진왕에게 「제왕은 신을 죽이고 싶어합니다. 진이 워낙 강국이라 손을 못 쓰지만
신이 위나라로 가서 벼슬을 하면 당장 위를 칠 것입니다. 보내 주십시오.」
하고 상주하자 진왕은 선뜻 허락했다.
장의는 위로 가자마자 정승이 되었고, 장의의 예언대로 제나라는 군사를 일으키려 했다.
장의는 일단 위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했으나 제가 군사를 일으킨다는 급보에 놀란 위왕이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애원을 하자 자기의 재주를 또 한 번 부려볼 욕심으로
「염려 마십시오. 저절로 제나라의 군사가 물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장의는 곧 심복인 풍희(馮喜)를 불렀다.
풍희는 장의의 지시를 받고 제왕을 만나 밀고를 했다.
「장의는 제왕이 자기를 몹시 미워하니 위에 가서 정승이 되면 위를 칠 것이라고 진왕에게 아뢰고 떠났습니다.
전하께선 장의의 간계에 또 속으셨습니다.
전하깨서 위를 치시지않으면 진왕은 장의를 불신(不信)하게 될 것입니다.
계책대로 성공하지 못하면 장의는 진으로 귀국하지 못할 것이고, 조그만 위나라에서는 활약을 못하고 말 테니 양책이 아니겠습니까?」
제나라왕은 (장의놈의 간계에 속을 뻔 했구나!)하고 군사를 회군시켰다.
이렇듯 진나라와 육국을 제집 안방 드나들 듯이 하면서 정승 벼슬을 물 마시듯이 한 장의는
세 치 혀 끝을 마음대로 놀려 칠국을 손 안에 든 구슬같이 회롱하다가
소진과는 달리 위나라에서 병으로 죽고 말았다.
소진, 장의 두 사람의 세 치 혀끝이 십만 대군보다도 더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