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 담론방 > 자유게시판


 
작성일 : 15-03-03 18:57
제 116편「중국」 11- 쑹자오런의 국민당 결성과 쑨원의 제2혁명 실패 후 일본망명
 글쓴이 : 전설따라소설쟁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쑨원과 교활한 위안스카이의 음모
 
 
 
쑨원은 임시총통을 위안스카이에게 물려주고 철도건설 사업에 모든 힘을 쏟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쑨원이 성장과정에서 하와이, 영국 등지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체험한 선진문명국의 관계도로망을 보았기에 잘 알 것이다.
 
의대 진학 후 혁명에 뜻을 품었을 때는 관조했던 생각들이 보다 체험적으로 심화되었을 것이고, 혁명을 진행하면서는 혹은 망명생활을 하면서는 근대화된 서구 유럽과 일본, 미국 등지에서 철도 및 도로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중국에는 대상인大商人 들이 많았고 그들의 상행위는 주로 근거리 바다를 중심으로만 이루어졌다. 더불어 중국의 역사는 물길과 큰 수로를 잇고 제방을 쌓는 이른바 대운하와 크고 작은 수로를 중심으로 상업도시가 발달했다.
 
그러나 광활한 중국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사통팔달 먼 지역까지 물자를 운반하고 인적교류가 용이한 철도가 쑨원에게는 실업實業을 일으키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토대였던 것이다.
 
이제 쑨원은 민생주의 실현을 위해 철도사업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것은 민생주의 실현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인 것이다.
 
 
 
교활한 음모가라는 혹평을 받던 위안스카이는 그러한 혹평에 걸맞게 쑨원의 순수한 뜻을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그는 쑨원을 중국 전체의 철도를 관장하는 전국철로 독판에 임명하고 엄청난 원급과 특권을 주어 호화생활을 즐기도록 유도했다. 쑨원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서태후가 쓰던 사치스러운 전용열차를 물려받아 기차가 달릴 수 있는 모든 지역을 호화스럽게 여행했다. 그의 추종자들과 심지어 매춘부에 가까운 여성들이 전용열차의 많은 침대석을 메웠다. 이때 그를 수행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기자 도너드W . H Donald 는 그를 미친 사람으로 보았다.
 
 
 
쑨원을 정치세계로 불러들인 시대의 흐름
 
 
 
철도파업이 원인이 되어 혁명무장 세력에 의해 일어난 신해혁명과 쑨원이 임시대총통으로 선출되어 아시아 최초의 공화체제를 만든 중화민국을 계기로 중국은 정당정치가 열리게 된다. 쑨원이 물러나고 위안스카이가 비록 정권을 잡았지만 혁명의 바람은 잠시 숨죽이고 있었을 뿐 이다.
 
산등성이 봉화 불이 점화되듯 중국 전역에서는 서서히 수많은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출범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정당들은 서로 생존하기 위해 연합하면서 정당통합운동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쑨원을 정치세계로 시대가 불러내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국민당을 창당한 쑹자우런宋敎仁(앞줄 오른쪽 둘째). 앞줄 왼쪽 첫째 황싱 .앞줄 가운데 후잉, 1905년 일본 도코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 동맹회의 창립회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열렬한 민주혁명가인 쑹자오런宋敎仁이 다른 동맹회 동지들과 더불어 동맹회를 뼈대로 삼아 다른 정당들을 합병한 뒤 국민당을 결성하면서 쑨원을 이사장으로 추대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반청사상을 지녔던 쑹자오런은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며 민주공화제 이념을 더욱 열렬히 받아들였으며 쑨원을 추종했다. 그는 조선의 독립에도 관심을 갖고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을 지원했다.
 
 
 
쑨원을 정치세계로 불러내는 원인 제공자는 위안스카이에게도 있었다. 그는 임시대총통에 취임하자마자 임시약법을 무시하고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이에 맞서 임시약법을 탄생시키는데 앞장섰던 동맹회세력은 위안스카이를 공격하게 됐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쑨원이 그 공격의 선봉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이제 19132월 실시된 선거를 통해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압승을 거둬 제1당으로 진출한 국민당은 내각책임제를 구현하고자 했다. 위기감을 느낀 위안스카이는 자객을 시켜 국민당의 실질적 1인자인 쑹자오런을 1913320일 암살한다. 그의 나이는 겨우 31세 젊은 나이였고, 상하이역에서 연설 하던 중 암살당한다.
 
위안스카이는 쑹자오런을 암살하면 국민당이 분열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계산이었고 국민당을 위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격발시켰다. 위안스카이의 무리한 조치는 훨씬 더 강도를 더했다. 외국 다섯 곳으로부터 거액을 차관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당시 중국은 상당한 외채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때라 이 조치는 망국적인 결정이었고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끝까지 굽히지 않고 정식대총통에 올랐으며 마침내는 국회를 해산하고 임시약법을 폐지했다.
 
 
 
일본 망명길에 오른 쑨원
 
 
 
19137월 쑨원은 위안스카이 타도를 외치면서 제2혁명의 선두에 섰다. 쑨원의 주장에 호응해서 여기저기에서 위안타도를 외치는 반란의 기세가 드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매수공작으로 반란군을 분열시켰고 강력한 휘하부대를 휘몰아서 이들을 공격했다. 외세도 위안스카이를 도왔다. 결국 반란군은 약 2개월 만에 와해되고 쑨원은 재차 일본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1914년 7월 8일 도쿄 중화혁명당 창당 사진
 
참담한 심정을 가진 쑨원은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동맹회 동지들과 손을 잡고 19147월 도쿄에서 중화혁명당을 창당하게 된다. 쑨원의 생각은 위안스카이로 축약되는 중국수구세력과 외세의 공동합작 때문에 국민혁명이 실패 했다고 보았기에 중화혁명당을 중심으로 국민혁명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국민당이 너무 개방적인 정당이라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레닌이 내세운 음모가적 비밀정당 원칙에 충실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


전설따라소설쟁이 15-03-03 19:28
 
일본으로 망명하여 중화 혁명당을 창당한 쑨원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와 결혼식을 올린 여성이 중국의 '쑹씨 가문'으로 왕조라고 표현될 만큼 대단한 집안이었던 것이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3-03 19:30
 
쑨원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을 때 중국은 새로운 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촉발
된 것이다. 이미 유럽은 1914년 7월, 즉 쑨원이 결혼하기 전에 세계 대전이 일어난 것은 중국으로는
다행 스러운 일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에 힘을 쏟았기에 중구그이 침탈이 다소 수그러 들었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3-03 19:32
 
중국의 위안스카이는 일본으로 부터 중국을 압박하고 수탈하려는 내용들로 구성된 요구를 받게된다.
이 21개조에 이르는 요구를 위안스카이가 받아들인다면 그가 구상하는 황제체제의 성립을 돕겠다는
뜻을 표시한다. 위안스카이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고 중국은 격분에 휩싸이게 된다.
쑨원은 '매국노 위안스카이를 타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빈병 15-03-03 19:53
 
위안스카이가 환락에 빠져드는 열차 미인계를 쑨원에게 썼군요.
역사에서 잔머리 쓰는 사람은 결국 망하던데요
현포 15-03-03 20:48
 
"혹은 망명생활을 하면서는 근대화된 서구 유럽과 일본, 미국 등지에서 철도 및 도로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중국에는 대상인大商人 들이 많았고 그들의 상행위는 주로 근거리 바다를 중심으로만 이루어졌다. 더불어 중국의 역사는 물길과 큰 수로를 잇고 제방을 쌓는 이른바 대운하와 크고 작은 수로를 중심으로 상업도시가 발달했다.
 그러나 광활한 중국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사통팔달 먼 지역까지 물자를 운반하고 인적교류가 용이한 철도가 쑨원에게는 실업實業을 일으키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토대였던 것이다."
당시에 쑨원처럼 청조의 많은 사람들이 외국유학을 통해 근대문물과 신지식을 배웠겠지만 쑨원처럼 구체적인 안목으로 앞장서서  실행(혁명)에  옮긴 그 의지가 대단합니다. 쑨원과 쑹자우런 그리고 그의 동지들의 파란만장한 중국 건국의 과정을 잘 보고 갑니다.
지고이바이젠 15-03-03 21:03
 
참담한 심정을 가진 쑨원은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동맹회 동지들과 손을 잡고
1914년 7월 도쿄에서 중화혁명당을 창당하게 된다.
모든 혁명가들이 많은 어려움과 고비를 넘긴 이면에는 매국행위를 하는 자들이
준동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각설탕 15-03-03 21:55
 
쑹자오런은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며 민주공화제 이념을 더욱 열렬히 받아들였으며 쑨원을 추종했다.
그는 조선의 독립에도 관심을 갖고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을 지원했다.
문리접속 15-03-03 22:32
 
생애

중국 후난 성 타오위안 현(桃源縣)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혁명활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는 우창 보통학교에 다니던 중 반청(反淸)운동을 벌이다 퇴학당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곧 중퇴한다. 1904년 창사(長沙)에서 황흥등과 '화흥회'(華興會)라는 단체를 조직해 '청나라 타도'를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다시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 와세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이듬해 1905년 쑨원과 함께 청조타도를 위한 중국동맹회를 함께 세우고 기관지 《민보》(民報)를 발행해 편집을 맡아 활동했다.

1910년에는 중국으로 돌아와 상하이에서 《민립보》(民立報)를 발행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수립된 '난징 임시정부'에서 법제국 국장을 맡았다. 임시정부 초대 대총통 쑨원이 위안스카이에게 총통직을 넘겨주었을 때 새 내각에서 농림총장을 캍았지만, 위안스카이가 반동적인 활동 및 독재 정치를 벌이자 반발하고 곧바로 사임했다. 그 후 쑨원을 도와 동맹회가 국민당으로 창설하고 활동하는 데 힘썼다.

1913년 2월에 치러진 총선거에서 쑹자오런이 이끄는 국민당이 압승을 거둔다. 차기 총리가 유력시되는 상황에서 쑹자오런은 1913년 3월 20일 상하이 기차역에서 새로 출범한 국민당의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는 도중 저격당했고 이때 입은 부상으로 며칠 후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암살의 배후에는 위안스카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제2차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의 죽음으로 중국공화제는 곧 혼란에 빠졌다.
문리접속 15-03-03 22:32
 
사상

쑹자오런은 중국의 전통 학문과 사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과거제 폐지에 따라 혁명을 지향하게 되었다. 쑹자오런은 시종 쑨원에 맞선 혁명가로 알려졌다. 쑨원은 변방 근거지 혁명을 혁명 전략으로 내세운 반면, 쑹자오런은 양자 강 유역의 도시 혁명을 주장하였고 상하이에 중국동맹회 중부 총회를 설립했다. 또한 정치 형태도 쑨원은 대통령제를 주장했지만, 쑹자오런은 의원내각제를 주장했다. 쑨원이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제 통치를 희망한 반면, 쑹자오런은 민주적인 의원내각제를 주장했던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위안 스카이 총통의 독재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쑹자오런은 의원내각제에 의해 총통의 큰 권한을 억제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법에 관한 일로서 충돌하는 태도가 원세개에 두려움을 줘서 결국 암살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민국 초기에 정치적 주도권을 쥔 것은 쑨원 파가 아니라 쑹자오런이었다.

이러한 쑨원과 대립과 또 쑨원이 위안 스카이에 무력 대결을 하려고 한 것에 대해 쑹은 법에 따라 대결하고, 타협적인 것으로 알려져 중국에서 "혁명우파"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계속적인 쑹자오런 연구가 진행되어, 현재는 현실적인 애국자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혁명밀알 15-03-04 01:14
 
국민당이 너무 개방적인 정당이라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레닌이 내세운 음모가적 비밀정당 원칙에 충실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설악산지기 15-03-04 08:14
 
꿈 꾸는 행렬들이 봄 바람에 실려 계단을 오르고
복 지으시기를..
사오리 15-03-04 10:30
 
오래 엎드려 있던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일찍 핀 꽃은 빨리 시든다. 이러한 이치를 알면 발을 헛디디는
근심을 면할 수 있으며, 성급하게 일을 이루려는 생각도 사라질 것이다.

【태사부님께 암살자 보내고 친일부역한 이상호, 이정립무덤에 절을한 노상균 이석남/ 통진당 광주 홍어 이석남  】
이상호 이정립 추종계열
이상호 이정립 --- 홍성렬
노상균(견마지로.whRkfkakdltld) --- 이석남(참종자. 도심주. 심주도. 바지,
폼생폼사 15-03-04 12:40
 
중국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사통팔달 먼 지역까지 물자를 운반하고 인적교류가 용이한 철도가
쑨원에게는 실업實業을 일으키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토대였던 것이다.
매난국죽 15-03-04 22:37
 
위안스카이는 쑹자오런을 암살하면 국민당이 분열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계산이었고 국민당을 위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격발시켰다.
 
 

Total 9,905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공지 1• 3 • 5 프로젝트 통장을 드디어 공개합니다. (70) 혁명위원회 09-12
공지 진법일기 70- 1.3.5 프로젝트가 의미하는것은 무엇인가? (61) 이순신 09-19
공지 혁명을 하면서~ <아테네의 지성! 아스파시아와 페리클레스> (12) 현포 07-31
공지 히틀러,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 (15) FirstStep 06-23
공지 <한 지경 넘어야 하리니> (21) 고미기 07-28
공지 트럼프, 폼페이오, 볼턴을 다루는 방법들 (32) 봉평메밀꽃 07-18
공지 판소리의 대표적 유파로 '동편제'와 '서편제'가 있습니다. (27) 흰두루미 06-20
공지 소가 나간다3 <결結> (24) 아사달 03-20
1754 이동진의《당신은 도전자입니까》 * 빛나는 나 (6) 사오리 03-04
1753 화장실에서 보는 책 <눈 뜬 장님> (9) 객1 03-04
1752 영원한 뽀빠이 (9) 혁명밀알 03-04
1751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한용운(시낭송) (5) 딴따라고사리 03-03
1750 무위 - 노자 장자 (13) 현포 03-03
1749 '김영란법' 찬성 226표·반대 4표…국회 본회의 통과 (10) 각설탕 03-03
1748 김경학 성도에서 장기준 용담팔괘의 대학교 공사 (12) 향수 03-03
1747 제 116편「중국」 11- 쑹자오런의 국민당 결성과 쑨원의 제2혁명 실패 후 일본망명 (14) 전설따라소설쟁이 03-03
1746 행동하기 전에 잘생각해라. 행한대로 받는다. (15) 몽마르뜨 03-03
1745 거의 망한 백인사회의 기독교(예수교) 현황 (9) 게리 03-03
1744 화장실에서 보는 책 <어느 도둑놈의 변> (10) 객1 03-03
1743 추억의 선물 (10) 혁명밀알 03-03
1742 추억의 감성 발라드 모음 20곡 (6) 딴따라고사리 03-02
1741 그는 예절이 없고 무뢰하고 오만방자하고,배은망덕하고 네티켓이 없다. (12) 몽마르뜨 03-02
1740 윤수정의《크리에이티브 테라피》 * '두려움' (7) 사오리 03-02
1739 제 115편「중국」 10- 위안스카이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쑨원 (11) 전설따라소설쟁이 03-02
1738 졸업이 제일 쉬웠어요 (8) 각설탕 03-02
1737 그 유명한 롯의 이야기. 창세기 19장 31절 (9) 게리 03-02
1736 호르몬과 정신작용 (9) 옥수 03-02
1735 화장실에서 보는 책 <기절 또 기절> (10) 객1 03-02
1734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 (9) 혁명밀알 03-02
1733 옛사랑이 생각날때 듣는 조용한 노래 모음(발라드 가요) (8) 딴따라고사리 03-01
1732 기러기와 도요새의 희망 (11) 가우스 03-01
1731 혀~ (12) 목화씨 03-01
1730 그는 무뢰하고 버릇없고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다. (17) 몽마르뜨 03-01
1729 마음의 체를 밝히는 달마어록~~ (14) 향수 03-01
1728 교회 이름의 압박 (10) 게리 03-01
1727 제 114편「중국」 9- 교활한 음모가 위안스카이의 전략과 쑨원의 공화체제 중화민국 성립 (13) 전설따라소설쟁이 03-01
1726 한가지 하지 않은 것 (8) 혁명밀알 03-01
1725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 용서 - 개그맨 나도야와 숨겨진 딸 (4) 딴따라고사리 02-28
1724 그는 사람을 귀찮게 하고 오만방자해서 그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2) 몽마르뜨 02-28
1723 류시화의《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여섯 가지 참회 (6) 사오리 02-28
1722 뇌세포(뉴런)와 화학물질 (8) 옥수 02-28
   241  242  243  244  245  246  247  248  249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