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이다. 감탄사나 느낌표 없이는 표현할 수 없는 풍광을 만날 때가 있다.
내 경우엔 그랬다. 열여덟 초봄 김남주의 시를 만났을 때, 처음으로 여자의 가슴을 만지던 순간, 내 이름이 찍힌 시집이 나왔던 날 밤. 그런 순간엔 수천 마디의 말이나, 수만 줄의 문장보다 먼저 감탄사가 터졌고, 느낌표를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5월, 페르시아의 대제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의 별궁 페르세폴리스 앞에 섰을 때도 그랬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조악한 몇 줄의 문장으로 그 벅참을 표현하기는 불가능했다. 평생을 연모해온 여인의 벗은 몸을 회갑에 이르러서야 본 사내의 심정이었다.
이란의 중남부 쉬라즈에서 불과 30분 거리. 운 좋게도 터키에서 온 모터바이크 라이더의 BMW 1200CC 오토바이 뒤에 타고 거길 갔다. 그 입구엔 이미 108년 전 거길 다녀간 영국인의 이름이 돌에 새겨져 있었다. 그는 페르세폴리스 조형물에 접근 금지 유리막이 쳐지기 전 거길 왔었나 보다. 2500년 전 돌조각에 새겨진 108년 전 사내의 간명한 문장.
‘제임스, 왔다간다. 1903년’.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에 거대한 석조건물과 웅장한 열주를 만들도록 지시한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도 죽고, 한 세기 전에 거길 다녀간 잉글랜드 사나이 제임스도 죽고, 21세기를 사는 내가 거기에 섰다. 그 시간을 떠올리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이윽고 페르세폴리스의 석양. 나는 산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 이름을 남긴다는 것의 의미에 관해 생각하다 울컥 슬퍼졌다. 내 생은 타자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이름 불리어질 것인가.
두 황제에 더해 몇몇 황제가 드라마틱하고, 섹시했으며, 때론 고단했을 생애를 영원히 눕힌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덤 ‘낙쉐 로스탐’에선 그 감정이 증폭됐다.
이젠 마음 단단히 먹기 전엔 찾기도 쉽지 않을 사막 한가운데 말없이 누운 그들. 그들은 한때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던 세상의 주인이었다. 허나...... 산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은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이나 지금이나. 혹은, 앞으로도.
페르세폴리스는 속삭인다.
어둠이 깔리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곳의 주인이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그것만 해낼 수 있다면 거지도 황제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착각한다. 천 년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살아갈 것처럼 아등바등이다. 인간의 불행은 거기서 시작되는 게 아닐지. 겨우 월급쟁이 주제에, 농사꾼 주제에, 의사나 판검사, 혹은 국회의원 주제에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저만 위하고 살아간다.
보라, 페르세폴리스의 주인이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인도와 요르단에서까지 조공을 받았던 거대 왕국의 주인 다리우스는 수백 톤의 황금과 수만의 아리따운 후궁을 남겨둔 채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고, 그 기개와 장엄한 기상으로 중국대륙을 제 발 아래 꿇렸던 ‘역발산 기개세’의 항우도 서른하나에 지상에서 사라졌다.
너, 영원히 살 것 같니? 착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