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6-24 10:24
글쓴이 :
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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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회의 투~우~
(5) 제5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553년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1세가 소집한 회의로, 156명의 동방정교회의 주교(主敎)들만 참석하였다. 당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1세의 공동통치자인 그의 아내인 테오도라에 의해서 회의가 주도되었다. 그녀는 청색, 녹색의 서커스당이 반기를 들었던 니카의 난 때 황제자리를 되찾아 주었던 공로자였다. 이 회의에서는 유스티아누스가 이미 교서, 법률로 먼저 공포해 놓았던 것이 의제로 채택되어 회의는 형식적인 것일 뿐 이었다. 따라서 5차종교회의는 갈채 회의라는 이름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4차회의에서 예수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지만, 반대하는 그리스도의 단성설 지지자가 아직도 많았다. 이 회의를 통해 그리스도의 단성설(單性說)로 대표되는 그리스적 신학과, 그리스도의 양성설과의 조화를 찾고자 로마 측에 양보를 강요했으나, 팽팽히 대립함으로써 결국은 교회분열을 가져왔다. 이 회의에서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신의 도성'(De Civitate)을 세상통치를 위한 이론으로 결정짓게 되었다.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이 이론의 핵심은 교회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기독교의 원죄론 을 정립하였던 어거스틴이라는 자는 로마정부에 대단한 아첨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세례를 주장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들을 태아 나자마자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기독교 국가였던 로마에 충성케 하고,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기독교국가, 즉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천국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 그는 대단한 아첨꾼이자 수완가가 아닐까?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교리적인 사안이 논의되었다. 인류의 타락이 누구의 죄인 가하는 문제이다. 만일 여호와가 전지전능한 신이었다면 아담과 이브의 거역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한 신은 어째서 전능하신 신은 타락을 미리 계산에 넣고 있었던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천국에서 반란을 일으킨 천사 루시퍼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사탄이 타락한 천사라는 관념은 유대교의 또 다른 창세기인 하가다서에서도 알 수가 있다. 하가다서에서는 신이 아담을 창조하자, 천사들이 아담을 시기하였다고 한다. 천사들은 아담을 불로 죽이고 싶었지만, 여호와가 그것을 막아 주었다. 그 중에 사탄이라는 12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아담을 가장 시기 하였다고 한다. (다른 천사들은 날개가 6장이었음) 천사 미카엘은 신의 형상을 한 아담에게 경배하였으나, 사탄은 그것을 거부하여 천사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천상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위와 같이 사탄이 타락한 천사이고, 이것이 인간을 죄짓게 했다는 외경적인 사상이 이 회의에서 그대로 주입되어 버렸다. 그러나 무한과, 영생, 행복이 가득한 완전함과 전지전능함 세계인 천국의 천사가 창조자인 신에게 거역했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결국 천국이나, 천사라는 것이 완전한 것이 아닌, 불완전한 것이 아니고 무엇 이겠는가? 여호와는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형이 인류의 죄를 대속한 것이라는 개념은 이 회의에서 결정을 짓게 되었다. 즉, 예수가 피 흘리고 죽은 것을, 동물의 제물을 바치는 구약적 제사와 연관 지어 예수의 죽음을 대속적 제사의 의미로 결정지은 것이다. 기독교는 자신들의 신을 자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입다의 딸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사사기 11장)정도의 고대 화산신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이것은 고대의 미개한 의식을 아름답게 치장한 것에 불과하다. 뉴저지 주 뉴어크(Newark)의 감독파 교구의 독립 주교인 죤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은 자신의 저서인 '어째서 기독교가 변하거나 죽어야만 하는가'(Why Christianity Must Change or Die)에서, 소멸하지 않기 위해 기독교가 반드시 수용해야만 하는 열 두 주제들을 제안했다. 여섯 번째 것은 이것이다. "십자가가 세상의 죄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견해는 반드시 사라져야만 할, 원시적인 개념에 기반을 둔 하느님에 대한 야만적 사고이다." 인간 탐구(Human Quest)의 보다 최근 기사에서, 그는 이 주제에 대한 항변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나로서는, 우리가 예수의 죽음과 그것을 요구했다고 일컬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고대적으로 해석하는 야만적인 성질을 노출시키고 기독교에서 이러한 영적인 잔악한 행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기독교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현대의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인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을 바라는 하나님을 매력적으로 볼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만일 기독교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의미를 필요로 한다면, 우선, 나부터도 더 이상 이 오래된 믿음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특성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수동적인 반대는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다. 대신, 이 생각은 공격적으로 제거되어야 하는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나 보다 매력적인 것은 그 어느 것도 결코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회가 새롭고 강력한 개혁을 필요로 하며,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들을 점검하고 재구성할 때까지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믿는다."["Reforming Christology: He Did Not Die for My Sins!" 1999년 11/12월, P. 7]
어쨌든 이 종교회의 이후에 유스티아누스는 교황 비기리우스에게 이단 소탕 법령을 내린다.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부인하는 자는 이단자로 낙인을 찍어 사형을 행했으며, 세습 권도 정지당했다. 유스티아누스의 명령에 의해 로마 관리들은 큰 무리로 떼지어 다니면서 이단자들을 색출해 서 강제적으로 세례를 받게 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유스티아누스는 콘스탄티누스와 테오도시우스와 마찬가지로 카톨릭의 성인 품에 올려져 있다.
(6) 제6차 종교회의 (콘스탄티노플)
680∼681년 동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4세가 소집했으며, 그리스도 단성설(單性說)을 배척하고 로마카톨릭 교회와 화해했으며 호노리우스 교황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이로서 그리스도의 단성설은 완전히 배척 받게 되었다.
(7) 제7차 공의회(니케아)
787년 니케아에서 열린 제7차 공의회로, 당시 섭정(攝政)이던 동로마제국의 황후 이레네 2세가 총대주교 타라시우스를 책동하여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는 성화상(聖畵像) 숭배, 유물숭배 (유물을 제시하지 않으면 어떤 주교도 교회건물을 헌당할 수 없게 함), 성자숭배, 죽은 성도와 순교자들에 대한 기도가 공인, 남녀공주수도원(男女共住修道院)의 금지 등에 관한 조규(條規) 20개 조가 의결되었다. 그러나 성화상에 관한 교리는 서유럽에서 오해를 불러일으켜 얼마 동안 그 승인이 보류되었다.
(8) 제8차 공의회(콘스탄티노플)
869∼870년 이콘(聖畵像) 논쟁을 둘러싼 동, 서 교회의 대립을 배경으로 한 공의회이다. 교황 아드리아누스 2세는 동, 서 양교회 분리의 요인을 조성한 포티우스 주교를 파문했다. 또한 불가리아인에 대한 동로마제국의 권리를 배격하고, 로마가톨릭 교회로의 귀속을 확인하였다. 교회합동을 재현한 공의회였으나 그것은 일시적이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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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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