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폐족(廢族)이다!
한 인간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가 뜻하는 바를 성취해내는 과정에는 꼭 한마디의 ‘키워드’가 있기 마련입니다.
율곡은 젊은 날에 불교에 심취하여 금강산으로 입산하여 불경을 연구하다 다시 속세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필이성인자기(必以聖人自期)”라고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성인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했다.’라는 뜻인데 성인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려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자신의 각오였습니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을 마치고 남미로 들어간 게바라는 “모든 것은 끝났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무대가 전개된다(All is over. New stage begins today.).”라는 새로운 혁명의 목표를 정했다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할 일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굳게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인권운동가였던 목사 마틴 루터 킹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희망의 말을 던지고 흑인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자신에게 다짐하는 그런 상징어를 내걸고 목표 달성에 매진하여 소기의 목적에 도달했음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다산은 아들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너희는 지금 폐족이다(汝今廢族).”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대로 그냥 세월이나 보내면 폐족에서 벗어날 길이 없지만, 폐족이 폐족에서 벗어나 청족(淸族)이 되려면
“오직 독서 한 가지 일일 뿐이다(唯讀書一事是已).”라고 말하여 폐족인 자신과 아들들이 폐족에서 벗어나 청족이 되려는 목표를 세우고 18년의 유배살이를 했습니다.
1801년 40세의 나이로 폐족이 되어 귀양살이로 18년을 보내고, 해배 후 복권되지 않은 상태로 또 18년을 보낸 뒤 75세로 세상을 떠난 다산, 폐족을 벗어나려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독서와 연구를 통해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청족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정학연·학유 두 형제도 열심히 책을 읽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학연은 70에 이르러서야 벼슬에 오르면서 마침내 폐족을 면하고 청족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남들이 자기와 자기 자식들에게 “당신들은 폐족이니 이제는 끝장이오.”라고 했다면 견디기 어려운 불명예에 마음이 아파 행여 엉뚱한 절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과 자기 아들들이 폐족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폐족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는지 한없이 애태웠던 덕택으로 다산 집안은 폐족에서 벗어났고 또 세계적인 학자와 사상가의 지위를 얻어 인류 모두의 추앙을 받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불행한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하면서, 그러한 처지와 환경에서 탈피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실천할 때에만 불행한 현실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산이 취했던 삶의 자세에서 귀감을 삼을 수 있습니다. 극한의 불행에서 좌절하고 포기해버리면 영영 끝입니다.
실천이 가능한 일을 찾아 꾸준히 이끌고 갈 때에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습니다. ‘독서 한 가지만이 폐족에서 벗어나는 길이다.’라는 다산의 말씀은 그래서 더욱 울림이 큽니다.
진짜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 당장의 불행에 못 견디는 고통을 이기고 책 읽는 일로 돌아가 조금 더 긴 세월에 희망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너무 어려운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 해보는 말입니다.
현능(賢能)한 인재가 구임(久任)케 해야
1583년 4월, 48세의 율곡 이이(李珥)는 불타는 애국심으로 잘못되어가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한 6개 조항의 폐정 개혁안을 계(啓)로 올렸습니다. 물론 율곡은 자신이 주장한 개혁안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도 못한 다음 해 49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육조계(六條啓)’라는 여섯 가지 개혁안은 450년 전의 내용이지만 나라를 통치하는 일에서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고전적인 행정개혁의 핵심사항임을 알게 해줍니다.
첫째는 임현능(任賢能), 둘째는 양군민(養軍民), 셋째는 족재용(足財用), 넷째는 고번병(固藩屛), 다섯째는 비전마(備戰馬), 여섯째는 명교화(明敎化)였으니 어느 것 하나 행정과 정치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 업무였음은 지금으로 봐서도 명백하게 옳은 주장입니다. 내용이야 글자의 해석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어진 인재를 등용하고, 백성과 군대를 제대로 먹여 살리고, 재용을 넉넉하게 마련하고, 국경을 튼튼하게 지키고, 전마 즉 싸울 말과 무기를 제대로 준비하고, 교육·문화를 통한 국민교육의 올바른 정책을 펴라는 내용입니다.
율곡의 첫 번째 개혁안은 올바른 인재를 등용하여 구임(久任), 즉 지혜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재임 기간을 오래도록 주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아침에 임명했다가 저녁에 옮겨버리면 앉은 자리가 따뜻해질 시간도 없어 아무리 의욕이 넘쳐도 실현할 방도가 없다(而朝拜暮遷 席不暇暖 雖欲察任 其道無由).”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재임기간을 짧게 하고는 절대로 좋은 정책을 실천에 옮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곡의 시대에서 300년이 지난 다산 정약용에 이르러서도 어질고 능력 있는 인재 등용을 그렇게도 강조했고, 한 번 임용하면 어짊과 능력을 발휘할 충분한 기간을 주는 ‘구임(久任)’이 절대로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전문적인 공부가 없는 사람은 정밀하게 업무를 추진하지 못하고, 구임(久任)하는 법이 폐기되면 치적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人才策」).”라고 말하여 현능한 인재를 발탁해서 등용하고, 한 번 등용한다면 업무를 제대로 파악해서 새로운 개혁 정책을 실천할 기회가 충분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 차례 강조한 내용이지만, 다산이 제안한 개혁 정책의 요체는 용인(用人)과 이재(理財)였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등용하지 않는 한 절대로 선치(善治), 잘하는 정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공부가 되어 있는 사람을 그에 맞는 분야에 임명하고 능력을 발휘할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니, 율곡의 ‘구임’과 다산의 ‘구임’은 그렇게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처럼 어진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한 정책인데,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현능(賢能)한 인재들이 발탁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으나 그렇지 못한 현실입니다. 현능한 사람이란 우선 전문성이 뛰어나고 개혁적이며 도덕성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현능한 인재를 발탁하여 그들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구임’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현능한 인재가 구임케 하는 그런 정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어지러운 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율곡이나 다산의 뜻이 지금이라도 펴지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평화로 가는 길 멈출 수 없다
하노이. 지난 제2차 북·미 회담 장소였다. 이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비교거리가 많다. 중국 대륙에서 볼 때, 베트남은 남쪽에, 우리나라는 동쪽에 위치한 오랑캐였다.
다만 우리나라는 대륙 질서에 비교적 순응적이고 적극적이었는데 반해, 베트남은 저항적이고 독립적이었다. 베트남은 대륙 지배에 저항하면서 새 왕조가 들어서곤 했으며, 명나라와 청나라의 침략도 물리쳤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을 때, 베트남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1862). 우리나라는 서구 열강의 하나인 프랑스의 공격을 물리쳤지만(1866, 병인양요), 대신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를 재빠르게 답습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지정학적으로 비슷하면서도 엇갈린 운명
2차 대전 후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각각 분단되어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북한은 미국과 전쟁을 종료하지 못한 채 휴전했고, 북베트남 하노이 정권은 미국을 물리쳤다. 통일된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86년 ‘도이 머이’ 정책으로 개혁과 개방에 나섰으며, 적국이던 미국과 교역하며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하노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가 합의되었다면 참으로 흥미로운 역사적 성취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적 은원을 과거지사로 넘기고, 자칭 문명국과 타칭 오랑캐들이 어울리며,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당당하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미국 중심, 양극 또는 다극 체제를 생각해보며, 국제질서에 관한 많은 상상력을 자극할 만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녔던 모양이다. 왜 기대했던 회담은 빈손으로 끝났는가. 회담 후 뒤늦게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요구 사항의 불일치다. 미국의 요구는 영변 폐쇄 플러스 알파였고, 그 알파에 북한이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요구한 제재 완화는 북한은 일부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이 보기엔 사실상 전부의 양보로 인식되었다. 북한은 단계적으로 접근하고(이른바 스몰딜), 미국은 일괄타결(이른바 빅딜)을 목표로 삼았으며, 이 차이를 담판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회담 무산의 또 하나의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도 불만을 토로했던 국내 요인이다.
하필 그 시간에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에 불만을 품고 북한과의 회담에 불만을 품은 여론이 미국에는 있다. 이러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울 정도의 성과가 아니라면 어중간한 합의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비록 2차 정상회담의 결과는 실망스럽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
2017년 북의 핵과 장거리탄도미사일 개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2018년 들어와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지렛대로 협상을 제안했다.
북의 요구사항은 안전보장이었다.
그리고 제재를 완화해주면 핵을 버리고 경제 발전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남북 분위기에 화해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북과 미의 정상이 우호적인 회담을 가진 것은 역사적으로 큰 진전이었다.
회담 무산 후 양쪽의 태도는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군사훈련 축소를 기정사실로 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회담 후 대내 공식 발언 기회를 통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고 한 데서 대화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실질적 진전이 없으면 동력이 빠질 우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결과 현상유지에 만족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마음이 다급할 수 있다. 이제까지 추진해온 진전을 섣불리 원점으로 돌리진 않겠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다 보면 다른 돌발 변수에 동요할 수 있다. 평화를 구축하기는 더디고 힘들어도 파괴하기는 쉽다.
무엇보다 남과 북 평범한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그냥 시간이 흐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활약이 컸던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다시 주목된다. 그러나 당장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미국 내 부정적 여론과 그 메카니즘 등을 포함하여 그간의 과정을 찬찬히 복기해 보아야 한다.
대화 기조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면서, 걸림돌을 우회하거나 극복하여 상황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창의적인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자율성과 옵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과 북 평범한 주민들의 안녕이다.
지난 해 봄에 베트남 다낭에 갔었다. 인기 있는 카페의 벽을 장식한 사진이 옛 군복차림이었다. 서빙하는 젊은이도 같은 패션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거리 내지 장식용 패션이 되어 있었다.
격세지감이었다. 우리는 언제 대동강변 카페에서 평화스럽게 커피를 마시며 분단의 상처를 추억으로 돌아볼 수 있을까.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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