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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20 16:12
<천주집>천주교리 처음 듣고는 “놀랍기가 끝없는 은하수 같아”.정조가 극찬한 ‘중용’ 답변
 글쓴이 : 게리
 

천주교리 처음 듣고는 “놀랍기가 끝없는 은하수 같아”


<15> 천주교에 빨려 들어가는 다산 형제

큰 형수 제사 지내고 오는 길에 형수 동생 이벽이 천주학 강의 “대체 무슨 말?” 
처음엔 황당 반응 호기심에 책 빌려 읽다 푹 빠져 
아버지 따라 북경가던 이승훈에 이벽이 천주당 들러 책 구입 부탁 
수학 공부위해 교회 찾은 이승훈 천주학에 훈도 조선 첫 영세 받아
중국에 남아있는 작자 미상의 마테오 리치(왼쪽)와 아담 샬 인물화. 조선 지식인들은 청나라에 들러 이들 서양인이 
전해준 문물에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천주교를 접했다.
배 안에서 처음 들은 천주학 강의

다산은 22세 나던 1783년 성균관에 처음 입학했고, 큰아들이 태어났다. 그해 회현방으로 이사해 누산정사(樓山精舍)에서 살았다. 한 해 동안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이 많았다. 이듬해인 1784년 여름, 큰형수의 동생인 이벽의 도움으로 ‘중용강의’ 70조목을 지어 올려 임금의 극찬을 받았다.

이벽은 ‘중용강의’만 도와준 것이 아니라, 다산 형제들에게 서학(西學)을 심었던 사람이었다. 이에 앞서 큰형수가 어른들 병구완을 하다가 병이 옮아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1784년 4월 15일, 누이의 기제사에 참석했던 이벽은 다산 형제와 함께 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이벽은 정씨 형제들에게 천주학에 대해 강의했다. 팔당에서 미사리까지는 여울이 져서 쏟아져 내리는 물길이었다. 이벽의 강의는 그 물길처럼 도도해 거침이 없었다.

다산은 훗날 중형 정약전을 위해 쓴 ‘선중씨묘지명(先仲氏墓誌銘)’에서 이때 일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 형제는 이벽과 함께 한배를 타고 내려오다가 배 안에서 천지 조화의 시작과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의 이치에 대해 들었다. 멍하니 놀라고 의심스럽기가 마치 은하수가 끝없는 것만 같았다.” 세상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이벽은 들뜬 상태로 신이 나서 천주교의 가르침을 펼쳤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다산의 첫 반응은 어땠을까? 다산의 표현대로라면 ‘멍하니 놀라고 의심스러웠다(惝怳驚疑)’였다. ‘창황(惝怳)’은 너무 놀란 나머지 정신이 멍해진 상태를 말한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어쩌자는 거야? 이것이 천주학에 대해 들은 다산의 첫 반응이었다.

끝도 없는 은하수

그러고 나서 다시 ‘마치 은하수가 끝없는 것만 같았다(若河漢之無極)’고 당시의 심리 상태를 설명했다. 이 대목을 ‘조선천주교회사’를 쓴 달레를 비롯해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천주교의 교리를 듣고 나서 은하수를 보는 것처럼 황홀한 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해석했다. 그렇지 않다. 이 표현은 ‘장자(莊子)’의 ‘소요유’ 편에서 따온 것이다.

‘장자’의 해당 대목은 이렇다. “내가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接輿)의 말을 들었는데, 거창하기만 하고 합당한 구석이 없었다. 한없이 펼치기만 했지 돌아올 줄 몰랐다. 나는 그의 말이 놀랍고 두려워서 은하수가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吾聞言於接輿, 大而無當, 往而不返. 吾驚怖其言, 猶河漢而無極也.)”

하한무극(河漢無極)은 중국어 사전에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고 불경스러워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표현(比喻言論荒誕不經, 難以置信)’으로 나와 있다. 그러니까 이벽에게서 처음 천주교 교리를 들은 다산의 첫 반응은 ‘황홀’이 아닌 ‘황당’이었다.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할까? 도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지?

이때 다산의 당황스러운 반응은 같은 날 쓴 시 ‘벗 이덕조와 함께 배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同友人李德操檗乘舟入京)’의 7,8구에서 “졸렬하여 맥락에 못 기댐을 깊이 알아, 남은 경전 붙들고서 옛 성현에 보답하리(深知拙劣絡無賴, 欲把殘經報昔賢)”라 한데서도 엿보인다. 놀라운 말을 들었지만 그냥 유가 성현의 글 공부나 계속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갑작스레 확 달라진 이벽의 확신에 찬 말과 행동에 호기심이 생긴 다산 형제는 상경 직후 이벽을 찾아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와 판토하(Pan-toja)의 ‘칠극(七克)’ 외에 샤바냑(Emericus de Chavagnac)이 쓴 천주교 교리서 ‘진도자증(眞道自證)’과 마이야(De Mailla)가 정리한 가톨릭 성인전 ‘성년광익(聖年廣益)’ 등을 빌려 읽었던 듯하다.

판토하가 쓴 '칠극'. 정민 교수 제공

형제는 그제서야 앞서 느낀 황당함을 지우고 “비로소 기쁘게 마음이 기울어 그리로 향하였다.(始欣然傾嚮.)” 황당함은 어느새 다시 황홀함으로 바뀌었다. 멍하니 몽롱하던 정신이 돌아오면서, 이후 형제는 강력한 은하계의 블랙홀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갔다.

“북경에 가거든 천주당을 찾아가게.”

이벽은 전부터 혼자 남몰래 천주학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있었다. 이벽은 서학이 더없이 궁금했지만 혼자 하는 공부로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벽은 성호 이익의 조카였던 정산(貞山) 이병휴(李秉休)의 문인이었다. 이벽이 1776년 10월 15일에 스승 이병휴의 영전에 올린 친필 제문이 남아 있다. 이병휴는 양명학에 기운 성호 좌파에 속한 학자였다. 권철신 권일신 형제가 그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벽이 쓴 스승 이병휴를 위한 제문.

1783년 겨울, 가깝게 지내던 벗 이승훈은 아버지 이동욱을 수행하는 자제군관 자격으로 북경을 향해 출발했다. 부친은 서장관의 직분을 맡고 있었다. 이벽은 다산의 자형이기도 한 이승훈을 찾아갔다.

“내 긴히 이를 말이 있네. 북경에 가거든 천주당을 꼭 들러 주게. 거기에 서양에서 온 선교사가 있을 걸세. 가서 그를 만나 신경(信經) 한 부를 달라고 청하고, 영세도 달라고 하게. 그러면 신부가 틀림없이 자네를 아껴 기이한 물건을 듬뿍 줄 걸세. 그저 돌아오면 절대로 안 되네.”

황사영의 백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까지 이승훈은 천주학을 잘 몰랐다. 그는 서양의 기이한 물건을 많이 받아 올 수 있다는 이벽의 말에 홀연 호기심이 동했다.

“조선 사신의 아들이 수학을 배우려고 찾아왔었습니다”

한편 당시 북경 교구장으로 있던 포르투갈 출신의 구베아(Alexander de Gouvea) 주교가 1790년 10월 6일에 바티칸의 안토넬리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여기에 당시 이승훈의 행적이 보인다.

“1784년에 조선 왕국에서 온 사신 가운데 한 사람의 아들이 수학을 너무도 배우고 싶은 마음에서 북경 교회를 찾아왔었습니다. 그리고는 수학을 가르치는 유럽인 선교사에게 수학의 원리에 대해서도 듣고 수학 책들도 얻어 갔습니다. 그런데 유럽인 선교사들은 이 조선 사람에게 수학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기회를 봐서 가끔씩 그리스도교의 원리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을 건네주기도 하는 등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은 천주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마침내 세례를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는 사신으로 온 아버지의 승낙과 동의를 받은 다음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윤민구 역주ㆍ’한국 초기 교회에 관한 교황청 자료 모음집’ㆍ가톨릭출판사ㆍ2000년ㆍ44쪽)

이승훈 초상. 원래 그는 수학을 배워 볼 생각으로 중국의 천주당을 찾았다가 천주교에 입교한다. 절두산순교성지 소장

이 편지에 따르면 당시 이승훈은 수학 공부를 위해 천주당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천주학에 훈도되어 마침내 자청해서 세례를 받기까지 했다. 애초에 그는 서양서를 구해 와서, 당시로서는 첨단의 학문인 서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볼 생각이 컸다.

어쨌거나 이승훈은 서학보다는 수학에 더 관심이 있었고, 이후 신부와의 대화 과정에서 천주교에 깊이 이끌려 조선인 최초로 영세를 받았다. 그가 받은 본명은 베드로였다. 조선 교회가 그의 반석 아래 서리라는 바람을 담은 이름이었다. 당시 신부들과의 대화는 필담으로 진행되었다. 그의 영세는 대부분의 신부들이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반대하는 중에, 유일하게 그라몽(De Grammont) 신부의 지지를 받아 성사되었다. 이승훈은 그라몽 신부가 주는 교리책과 상본(像本) 등 각종 성물을 듬뿍 받아 조선으로 돌아왔다.

제 죄를 고백합니다

1996년 윤민구 신부는 로마 바티칸 교황청 포교성 고문서고에서 이승훈이 1789년 말, 1790년 7월 11일에 북경 성당의 선교사들에게 보낸 편지 두 통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한문 원본은 사라지고,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불어로 번역되어 공증을 거친 것이었다.

이승훈이 1784년 영세를 받고 귀국한 이후, 조선 천주교회 창립을 위한 노력의 경과를 보고하고, 그간 자신의 무지로 인해 교회법을 어긴 사실들을 적시한 후, 죄의 용서를 청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는 영세 받을 당시 교리 지식이 부족했는데, 그래도 영세가 유효한가, 아니면 다시 받아야 하는가. 두 번째는 자신이 수학을 공부하려는 욕망 때문에 성교회에 입교했는데 이것이 문제 되지는 않는가. 세 번째는 북경에서 받은 천주상과 성물들을 국경 검색을 피하기 위해 외교인(外敎人)에게 맡겼다가 돌려받았으니, 이것이 혹 신성 모독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어찌 보면 꽤 유치한 수준의 대죄(待罪)였는데, 이제 막 열성적으로 신앙에 불타오르던 그로서는 어쩌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훈에게서 천주교 교리서를 전해 받은 이벽은 그 길로 외딴집을 구해 그곳에 처박혀서 골똘히 교리 학습에 돌입했고, 1784년 4월부터는 앞서 다산 형제들에게 배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광적인 열정에 휩싸여 포교 행동에 돌입하였다.

정조가 극찬한 ‘중용’ 답변, 실은 ‘천주실의’ 내용서 차용했다


<16> 1784년, 이벽의 도장 깨기

이벽과 함께 답안을 연구 마테오 리치의 개념을 끌어와 주리와 주기의 논쟁에 대입 
다산은 이후 이벽을 더 신뢰 천주학에 급격히 빨려들어가 
이벽은 유명학자들과 논쟁서 차례차례 ‘도장 깨기’에 성공 
천주교가 요원 불길처럼 번져
서학과 유학, 양 진영에서 벌인 사흘간의 대토론회 장면. 이 토론회에서 이벽은 천주교리를 바탕으로 당대의 천재라 
꼽히던 이가환을 격파했다. 탁희성 그림, 김옥희 수녀 제공
외딴 방

1784년은 한국 천주교회의 원년이었다.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동지사 일행을 수행해 서울에 도착한 것은 3월 24일. 목을 빼고 기다리던 이벽은 그 길로 이승훈을 찾아가 천주교 교리서를 전해 받고 북경에서 영세 받던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이벽은 아예 외진 곳에 방을 구해 틀어박혀 본격적으로 교리 연구에 돌입하였다.

누이의 제사에 참석하고 오는 길에 다산 형제에게 선상(船上) 강의를 한 것이 4월 15일이었으니, 그는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다산의 자형인 이승훈이 가져온 천주교 교리서를 집중 탐구했다. 다산 형제가 그의 첫 포교 대상이 되었다.

선상 강의 11일 뒤인 4월 26일 정조는 성균관의 제생들에게 ‘중용’에 대한 70가지 질문을 내려 여기에 답할 것을 명했다. 다산의 본격적인 ‘중용’ 학습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벽은 기꺼이 안내자 역할을 맡았다. 임금의 질문은 묵직했고, 대답은 대략 난감했다. 두 사람은 문제를 하나하나 토론하며 답안의 방향을 잡아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이벽의 높은 식견은 다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다산의 학문 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기(理氣)를 묻노라

정조가 ‘중용’에 대해 내린 70가지 질문 중 두 번째는 이(理)와 기(氣)의 선후에 대한 율곡과 퇴계의 주장을 짧게 인용한 뒤, 어느 것이 맞는지 적확(的確)한 의논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산의 대답은 이랬다. 조금 풀어서 옮긴다.

“신은 사단(四端)을 이(理)에 넣고, 칠정(七情)을 기(氣)에 두는 이분법적 사고에 오래 의문을 품어왔습니다. 만약 이런저런 주장에 얽매지 않고 선입견 없이 본다면 쉽게 따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기란 자유지물(自有之物), 즉 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理)는 의부지품(依附之品), 곧 실재에 기대어서만 드러나는 개념적인 것입니다. 의부지품은 반드시 자유지물에 기대야만 합니다. 실재가 있은 뒤에 개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를 펴서 이가 여기에 올라탄다(氣發理乘)고는 할 수 있어도 이를 펴서 기가 따라온다(理發氣隨)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

퇴계의 주리설을 부정하고 율곡의 주기설에 손을 들어준 모양새가 되었다. 다산의 이 견해를 두고 제출 후 비난이 비등했지만 정조는 이를 칭찬했다. 일반론을 추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다산의 이 생각은 바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천주실의’는 중국 선비와 서양 선비가 천주교의 주요 교리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기술한 책이다. 태극에 대해 논의하다가 질문이 이(理)의 문제로 옮겨갔을 때, 마테오 리치가 대답했다.

“대저 사물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지요. 자립하는 것(自立者)과 기대는 것(依賴者)이 그것입니다. 천지와 사람, 조수 초목 등 다른 것에 힘입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자립지품(自立之品)이고, 다른 물건에 의탁하여 개념을 이루는 오상(五常)이나 칠정(七情) 같은 것은 의뢰지품(依賴之品)이 됩니다.”

마테오 리치가 자립지품이라고 한 것을 다산은 자유지물(自有之物)로 살짝 바꿨고, 의뢰지품은 의부지품이라 하여 한 글자만 교체했다. 배경에 깔린 개념 사유는 똑 같다. 마테오 리치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존재론에서 실체(substance)와 속성(attribute)으로 설명한 개념, 즉 구체적 개별자로서의 현상적 실체와 추상적 보편자로서의 초월적 이데아로 구분한 내용을 성리학의 이기 개념에 대입했다. 다산은 바로 그의 이 용어를 끌어와 조선 성리학 핵심 논쟁의 진앙지인 주기와 주리의 주장에 대입했던 셈이다. 그 뒤에 이벽이 서 있었다.

답안에서 다산은 이 밖에도 인격신으로서의 상제(上帝) 개념과 귀신의 문제 등에 대해 천주교의 관점을 반영한 과감한 주장을 펼쳐, 국왕 정조에게 심각한 인상을 남겼다. 생각의 틀을 바꾸자 안 보이던 지점이 보였다. 서학의 관점으로 경학을 보니 새로운 차원이 열렸다. 천주학은 유학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보유(補儒)’의 종자가 분명했다. 이벽의 느닷없는 선상 강의에 이어, 그의 조력을 받아 작성한 ‘중용강의’ 답안이 뜻밖의 성공을 거두자, 다산은 이벽에 대한 신뢰를 업고 천주학에 한층 더 급격히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순식간에 1,000명으로 불어난 신앙 조직

북경에서 서양 신부에게 직접 영세를 받아온 이승훈은 그때까지 정작 천주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이승훈은 1789년 북경 천주당의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는 어떤 학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이미 예전에 우리 종교에 관한 책을 한 권 발견하고는 그 책을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니, 그는 천주교에 관한 문제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까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과 열정은 그가 알고 있는 지식보다도 더욱 대단하였습니다.” 이승훈이 만났다는 어떤 학자는 말할 것도 없이 이벽이다.

이승훈은 같은 편지에서 “그들이 어찌나 열렬하게 영세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던지, 저는 모든 사람들의 요청대로 제가 북경에서 영세를 받을 때 행해졌던 예절에 따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세를 베풀어 주었습니다”라고 했고, 또 “1784년 이후부터 저희들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하느님을 흠숭하는 사람들이 사방 천 리에서 천여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라고 썼다. 바싹 마른 들판에 불이 번지듯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신앙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산도 1784년 9월경에 자청해서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았다. 그의 영세명은 ‘약망(若望)’, 즉 사도 요한이었다.

이벽과 이가환의 사흘 논쟁

이가환은 자신의 생질인 이승훈과, 이벽과 다산 형제가 주축이 되어 천주교 신앙이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가환은 이를 제지하기 위해 이벽을 찾아갔다. 그 또한 서학에 미쳤던 사람이었다. 이가환은 남인계에서는 서학의 일인자였다. 하지만 철학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었지 신앙 차원은 아니었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따르면, 이벽과 이가환의 격정적인 토론은 여러 명의 입회 아래 무려 사흘간이나 계속 되었다. 황사영의 백서에도 이 토론회의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산도 ‘정헌묘지명’에서 이가환이 그에게 가서 힐난했지만, 이벽이 장강대하 같은 웅변으로 철벽처럼 고수하므로 말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고 적었다. 세 사람의 기록이 같다.

전투에 가까운 사흘간의 논쟁은 이벽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천하의 천재 이가환도 이벽의 논리를 당해낼 수 없었다. 달레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가환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하나하나 그 논적에게 지적되고 조목조목 반박되었다. 이벽은 세밀한 점에까지 추궁하여 이가환의 논리의 건축을 모두 파괴하고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더 나아가 “그것은 마음이 순진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많이 사로잡았으며, 새 신자들의 마음속에 그 지배력을 강화하였다”고 썼다. 다산도 분명 이 자리에 입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토론에서 패한 뒤 이가환이 남겼다는 다음 한 마디가 인상적이다. “이 도리는 훌륭하고 참되다. 그러나 이를 따르는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달레는 이후 이가환이 천주교에 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썼고, 황사영의 백서에서는 이와는 달리, 이후 이가환이 제자들을 권유하여 교리를 가르치고, 이벽 등과 아침저녁으로 비밀리에 왕래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적었다.

이가환을 무너뜨린 뒤 권철신을 찾아간 이벽. 학식과 인품이 뛰어나 영향력이 컸던 권철신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라 생각했다. 탁희성 그림, 김옥희 수녀 제공

도장 깨기

이가환과의 논쟁에서 승리한 이벽은 한층 자신감을 얻었다. 다음 번 논전은 이기양(李基讓)과의 사이에서 벌어졌다. 그는 천하의 이가환이 이벽에게 투항했다는 소문을 듣고 이벽에게 달려갔다. 다시 긴 토론이 벌어졌다. 달레는 ‘조선천주교회사’에서 이렇게 썼다. “이기양은 토론을 견뎌낼 수 없어 침묵을 지켰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믿는 듯하였으나, 솔직하게 그렇다고 시인할 결심은 하지 못했다.” 2차전 또한 이벽의 완벽한 승리였다.

두 차례의 논전에서 승리한 일로 한껏 고무된 이벽은 본격적인 도장 깨기에 나섰다. 그의 다음 타깃은 권철신이었다. 권철신은 성호학파의 한 흐름을 장악한 이른바 녹암계(鹿菴系)의 수장이었다. 그는 당대에 손꼽는 학자로 명망이 높았다. 고매한 인격까지 갖춰 모든 이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벽은 권철신이 천주교로 넘어 오면 그 파급력이 실로 엄청날 것이라 생각했다.

이벽은 다짜고짜 권철신의 집이 있는 양근의 감호(鑑湖)로 찾아갔다. 이벽은 10여일간 감호에 머물며 권철신과 그의 아우 권일신을 천주교의 진리로 이끌기 위해 설득을 거듭했다. 권철신이 망설이는 사이에 그의 아우 권일신은 곧바로 천주교 입교를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다. 얼마 못 가 권일신은 그의 모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중인들에게까지 천주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켰다. 이후 양근 지역은 신앙촌이 형성되어, 1800년 5월에 지평(持平) 신귀조(申龜朝)가 임금께 올린 글에는 “양근 한 고을은 서학이 대단히 성행해서 안 배우는 사람이 없고, 행하지 않는 마을이 없다”고 썼을 정도였다. 천주교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고, 초기 천주교회의 중심부에 다산이 있었다.

정민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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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19-02-20 16:17
 
이승훈 .
원래 그는 수학을 배워 볼 생각으로 중국의 천주당을 찾았다가 천주교에 입교한다;;;.
게리 19-02-20 16:19
 
이승훈에게서 천주교 교리서를 전해 받은 이벽은 그 길로 외딴집을 구해
그곳에 처박혀서 골똘히 교리 학습에 돌입, 열성적 포교;;;.
게리 19-02-20 16:21
 
이벽은 유명학자들과 논쟁서 차례차례 ‘도장 깨기’에 성공
천주교가 요원 불길처럼 번져;;;
바람의언덕 19-02-20 18:25
 
아버지 따라 북경가던 이승훈에 이벽이 천주당 들러 책 구입 부탁 수학 공부위해 교회 찾은 이승훈 천주학에 훈도 조선 첫 영세 받아.
바람의언덕 19-02-20 18:27
 
‘마치 은하수가 끝없는 것만 같았다(若河漢之無極)’고 당시의 심리 상태를 설명했다. 이 대목을 ‘조선천주교회사’를 쓴 달레를 비롯해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천주교의 교리를 듣고 나서 은하수를 보는 것처럼 황홀한 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해석했다.
바람의언덕 19-02-20 18:29
 
유럽인 선교사들은 이 조선 사람에게 수학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기회를 봐서 가끔씩 그리스도교의 원리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을 건네주기도 하는 등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은 천주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마침내 세례를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람의언덕 19-02-20 18:30
 
이승훈은 서학보다는 수학에 더 관심이 있었고, 이후 신부와의 대화 과정에서 천주교에 깊이 이끌려 조선인 최초로 영세를 받았다. 그가 받은 본명은 베드로였다. 조선 교회가 그의 반석 아래 서리라는 바람을 담은 이름이었다.
바람의언덕 19-02-20 18:33
 
다산도 1784년 9월경에 자청해서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았다. 그의 영세명은 ‘약망(若望)’, 즉 사도 요한이었다.
바람의언덕 19-02-20 18:35
 
천주교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고, 초기 천주교회의 중심부에 다산이 있었다.
늘배움 19-02-20 19:37
 
다산은 22세 나던 1783년 성균관에 처음 입학했고, 큰아들이 태어났다. 그해 회현방으로 이사해 누산정사(樓山精舍)에서 살았다.
늘배움 19-02-20 19:39
 
‘장자’의 해당 대목은 이렇다. “내가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接輿)의 말을 들었는데, 거창하기만 하고 합당한 구석이 없었다.
한없이 펼치기만 했지 돌아올 줄 몰랐다. 나는 그의 말이 놀랍고 두려워서 은하수가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
늘배움 19-02-20 19:42
 
이승훈이 1784년 영세를 받고 귀국한 이후, 조선 천주교회 창립을 위한 노력의 경과를 보고하고,
그간 자신의 무지로 인해 교회법을 어긴 사실들을 적시한 후, 죄의 용서를 청한 내용이었다.
겨울 19-02-20 20:44
 
그의 이야기를 들은 다산의 첫 반응은 어땠을까? 다산의 표현대로라면 ‘멍하니 놀라고
의심스러웠다(惝怳驚疑)’였다. ‘창황(惝怳)’은 너무 놀란 나머지 정신이 멍해진 상태를 말한다.
겨울 19-02-20 20:46
 
이 편지에 따르면 당시 이승훈은 수학 공부를 위해 천주당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천주학에 훈도되어 마침내 자청해서 세례를 받기까지 했다.
루나 19-02-20 23:13
 
서학의 관점으로 경학을 보니 새로운 차원이 열렸다. 천주학은 유학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보유(補儒)’의 종자가 분명했다. 이벽의 느닷없는 선상 강의에 이어, 그의 조력을 받아 작성한 ‘중용강의’ 답안이 뜻밖의 성공을 거두자, 다산은 이벽에 대한 신뢰를 업고 천주학에 한층 더 급격히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산백초 19-02-21 07:48
 
1784년 4월 15일, 누이의 기제사에 참석했던 이벽은 다산 형제와 함께 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이벽은 정씨 형제들에게 천주학에 대해 강의했다.
산백초 19-02-21 07:50
 
한편 당시 북경 교구장으로 있던 포르투갈 출신의 구베아(Alexander de Gouvea) 주교가 1790년
10월 6일에 바티칸의 안토넬리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여기에 당시 이승훈의 행적이 보인다.
산백초 19-02-21 07:51
 
이가환과의 논쟁에서 승리한 이벽은 한층 자신감을 얻었다. 다음 번 논전은 이기양(李基讓)과의 사이에서 벌어졌다.
휘몰이 19-02-23 20:40
 
아버지 따라 북경가던 이승훈에 이벽이 천주당 들러 책 구입 부탁
수학 공부위해 교회 찾은 이승훈 천주학에 훈도 조선 첫 영세 받아
휘몰이 19-02-23 20:41
 
이승훈에게서 천주교 교리서를 전해 받은 이벽은 그 길로 외딴집을 구해 그곳에 처박혀서
골똘히 교리 학습에 돌입했고, 1784년 4월부터는 앞서 다산 형제들에게 배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광적인 열정에 휩싸여 포교 행동에 돌입하였다.
휘몰이 19-02-23 20:42
 
이벽은 유명학자들과 논쟁서 차례차례 ‘도장 깨기’에 성공
천주교가 요원 불길처럼 번져
휘몰이 19-02-23 20:44
 
‘천주실의’는 중국 선비와 서양 선비가 천주교의 주요 교리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기술한 책이다.
사오리 19-02-25 03:04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잖은가. 이런 기회를 자신과 주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으면 자신의 마음 근육이 한층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높은 산봉우리
를 바라보고 산길을 오르다 보면 제 아무리 건장하고 산행 경험이 많은 사람이
라도 목이 타고 다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일수록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면의 근육을 더 단단히 만들수 있다.
호반도시 19-02-26 03:45
 
이벽은 ‘중용강의’만 도와준 것이 아니라, 다산 형제들에게 서학(西學)을 심었던 사람이었다.
호반도시 19-02-26 03:50
 
하한무극(河漢無極)은 중국어 사전에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고 불경스러워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표현(比喻言論荒誕不經, 難以置信)’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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