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학에서 과학으로
일제 식민지시대에 향가(鄕歌) 연구로 일가를 이루었던 국학자 양주동이 남긴 글 가운데 <몇 어찌>라는 수필이 있다. 1970년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두루 읽혔던 것이다. 서당에서 한문만 공부했던 그는 중학교 속성과정에 편입하면서 낯선 학문용어들과 마주치게 된다. '기하'라는 수학용어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밤새도록 그 뜻을 궁리하였으나 '몇 기(幾), 어찌 하(何)', 즉 '몇 어찌'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해석밖에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선생님한테 지오메트리(geometry)의 머리글자인 '지오'를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 '기하'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의문을 푼다. 그의 글 속에는 전통학문에서 서구과학으로 '개종'하는 순간이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
다음날 기하 시간이었다. 공부할 문제는 '정리1. 대정각은 서로 같다.'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곧은 두 막대기를 가위 모양으로 교차, 고정시켜 놓고 벌렸다 닫았다 하면 아래위의 각이 서로 같을 것은 정한 이치인데, 무슨 다른 '증명'이 필요하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허허 웃으시고는, 그건 비유지 증명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럼, 비유를 하지 않고 대정각이 같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음, 봐라." 선생님께선 칠판에다 두 선분을 교차되게 긋고, 한 선분의 두 끝을 A와 B, 또 한 선분의 두 끝을 C와 D, 교차점을 O, 그리고 …AOC를 a, …COB를 b, …BOD를 c라 표시한 다음, 나에게 질문을 해가면서 칠판에다 식을 써 나가셨다.
"a+b는 몇 도?" "180도입니다."
"b+c도 180도이지?" "예."
"그럼, a+b=b+c이지?" "예."
"그러니까, a=c 아니냐." "예, 그런데, 어찌 됐다는 말씀이십니까?"
"잘 봐라, 어떻게 됐나." "아하!"
멋모르고 "예, 예." 하다보니 어느덧 대정각(a와c)이 같아져 있지 않은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그 감격, 나는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 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 조국의 모습이 눈앞에 퍼뜩 스쳐감을 놓칠 수 없었다. 현대 문명에 지각하여,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예, 예." 하고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 나는 그 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여기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 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라는 표현 속에 서구의 신학문을 맞이하던 이 땅 지식인들의 태도(놀라움)가 잘 들어 있다. 그 놀라움 밑에는 '과학은 곧 진리'라는 판단과, 또 그것을 배움(모방)으로써 '진보'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깔려있다. 그러니 이 글은 전통 유교학문, 즉 경학(經學)의 세계를 버리고 서양근대의 과학(科學)으로 개종하는 길목에서의 고해성사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2. '과학' : 사이언스의 번역
처음 '사이언스'라는 낯선 개념을 만났을 때 동양인들은 신기한 기술쯤으로 치부했다. 기술로 치자면 폭약이나 나침반, 인쇄술이며 도자기 등등 이쪽 기술도 서양에 꿀릴 게 없는 터였다. 이런 생각이 동도서기(東道西器)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같은 말 속에 담겨 있다. 이 구호들은 우리에게 사이언스가 기술적 차원, 즉 '생활에 이로운 물건을 만드는 한낱 기술' 정도로 이해되었음을 보여준다. '동양식 학문의 바탕 위에 서양기술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낙관주의가 동도서기란 말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한데 사이언스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힘'이었다. 사이언스는 군함과 대포로 상징되는 '폭력'으로(아편전쟁이 동아시아 국가들에 미친 충격을 연상해보라!), 양의학과 새로운 건축술로 상징되는 '지식'으로(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사이언스의 힘을 압축해서 알려준다) 또는 전기와 전차 혹은 양옥과 수세식 변기로 상징되는 '문명'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니 사이언스는 단순히 기술차원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것은 양주동의 "아찔한 현기증" 체험처럼 하늘과 땅, 사람과 사물에 대한 생각이 파천황으로 뒤집어지는 경험을 통과해야만 획득되는 전혀 낯선 새로운 세계였다.
이 즈음 동양인들은 사이언스의 정체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 놀람과 당혹의 흔적이 번역어들 속에 잘 남아 있다. '사이언스'의 번역어로는 세 가지가 쓰였다. 하나는 격치(格致)요, 둘은 학문(學問)이며, 셋은 과학(科學)이었다. (실은 이 번역어들은 서양문물과 맞닥뜨린 중국과 일본의 지성들이 고민한 것이지 조선의 학자들은 거기에 끼지 못했다. 즉 우리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서양언어를 일본과 중국에서 번역한 개념들을 통해 연구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격치'란 유교경전인 <대학>에 서술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준말이다. 즉 '사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지식을 획득한다'는 전통적 공부법을 사이언스의 번역어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객관세계(사물)에 지식이 존재한다'는 전제에 있어서는 둘이 흡사할지 몰라도, 주자학식 '격치', 즉 윤리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공부와 서양의 사이언스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서로 다른 개념이었다. 그러니 둘 사이가 매끄럽게 번역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난점으로 '격치'라는 번역어는 머지않아 사라지고 만다.
흥미로운 점은 19세기말 사상의학 체계를 수립했던 이 땅의 의학자 이제마(李濟馬, 1837~1900)가 <격치고(格致稿)>라는 이름의 책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제마가 '격치'를 사이언스의 번역어로 삼아서 책이름으로 끌어 썼다면(그는 의학자이면서 자연과학자였으니 이런 추론은 가능하다), <격치고>란 현대어로 번역하자면 '과학 에세이'(Essay on Science)가 되는 셈이다. 어쨌건 '격치'라는 번역어 속에서는 전통적 개념을 바탕으로 사이언스를 이해하는 보수적인 자세가 깔려 있다.
사이언스의 두 번째 번역어는 '학문'이다. 유교경전인 <중용>에는 "도문학(道問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배움의 길이란 질문하며 배워나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학문'이라는 번역어는 <중용> 속의 그 '문학(問學)'을 변형하여 사용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학문'이라는 번역 속에는 사이언스를 보편적 학술로 보는 동양인들의 '놀람'이 깃들어 있다. 사이언스를 '하나의 지식'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로 보는 두려움 섞인 놀라움 말이다. 학문(學問)이란 곧 '배우고 질문한다'는 뜻이니, '진리(사이언스)를 배운 다음에야 질문할 수 있다'는, 수동적이고 위축된 학습태도를 '학·문'이라는 번역어 속에서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학문'이란 말에는 '사이언스는 보편적 진리다'라는 경탄이 실려 있다. 오늘날 학문이 사이언스의 번역어로서의 위상을 벗어나 학술일반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 역시 이런 속내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세 번째 번역어는 '과학'이다. 이것은 특정한 학술을 지칭하는 '교과학'(敎科學)을 뜻하는 말이었다. (오늘날 식으로는 '교과목'이 그에 합당하는 말이 되겠다.) '과학'이란 특정한 학문, 즉 '자연과학'(natural science) 분야를 특칭하는 번역어인 것이다. '학문'이란 번역어가 사이언스의 보편성을 강조한 표현이라면, '과학'은 사이언스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번역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란 말에 깃든 이러한 중립적이고 구체적인 뜻이 사이언스의 본래 뜻과 합치되었기에 '치지'와 '학문'을 젖히고 번역어로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3. 진리, 물리, 윤리
전통적 학문의 핵심은 윤리(倫理)에 있었다. 성균관의 대학본부를 명륜당이라고 칭하는데, 곧 '윤리(倫)를 밝히는(明) 전당(堂)'이라는 뜻이니, 동양사회의 진리=윤리라는 항등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윤리란 '나'가 상대와 가장 적절하게 관계를 맺는 방법을 이른다. 어버이에 대한 자식으로, 형에 대한 아우로서, 국가에 대한 국민으로서, 아내에 대한 남편으로서 적절하게 응대하기 위해 익히는 훈련, 이것이 윤리 공부의 내용이다. 그리고 그 훈련방법과 진행과정이 <소학>과 <대학> 속에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것이다. <대학>에 의하면 윤리의 범위는 나의 몸 훈련(수신)에서 시작해, 집안과 나라 다스리기, 그리고 평천하를 거쳐 끝내는 천지자연과 함께 더불어 호흡하는 데까지 미친다.
이처럼 동양의 학문이 '나'와 자연(객관)이 함께 어우러지는 '주객합일'의 경지를 지향한다면, 서양식 과학은 '나'라는 주관이 배제된 '객관 속에 진리가 있다'는 객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동양학문이 윤리라면, 서양학문은 물리(物理)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사이언스를 '치지'라는 윤리적 세계로 오역하기도 하고, 또 '학문'이라는 보편적 학술로 오역하기도 하면서 좌충우돌하던 근대동양사회는 '과학'이라는 번역을 통해 사이언스와 제대로 소통하면서 점차 '윤리의 세계'를 벗어나 '물리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변화 양상이 서두에 인용한 양주동의 글 속에서도 잘 나타났다) 이때부터 동양사회는 '진리는 더 이상 윤리가 아니라 물리 속에 깃든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이제 우리는 '유길준이 서쪽으로 간 까닭'을 알 수 있게 된다. <서유견문(西遊見聞)>이란 곧 '서양에서 보고 들은 과학적 세계에 대한 소개'다. 그의 책은 새로운 발견에 대한 놀라움과 경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그가 본 새 세계를 영탄조로 소개하기에 급급하다. (과학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서유견문>이 말하려는 것은 '과학은 곧 진리다'는 정언명법이다. <서유견문>이 계몽하려는 요지는 진리로서의 과학을 선취한 나라가 문명국이요, 그렇지 못한 나라는 야만국이라는 것. 그러니 '개화'란 야만에서 문명으로 난 '외길'일 따름이다.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야만-반개화-개화'라는 일직선의 진보노선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도 '과학은 곧 진리다.'
그 후 이 땅을 계몽하려는 과학의 선구자들은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 역시 한결같이 서구의 '보편적 진리'(사이언스)를 이 땅의 몽매한 백성들에게 배우고 익히게끔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소개 글 역시 서구과학에 감동된 독후감이었지, 질문을 던진 평론은 아니었다. 이런 과학에 대한 숭배의 자세는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는 각오를 다지던 양주동의 글 속에도 숨어 있다. 그리고 과학=진리=힘에 대한 선망은 1960년대 과학연구소들의 입구에 새겨져 있던 과학입국(科學立國)이라는 구호로 농축된다. 즉 우리의 근대란 서양과학에 대한 숭배와 그 모방을 통한 국가건설과 힘의 축적이라는 정치적 특성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반전의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960년대 출간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진리라는 항등식을 의심하게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쿤은 과학도 그 자체로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과학자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나 사회적 요인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 또는 그런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던 사람이다.
나아가 1970년대 우리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과 신과학(New Science) 운동은 '과학은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지식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각성시키는 또 다른 기폭제였다. 우리사회가 과학=진리=근대라는 항등식의 주박에서 점점 풀려나고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그리고 점차 과학이라는 유일신을 선망하던 눈길을 되돌려 우리네 발밑을 돌이켜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허나, '황우석 사태'보다 더 근본적으로 과학에 대한 재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준 사건은 없었다. 그것은 최첨단의 과학적 주제 뒷면에 윤리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발견과, 또 과학과 윤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려야말로 과학발전의 성패를 가른다는 인식을 환기시켜주었다. '객관적'이라는 과학도 과학자의 덕성, 인격 그리고 윤리와 같은 도덕적 주제들, 다시 말해 과학을 얻기 위해 내팽개쳤던 경학 속의 주제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발견이야말로 참으로 묘하고 신비로운 경험인 것이다.
그렇다면 근세초기 양주동의 글속에 잘 드러나는 과학에 대한 각성에서, 황우석 사태에서 나타난 과학에 대한 반성에 이르는 우리의 진리를 향한 도정은 '서구의 과학'과 '전통의 경학'이 다시 만나는, 회귀의 원형인 셈이다. 윤리와 물리가 혼융하여 일체가 된 자리에 깃드는 것이 진리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까?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농협 356-0719-4623-83안정주
※ 통합경전계좌 : 국민은행 901-6767-9263노영균sjm5505@hanmail.net
※ 투자금 계좌: 하나은행 654-910335-99107 안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