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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11 07:05
‘선생님’이냐 ‘쌤’이냐 / 법희(法喜)를 아내로, 자비를 딸로 삼았네 / 지사(志士)와 애국자를 추모하며
 글쓴이 : 선유도
 

‘선생님’이냐 ‘쌤’이냐

금년 초 서울시 교육청은 ‘서울교육 조직문화 혁신방안’을 발표했는데 이 중 수평적 호칭제가 눈길을 끈다. 학교 현장에서 구성원 상호 간의 호칭을 ‘쌤’이나 ‘님’으로 통일하자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교장선생님’을 ‘교장 쌤’ 또는 ‘교장 님’으로, ‘담임 선생님’을 ‘담임 쌤’ 또는 ‘담임님’으로 불러야 하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다. 


통상적으로 사용해온 김 선생님, 이 선생님도 ‘김 쌤’ 또는 ‘김 님’, ‘이 쌤’ 또는 ‘이님’으로 불러야 하는가? 이 방안에 따르면 학생들도 국어선생님을 ‘국어 쌤’으로 수학선생님을 ‘수학 쌤’으로 부르게 된다.  

 

그러나 이 수평적 호칭제가 각계각층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여론이 악화되자 서울시 교육청은 한발 물러섰다. 특히 학생들이 선생님을 ‘쌤’으로 부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서, 이 호칭은 사제 간이 아니라 교직원 상호간의 호칭에만 적용된다고 물러선 것이다. 


후에는 이마저도 학교의 자율에 맡기기로 한 발 더 물러섰다. 이 문제에 대하여 조희연 교육감은 “최근 교권 추락이 크게 우려되는 현실 속에서 수평적 조직문화 개선 정신이 충분히 부각되지 않고 호칭 문제만 제기되어 안타깝다”는 소회를 밝혔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서라는데

 

조희연 교육감은 여전히 ‘수평적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한데 나는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지금 초·중등학교에서 조직의 수평화가 그렇게 절실하냐는 것이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절대로 수평화 되어서는 안 되고, 교사 상호 간의 관계도 꼭 개선해야 할 만큼 수직적이라 보기 어렵다. 


기업체에서의 부장과 평사원의 관계처럼 학교에서의 부장과 평교사의 관계는 그렇게 수직적이지 않은 것이다. 설령 다소 수직적인 면이 있더라도 ‘쌤’으로 부름으로써 그 관계가 수평화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둘째는 호칭의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선생(先生)’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에서는 최고의 존칭이었다. 아무에게나 선생이란 호칭을 붙일 수 없고 퇴계나 율곡, 다산과 같이 학덕이 높은 분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지금은 ‘선생’이란 호칭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으나, 학생이 자기를 가르치는 스승에게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당연히 선생이라 불러야 옳다고 생각한다. 

 

‘쌤’은 일종의 비속어(卑俗語)가 아닌가? 

더구나 조 교육감의 말처럼 “교권 추락이 크게 우려되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쌤’과 같이 상스러운 말을 삼가야 할 것이다. 교권의 추락을 포함하여 초·중등학교에서 해결해야 할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현시점에서 시급히 다루어야 할 사안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조직문화 혁신’에 매달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수평적 조직문화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다. 또 ‘선생님’이란 호칭 때문에 교육의 질이 훼손되는지, 호칭을 ‘쌤’으로 바꿈으로써 교육의 질이 개선되는지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딱딱한 ‘교수님’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선생님’ 호칭과 관련해서 대학 구성원 간의 호칭 문제도 한 번 짚어본다.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은 자기를 가르치는 교수를 ‘교수님’으로 부르는데 나 개인적으로는 이 호칭이 못마땅하다. ‘교수’는 존칭이 아니라 ‘의사’, ‘변호사’, ‘공무원’과 같은 직업 명칭이다. ‘교수’에 ‘님’자를 붙여 ‘교수님’이라 해도 존칭이 되지 못한다. 이건 마치 ‘의사님’, ‘공무원님’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재직할 때 우리 학과의 학생들이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도록 타일렀다. “나를 조금이라도 존경하는 마음이 있으면 선생님으로 불러라. 교수님이라 부르면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다보지도 않을 것이다”라 말해 주었다. 


내가 존경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존경받고 싶다고 남이 나를 존경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나를 존경해달라고 강요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다만 ‘교수님’을 존칭으로 잘못 알고 있는 학생들을 깨우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교수님이란 명칭은 어딘지 딱딱하고 사무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에 선생님이란 명칭은 훨씬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선생님! 이 얼마나 다정한 말인가. 이건 나만의 개인적인 기호일까?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법희(法喜)를 아내로, 자비를 딸로 삼았네

18년의 귀양살이 동안 다산은 참으로 많은 시를 지었습니다. 궁액에 빠진 자신의 신세를 한없이 한탄하는 시도 많았지만, 세상을 걱정하고 나라를 염려하면서 불쌍하고 가난한 농민들의 아픔에 무한한 동정과 연민의 정을 토로한 시도 매우 많았습니다. 


꼬박 10년의 세월을 보낸 다산초당의 삶에서 뜻깊은 시들을 많이 지었는데 한편으로는 경학(經學)연구에 온 정성을 바치다가도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면 끝도 없이 시들을 지었습니다.  

 

「송풍루잡시(松風樓雜詩)」라는 제목의 16편의 시는 다산초당의 곁 동쪽에는 동암(東菴), 서쪽에는 서암(西菴)을 따로 짓고 동암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으로 서암은 학생들의 거소로 삼았던 곳인데, 그때의 동암의 다른 이름으로 ‘송풍루’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송풍루잡시」란 바로 송풍루에 기거하면서 여러 가지 글제로 읊었던 시였습니다. 지금 가보아도 동암의 곁에는 큰 노송이 버티고 서 있는데, 그때도 그런 소나무가 서있고 바람이 불면 솔바람 소리가 또렷이 들려서 송풍루라는 이름을 지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에 사노라니 일마다 청빈이 몸에 배어

물욕일랑 사라지고 내 몸 하나뿐이라오

타향은 내 땅 아니란 말 못 믿겠고

평지에 지내면서도 신선처럼 산다네

약 찧는 절구 이끼 낄 새 없이 자주 찧으나

차를 자주 못 다려 화로에 먼지 끼네

법희(法喜)를 아내 삼으니 그것도 좋으니

부처 말씀 모두 틀려도 그것은 진리라네 

山居無事不淸貧


物累消除只一身


未信他鄕非我土

好從平地作仙人

頻舂藥臼煩無蘚


稀煮茶鑪靜有塵

法喜爲妻洵可樂


佛言皆妄此言眞


외롭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귀양살이, 산속의 서러운 독방에서 혼자 살면서 온갖 생각에 괴로움이 없으랴만, 모든 물욕 버리고 타향을 고향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내용이 애처롭습니다. 


신선세계가 아닌 땅 위에서 지내지만 마음은 신선과 같고, 몸이 아파 약 달이는 날이 없지 않아 약절구야 번질거리지만 차 끓이기는 쉽지 않아 화로에 먼지만 끼인다니 삶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유마경(維摩經)』이라는 불경에 “법희는 아내로 삼고, 자비(慈悲)는 딸로 삼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법을 듣고 희열을 느낀다는 ‘법희’를 아내로 삼는다니 불법이 높은 도승(道僧)이야 당연하지만 속인(俗人)의 한 사람인 다산이 법희를 아내로 삼고 살아간다니 얼마나 곤궁하고 궁색한 이야기인가요. 그렇게 해서라도 외롭고 궁함을 극복하고 그렇게 큰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다산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시에서 다산의 불교관이 보이는 점은 따져야 합니다. 다산의 여러 글에는 불교에 대하여 찬성하지 않았던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님들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경우 “이런 훌륭한 사람이 왜 하필이면 불교에 빠졌는가?”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많은 불경에 대하여 높은 지식을 지녔고, 큰 학승(學僧)들과 아주 가까이 지냈으면서도 불교의 진리에는 견해를 달리했던 다산의 생각을 이런 대목에서 보게 됩니다. 

 

청빈하게 귀양살던 다산의 모습을 이 시 한 편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지사(志士)와 애국자를 추모하며

3·1절이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3·1절의 위대한 혁명정신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지도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치던 애국자들의 거룩한 뜻을 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나라, 내 조국, 내 땅도 아닌 중국이라는 외국에서 모진 풍파를 견디면서 임시정부를 수립한 애국선열들의 간절한 애국심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습니다. 태극기를 흔들던 애국자들의 뜻이 다 이룩되고, 임정을 수립한 독립지사들의 마음에 충족되는 나라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는 그분들의 뜻과 정신이 초석이 되었음도 정확한 사실입니다.  

 

오직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던 그분들의 오롯한 애국심이 새삼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일신의 몸과 가정이라는 사적인 욕구는 송두리째 버리고, 대의와 충심 때문에 목숨까지 헌신짝처럼 버렸던 그 위대한 살신(殺身)의 용기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인(仁)을 이루고자 함이지 나라에 충성하려는 뜻도 아니었네(只是成仁 不是忠)”라고 지사(志士)·시인 매천 황현 선생은 그의 절명시(絶命詩)에서 읊었습니다. 벼슬하여 나라의 녹(祿) 한 푼 받은 적도 없는데 충성까지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사람 노릇, 인(仁)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이뤄보려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안중근 의사, 윤봉길·이봉창·유관순 열사 등 모두가 나라에서 무슨 혜택을 크게 받았다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겠는가요. 오직 성인(成仁)하려는 뜻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말합니다. “지사와 인인(仁人)은 살기를 구하려고 인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서 인(仁)을 이룸은 있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고 말하여 지사와 인인은 인을 이루는 성인(成仁) 때문에 몸을 바친다고 했습니다. 다산은 보충의 해석을 내립니다. 

“지사란 도에 뜻을 둔 선비이고, 인인은 인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志道之士 仁人 仁心之人).”라고 해석하여 도(道)에 뜻을 두고 어진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야 대의(大義)를 위해서 몸을 바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지사(志士)·의사(義士)·열사(烈士)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지만, 그들은 물론 그분들 후손들까지 가난과 고통,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온 세월이 얼마이던가요. 


반대로 그들을 해치고 그들을 밀고하고 탄압하던 일에 앞장서서 일본에 부역하고 친일한 사람들만 부귀호강을 누렸고, 또 그들의 후예들만 잘 먹고 잘 살던 세월은 얼마였던가요. 그리고 또 지금이라고 그런 부류들이 사라진 세상인가요. 


세계 어느 나라에서 광복 이전에 인을 해치고 지사와 인인을 탄압한 세력들이 광복 이후에도 활개치고 살아간 나라가 있었던가요. 우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점이요, 그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주류사회의 일부라는 문제입니다. 

 

목숨이 어떤 것인가요,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면서 조국을 독립시키고 민족을 살려낸 지사·인인들이 친일파들보다 더 대접받을 수 없는 나라라면 공자 같은 성인의 말씀도 무용으로 돌아가니 슬픈 일이 아닌가요. 이제라도 친일파는 청산하고 그 잔재를 깨끗이 씻어내는 국민과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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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19-03-11 07:06
 
조희연의 멍청 짓
<<선생님 대신 ‘쌤’이라 하자?>>
선유도 19-03-11 07:09
 
<<다산의 불교관이 보이는 점>>
선유도 19-03-11 07:10
 
<<친일파와 잔재 청산>>
겨울 19-03-11 07:33
 
그러나 이 수평적 호칭제가 각계각층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여론이 악화되자 서울시 교육청은 한발 물러섰다.
겨울 19-03-11 07:35
 
또한 교수님이란 명칭은 어딘지 딱딱하고 사무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에 선생님이란 명칭은 훨씬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겨울 19-03-11 07:47
 
많은 불경에 대하여 높은 지식을 지녔고, 큰 학승(學僧)들과 아주 가까이 지냈으면서도
불교의 진리에는 견해를 달리했던 다산의 생각을 이런 대목에서 보게 됩니다.
산백초 19-03-11 13:29
 
통상적으로 사용해온 김 선생님, 이 선생님도 ‘김 쌤’ 또는 ‘김 님’, ‘이 쌤’ 또는 ‘이님’으로 불러야 하는가?
이 방안에 따르면 학생들도 국어선생님을 ‘국어 쌤’으로 수학선생님을 ‘수학 쌤’으로 부르게 된다.
산백초 19-03-11 13:31
 
불법을 듣고 희열을 느낀다는 ‘법희’를 아내로 삼는다니 불법이 높은 도승(道僧)이야 당연하지만
속인(俗人)의 한 사람인 다산이 법희를 아내로 삼고 살아간다니 얼마나 곤궁하고 궁색한 이야기인가요.
산백초 19-03-11 13:33
 
지사(志士)·의사(義士)·열사(烈士)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지만,
그들은 물론 그분들 후손들까지 가난과 고통,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온 세월이 얼마이던가요.
늘배움 19-03-11 15:51
 
조희연 교육감은 여전히 ‘수평적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한데 나는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늘배움 19-03-11 15:52
 
우리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수평적 조직문화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다. 또 ‘선생님’이란 호칭 때문에
교육의 질이 훼손되는지, 호칭을 ‘쌤’으로 바꿈으로써 교육의 질이 개선되는지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바람의언덕 19-03-12 20:31
 
기업체에서의 부장과 평사원의 관계처럼 학교에서의 부장과 평교사의 관계는 그렇게 수직적이지 않은 것이다. 설령 다소 수직적인 면이 있더라도 ‘쌤’으로 부름으로써 그 관계가 수평화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바람의언덕 19-03-12 20:32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지금은 ‘선생’이란 호칭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으나, 학생이 자기를 가르치는 스승에게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당연히 선생이라 불러야 옳다고 생각한다.
바람의언덕 19-03-12 20:33
 
‘선생님’이란 호칭 때문에 교육의 질이 훼손되는지, 호칭을 ‘쌤’으로 바꿈으로써 교육의 질이 개선되는지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바람의언덕 19-03-12 20:35
 
불법을 듣고 희열을 느낀다는 ‘법희’를 아내로 삼는다니 불법이 높은 도승(道僧)이야 당연하지만 속인(俗人)의 한 사람인 다산이 법희를 아내로 삼고 살아간다니 얼마나 곤궁하고 궁색한 이야기인가요. 그렇게 해서라도 외롭고 궁함을 극복하고 그렇게 큰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다산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바람의언덕 19-03-12 20:36
 
안중근 의사, 윤봉길·이봉창·유관순 열사 등 모두가 나라에서 무슨 혜택을 크게 받았다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겠는가요. 오직 성인(成仁)하려는 뜻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바람의언덕 19-03-12 20:37
 
목숨이 어떤 것인가요,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면서 조국을 독립시키고 민족을 살려낸 지사·인인들이 친일파들보다 더 대접받을 수 없는 나라라면 공자 같은 성인의 말씀도 무용으로 돌아가니 슬픈 일이 아닌가요.
사오리 19-03-13 02:50
 
"내가 너를 바라보았을 때 너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통은 대화와 몸짓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언
의 대화는 눈빛 하나로도 가능하다. 진정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소통하다 보
면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 무언의 대화로 뜻을 전달하고 멈출 수 있
는 도구가 바로 눈빛인 것이다. 소통부재의 시대. 눈빛만으로 나누는 대화가
더 소중하고 빛날 수 밖에 없다.
호반도시 19-03-15 06:31
 
조희연 교육감은 여전히 ‘수평적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한데
나는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지금 초·중등학교에서 조직의 수평화가 그렇게 절실하냐는 것이다.
둘째는 호칭의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호반도시 19-03-15 06:32
 
선생님! 이 얼마나 다정한 말인가.
호반도시 19-03-15 06:33
 
『유마경(維摩經)』이라는 불경에 “법희는 아내로 삼고, 자비(慈悲)는 딸로 삼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법을 듣고 희열을 느낀다는 ‘법희’를 아내로 삼는다니 불법이 높은 도승(道僧)이야 당연하지만
속인(俗人)의 한 사람인 다산이 법희를 아내로 삼고 살아간다니 얼마나 곤궁하고 궁색한 이야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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