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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07 05:06
산사서 부치는 선지식의 편지-11.日 천태종 개조 사이초 스님이 쿠카이 스님에게. 12. 태고 선사가 석옥 선사에게
 글쓴이 : 호반도시
 

산사서 부치는 선지식의 편지

11.日 천태종 개조 사이초 스님이 쿠카이 스님에게

천태종 개조 사이초 스님과 쿠카이 스님 사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황송하게도 서신을 받아보니 약속하신 대로 진언(眞言)의 전수를 허락하시니 한없이 기쁩니다. 여전히 변함없는 두터운 후의에 깊이 감사 드릴 뿐입니다. 

저는 요즘 천태법화를 가르치는데 있어 진언과 천태가 나란히 잘 전수되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념하고 있습니다. 지금 스님의 배려까지 받게되니 제 마음이 더 없이 굳건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현재 사람들은 참으로 인도하기 어렵고, 또한 관청이 출가자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제도는 너무나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진언과 천태, 양종이 함께 회통하고, 궁극적인 가르침의 경지는 또한 한가지입니다. 

진정으로 양자의 마음을 하나로 해서 후계자의 육성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되리라고 봅니다. 어째서 자기가 신봉하는 교법에만 집착하거나 혹은 그것을 증오하는 무리가 있겠습니까. 『법화경』과 『금광명최승왕경』의 신봉은 환무제(736∼806)의 서원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법화일승은 진언의 가르침과 어떠한 차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일경』을 배우는 전수자를 해마다 서로 잘 골라 정해 전법을 펴는데 전념할 수 있기를 엎드려 원하옵니다. 자세한 것은 사자(使者)가 상세히 말씀드릴 것입니다. 아무쪼록 유념해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자 노승 사이초 올림


천태종의 개조인 사이초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일본 천태종의 개조인 사이초(最澄 조,767∼822) 스님이 810년 8월 19일 일본 진언종을 개창한 쿠카이(空海, 774∼835) 스님에게 보낸 편지이다. 사이초 스님의 글에서는 법을 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스님은 세속의 나이로나 법랍으로나 자신보다 훨씬 적은 쿠카이 스님에게 법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제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수행자로 있을때 나찰로부터 ‘세상살이 모든 일은 항상치 못하고 덧없으니, 이것이 바로 나고죽는 법이니라’는 게송을 듣고 나머지를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려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사이초 스님이 국가의 불교통제에 대해 명확히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사회의 종교가 그러하듯 일본의 불교는 국가의 철저한 지원과 통제 속에서 때로는 옹호를 때로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특히 국가차원에서 특정 종파의 출가자를 제한하고 있는 ‘넨분도샤(年分度者)’는 불교 자주화 및 대중화의 큰 걸림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님은 국가의 불합리한 정책에 대해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넨분도샤’를 폐지토록 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으며, 일본불교가 꽃필 수 있도록 한 자양분이 됐다.

편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스님의 한 평생은 구법의 길 자체였다. 중국 후한의 효헌황제의 후예로 현 시가현에서 태어난 스님은 12세에 국분사(國分寺)로 출가해 나라의 동대사(東大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유식, 선, 화엄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천태교학에 천착한 스님은 수 많은 강의를 통해 천태학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이것을 인연으로 스님은 국가가 선발해 관리들과 함께 당(唐)에 갈 수 있는 입당 유학생으로 뽑히기도 했다.

804년 7월 구법의 길에 오른 스님은 온갖 험난한 과정을 거쳐 두 달만에 중국 명주에 도착했다. 출가한 이후 늘 꿈꿔오던 중국 땅을 마침내 밟은 것이다. 스님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천태지의 스님이 활동하던 천태산이었다. 

스님은 그곳에서 보살계를 받고 좌주 행만(行萬)스님으로부터 천태의 법을 널리 펴라는 부촉을 받았다. 이곳에서 스님은 일본에 천태사상을 뿌리내리겠다는 서원을 다지게 되는 것이다.

스님이 당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중점을 둔 것 중의 하나는 불경을 구하는 일이었다. 
온갖 수소문과 부탁으로 9개월 뒤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는 230부 460권에 달하는 전적을 실을 수 있었다. 일본 조정에서도 대환영이었다. 조정은 스님이 가져온 전적을 서사하도록 하는 동시에 일본 최초의 관정도량을 설치해 각 종파들에 널리 보급했다. 

관련 이미지

그리고 마침내 806년 정월 스님의 비원이었던 천태종 개창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여기서 만족치 않았다. 822년 6월 입적하는 그날까지 국가에 대한 불교의 자립을 목표로 한 대승계단 운동 및 교리논쟁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던 것이다.

사이초 스님은 쿠카이 스님과 함께 종합불교를 지향했던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스님이다. 이러한 열린 사상으로 온갖 사상을 받아들이며 옳지 않다고 믿는 것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스님의 이 편지는 쿠카이 스님과 교류했던 다른 24통의 편지와 함께 『홍법대사전집』, 『전교대사전집』, 『헤이안유문』 등에 전한다.

12. 태고 선사가 석옥 선사에게

태고 선사가 석옥 선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유혹에 빠지지 말고 권세가에 휩쓸려 법 전하겠단 생각 버려라” 답장


제자 고려국 중흥선사(中興禪寺)에 머무는 보우는 아홉 번 절하고 스승 석옥 대선사께 삼가 올립니다. 지난 8월 1일 스승님 곁을 떠나온 뒤 하루도 우러러 사모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다음해 봄에는 다시 나아가 종신토록 모시려 하오나 혹 업연(業緣)에 얽매어 원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허나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한결같이 교훈에 의지하고 분부를 따라 나와 남을 이롭게 하되, 불법을 천하게 팔지 않고 나아가서는 후세에 이르기까지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러하오나 이것이 어찌 제 혼자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바로 부처님과 조사님네들의 본원이 이끌어야 될 것입니다.

지난 번 스님을 뵈온 것은 큰일을 이어 받는데 있었고, 오늘 조서(詔書)를 받들어 개당하게 된 것도 그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졸렬한 말로 이 마음을 어찌 다 전할 수 있겠습니까. 살펴 주시기를 삼가 바라오며, 다시 절하며 본사 스승님의 기후 만복하심을 간절히 축원합니다. 행여 고향사람의 편이 있거든 자비로 물어 주시면 못내 위로가 되겠습니다.



이 편지는 현재 조계종의 종조로 받들어지고 있는 태고 보우(1301~1382) 스님이 1348년 중국 천호암에 상주하고 있는 석옥 청공(1272?1352) 스님에게 보낸 글이다. 

보우 스님은 이 편지를 보내기 얼마 전 스승 석옥 스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수만리 험한 길을 꺼리지 않고 자신을 찾아왔던 중년의 구도승.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비범하고 한 소식을 깨우친 그를 보며 느꼈던 여러 가지 상념들. 부디 후세에 정법을 전하기를 바란다는 간곡한 당부의 내용과 어떻게 고향땅으로 잘 돌아갔는지 궁금하다는 등 내용이었다.

이를 받아본 보우 스님의 답장이 바로 이 편지다. 
이 글에는 스승 석옥 스님을 얼마나 지극히 공경하는지, 또 후세에 법을 전하겠다는 보우 스님의 굳은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그 해 말, 보우 스님의 편지를 받아본 석옥 스님은 또다시 고려국 보우 스님에게 짧은 서신 한 장을 다시 보낸다. 며칠 전 장로(보우 스님)의 편지를 잘 받았고 법을 여법하게 설해 불법을 드날리고 있다는 점, 설법할 때 자신을 위해 향을 사른 일, 스님과의 만남이 아마도 수많은 전생부터 인연이 닿았으리라는 것, 자신의 건강이 갈수록 좋지 않아지고 있다는 점 등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보우 스님에게 유훈 같은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세상에 나가 사람을 위할 때에는, 반드시 본분의 일로써 어리석은 이들을 격려해 이끌어 줄 것이요, 부디 아첨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부귀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 속에서만 휩쓸려 법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간단히 오간 편지지만 이 글에서 보우 스님은 핏줄을 잡아당기는 듯한 아픔과 사명감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팔순에 가까운 노 스승이 깨달음의 신표로 천년을 전해 온 가사를 전해주었을 뿐 아니라 또다시 앞일에 세세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까닭이다.

임제선 석옥선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보우 스님이 석옥 스님을 만난 것은 스님의 나이 47세 되던 1347년 초여름이었다. 보우 스님은 휘청거리는 고려말 혼란스러운 시대에 찬란한 불교의 불꽃을 지피는 것은 정통 선불교를 도입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끝내 임제선의 정통을 이는 석옥 스님으로부터 법을 받고 이를 해동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승의 자애로움과 제자의 공경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편지는 『태고화상 어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지와 때는 게으름을 따라 생기는 것. 밝은 지혜로 열심히 정진하여 자기에게 박힌 화살을 뽑으라.
(숫타니파타)

서로 원한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 집안 사람들이 하늘에 나는 것을 질투하여 하늘에 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질투심을 지니면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짓을 하게 되므로 나중에 지옥보를 받게 될 것이다. 질투심에 덮여 나쁜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질투심은 마음의 더러움이 되어 재물이나 명예에 이롭지 않고
도리어 무섭고 두려운 일을 가져온다.
(중아함 원가경)

지혜있는 사람은 힘들여서 착한 일을 하고도
자기가 한 선행에 매달리지 않는다.
(별역잡아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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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도시 19-03-07 05:08
 
먼지와 때는 게으름을 따라 생기는 것.
밝은 지혜로 열심히 정진하여
자기에게 박힌 화살을 뽑으라.
(숫타니파타)
호반도시 19-03-07 05:10
 
질투심은 마음의 더러움이 되어 재물이나 명예에 이롭지 않고
 도리어 무섭고 두려운 일을 가져온다.
(중아함 원가경)
호반도시 19-03-07 05:11
 
지혜있는 사람은
힘들여서 착한 일을 하고도
 자기가 한 선행에 매달리지 않는다.
(별역잡아함경)
겨울 19-03-07 08:51
 
일본 천태종의 개조인 사이초(最澄 조,767∼822) 스님이 810년 8월 19일 일본 진언종을 개창한 쿠카이(空海, 774∼835)
스님에게 보낸 편지이다. 사이초 스님의 글에서는 법을 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겨울 19-03-07 08:53
 
스님이 당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중점을 둔 것 중의 하나는 불경을 구하는 일이었다.
온갖 수소문과 부탁으로 9개월 뒤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는 230부 460권에 달하는 전적을 실을 수 있었다.
겨울 19-03-07 08:55
 
간단히 오간 편지지만 이 글에서 보우 스님은 핏줄을 잡아당기는 듯한 아픔과 사명감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산백초 19-03-07 17:31
 
스님은 세속의 나이로나 법랍으로나 자신보다 훨씬 적은 쿠카이 스님에게 법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제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산백초 19-03-07 17:32
 
804년 7월 구법의 길에 오른 스님은 온갖 험난한 과정을 거쳐 두 달만에 중국 명주에 도착했다. 출가한 이후 늘
꿈꿔오던 중국 땅을 마침내 밟은 것이다. 스님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천태지의 스님이 활동하던 천태산이었다.
보름달 19-03-07 17:32
 
전생에 수행자로 있을때 나찰로부터 ‘세상살이 모든 일은 항상치 못하고 덧없으니, 이것이 바로 나고죽는 법이니라’는 게송을 듣고 나머지를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려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보름달 19-03-07 17:32
 
일본의 불교는 국가의 철저한 지원과 통제 속에서 때로는 옹호를 때로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산백초 19-03-07 17:33
 
스승의 자애로움과 제자의 공경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편지는 『태고화상 어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름달 19-03-07 17:34
 
스님이 당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중점을 둔 것 중의 하나는 불경을 구하는 일이었다.
온갖 수소문과 부탁으로 9개월 뒤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는 230부 460권에 달하는 전적을 실을 수 있었다. 일본 조정에서도 대환영이었다. 조정은 스님이 가져온 전적을 서사하도록 하는 동시에 일본 최초의 관정도량을 설치해 각 종파들에 널리 보급했다.
보름달 19-03-07 17:37
 
‘세상에 나가 사람을 위할 때에는, 반드시 본분의 일로써 어리석은 이들을 격려해 이끌어 줄 것이요, 부디 아첨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부귀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 속에서만 휩쓸려 법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보름달 19-03-07 17:37
 
먼지와 때는 게으름을 따라 생기는 것.
밝은 지혜로 열심히 정진하여
자기에게 박힌 화살을 뽑으라.

(숫타니파타)
보름달 19-03-07 17:38
 
질투심을 지니면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짓을 하게 되므로
 나중에 지옥보를 받게 될 것이다.
질투심에 덮여 나쁜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질투심은 마음의 더러움이 되어 재물이나 명예에 이롭지 않고
 
도리어 무섭고 두려운 일을 가져온다.

(중아함 원가경)
보름달 19-03-07 17:38
 
지혜있는 사람은
힘들여서 착한 일을 하고도
 자기가 한 선행에 매달리지 않는다.

(별역잡아함경)
늘배움 19-03-07 19:41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사이초 스님이 국가의 불교통제에 대해 명확히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사회의 종교가 그러하듯 일본의 불교는 국가의 철저한 지원과 통제 속에서 때로는 옹호를 때로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늘배움 19-03-07 19:42
 
그리고 마침내 806년 정월 스님의 비원이었던 천태종 개창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여기서 만족치 않았다.
822년 6월 입적하는 그날까지 국가에 대한 불교의 자립을 목표로 한 대승계단 운동 및 교리논쟁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던 것이다.
늘배움 19-03-07 19:43
 
보우 스님이 석옥 스님을 만난 것은 스님의 나이 47세 되던 1347년 초여름이었다. 보우 스님은 휘청거리는
고려말 혼란스러운 시대에 찬란한 불교의 불꽃을 지피는 것은 정통 선불교를 도입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떠났던 것이다.
게리 19-03-08 19:12
 
법화일승은 진언의 가르침과 어떠한 차이도 없습니다;;;.
게리 19-03-08 19:13
 
일본 천태종의 개조인 사이초(最澄 조,767∼822) 스님;;;
게리 19-03-08 19:14
 
보우 스님은 휘청거리는 고려말 혼란스러운 시대에 찬란한 불교의 불꽃을
지피는 것은 정통 선불교를 도입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사오리 19-03-13 02:51
 
"내가 너를 바라보았을 때 너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통은 대화와 몸짓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언
의 대화는 눈빛 하나로도 가능하다. 진정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소통하다 보
면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 무언의 대화로 뜻을 전달하고 멈출 수 있
는 도구가 바로 눈빛인 것이다. 소통부재의 시대. 눈빛만으로 나누는 대화가
더 소중하고 빛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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