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적해석과 관념이라는것은 매일매일 아침 우리가 세수를 하며 묵은 때를 씻어내고 새단장을 하듯이
변화해야하는것인데 변화하는 시점에 변화를 하지 못하고 실생활에 있어 음식을 골고루 먹고, 상제님신앙인이라면 모름지기 의식의 호연지기를 기르고 인식의 범위를 확장해나가야 하는데 한 사람의 과욕과 망상으로 오로지 왜곡된 종통에 올인하여 지도자는 젊은시절의 순수했던 열정을 저버린채, 내외적으로 확장되어지는 현실에 대처하지못하고
스스로 그 부족한 내적역량을 감추고자 영원할것같은 허상의 종통이라도 확보하기위해 시한부개벽이라는 조급증카드를 남발하여 오늘날 누가 보아도 스스로 자가당착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自家撞着 [ 자가당착 ] 출전 자기(自己)의 언행(言行)이 전후(前後) 모순(矛盾)되어 일치(一致)하지 않음
지금의 증산도는 태사부님께서 일평생 백절불굴의 투지와 인고의 세월을 바쳐가며 창교하신 증산도가 아닙니다.
지금쯤 전 인류와 세계를 향해 조용히 그리고 웅장하고 치밀하게 날실과 씨실을 엮어가는 베틀의 바디처럼 역량을 드러내야 하는데 지금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태사부님 선화이후 현 지도자께서도 젊은 시절 순수한 열정의 자세를 잃어버리시고 오직 주위의 간교한 간신의 감언이설에 자신이 그토록 확보하고자 하는 종통이 확보될줄 착각하여, 시장바닥의 상생도 없고 상도덕도 없는 상인처럼 자신의 무조건적인 이익과 상대방의 압살을 위해 시도 때도 없이 경찰서에 민원을 넣고 고소장을 남발하고 계십니다.
고소를 접수받은 담당자는 고소건을 대략 보아도 쌍방의 사정을 압니다. 그렇지만 법적절차에 따라 쌍방진술을 받고 판사앞으로 사건을 올려보냅니다. 지금 증산도내부의 모든 역량이 이 고소건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고소절차 또한 사위라는 간신의 농간에 따라 치밀하게 고소인을 배분하고 특히 혁명가님을 비롯한 대부분 천륜을 대상으로 고소를 진행중인 것으로 압니다.
그 상세한 의도와 간교한 계락은 잘은 모르지만 현재 이 송사를 보더라도 결말이 어떻게 정리가 되든 즉 이기든 지든, 가장 큰 피해자는 개인적으로는 사부님 자신이 될것임은 자명한 일입니다.
법이라는 것이 개인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위한것인데 사부님은 어떠한 연유로 이 법을 악용하여 스스로 천륜을 해하려하십니까? 이 고소전이 단순히 처음에 의도한대로 끝나지는 않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처음엔 무방비로 당했겠지만 사위라는 간신과 사부님께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법을 악용했듯이 비록 불시의 기습을 당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대방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수세를 공세로 바꿀것입니다, 사위라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혼자의 간교한 두뇌로 처리해야 하며, 모든 정력을 교리적인 종통의 수립에만 매두몰신하여 신도들은 청맹과니로 만들어버린, 실정에 어두운 사부님과 몇몇의 측근이라는 우호세력밖에 없을것입니다.
결국 사위의 목적은 잠시 종도사라는 존함을 가진 우호세력이지만, 결국에는 사부님마저 내팽개칠것이란 예감이 드는건 저간의 상황과 그간의 예측오판의 송사과정에도 모든 송사를 취하하지 않는 것은, 이미 벌여놓은 송사라는 썩은 실오라기가 혹여라도 단단한 탄소섬유로 둔갑할수도 있다는 0.1%의 어리석은 행운을 부여잡고자 하는 사위의 안간힘 쓰며 종종걸음치는 모습이 그런 예감을 들게 하는것입니다.
모든 일이라는게 그 일이 벌어지고 수습되는 과정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루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인내가 무디어질쯤에 일이 수습되는 과정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소식으로부터 정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즉, 선천의 세상을 사는 과정이 모두 선과 악, 정의와 비정의로 대변되지는 못합니다.
물론 사람사는 세상이 이치적으로는 선하게 정의롭게 모든 일이 실현되어야 하지만 실재는 그렇지못한게 세상사입니다. 이 송사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기에 쉽게 감정이 요동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만 이 부끄러운 송사가 필연적으로 거쳐야할 과정이라면 만인을 위한 법을 악용하는 몰염치한 사위라는 간신의 행태와 그 서푼어치 아둔한 간교함에 농락당하시는 사부님을 지켜보며 무언의 저울추가 어디로 기울어져야할지 익히 알며 예의주시할뿐입니다.
사위라는 분은 이 송사를 시작함에 있어서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속전속결로 처리해야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예상했겠지만)
그렇지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혁명가님은 우호세력(무언으로 주시하는 의식을 가진 모든 눈동자)을 확보하여 처음에는 작은 돌멩이로 깨뜨릴 계란이었지만 속전속결이라는 시간을 놓치면 그 이후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쳐야 하는 역전현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피아를 떠나 현실적인 데이터를 갖고 말씀드리는것입니다. 현실적인 데이터는 선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 최선의 의지,강력한 의지가 그것을 구분할뿐입니다. 아무리 선과 악,정의와 비정의가 혼재하는 세상이라 해도 시간은 역시나 선과 정의의 가치에 손을 들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대다수 고난과 역경을 말없이 감내한 이땅위의 민초들, 즉 인간의 의지가 결국은 세상의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천지일월사체 황극제라는 분이 법정에 출두하지않기위해 해외를 돌아다니시고 기어이 법정에 출두하여 진술을 하고 사위라는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사부님께 약도 주고 병도 주면서 사부님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위라는 사람은 메마른 오후에 사부님을 앞세워 모두를 진흙탕의 구덩이로 몰아넣었습니다. 물론 본의 아니게 끌려들어간 분들은 이 모든 것이 사위의 간교한 계략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것입니다.. 더군다나 철저하게 천륜을 파괴해가며 그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천륜이란 인식적으로는 이 세상에 나올때부터 나를 보살펴주고 나를 이해해주고 나의 생명적인 외로움을 덜어주고
이 세계의 모든 종의 근간을 유지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이 천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적인 보호자이며, 조건없는 동질성을 가진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천륜을 위협당하고 타의가 나의 천륜을 해하고자 한다면 당사자는 본연의 자아를 위해
그에 맞서 분연히 대항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적인 관념, 철학적인 관념을 초월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천륜을 버리거나 해한 사람은 자신이 돌아가야 할 자아의 고향을 뭉개버리고 지워버리는 절체절명의 우를 범하게 되는것입니다.
자신의 천륜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인존시대에 걸맞은 지도자라 할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고소건의 고소내용처럼 그러한 내용들이 과연 이처럼 천륜을 끊어버릴정도로 중차대한 문제입니까?
아무리 고소라는 것이 법적으로 쌍방의 과실에 대한 피해와 보상을 판결하는것이라 해도 그 법적판단의 배경뒤에
증산도의 모든 신도들과 혁명밀알들,그리고 더욱 간과하지 말아야 될 대한민국내에서 매일매일 부단한 삶이란 것을 인식해가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자연히,마땅히 그러하리라! 할 수 있는 공감을 얻어낼수 있다고 자신할수있습니까?
황극제님이건,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상인이건, 우리 아파트 경비원이건 누구에게 있어서도 천륜이라는 것은 존귀한
한 인간의 최후의 보루이며,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근본의 바탕위에 맺어진 동질성의, 천지가 맺어준 나의 동질분신체라고 해도 조금도 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 천륜을 난도질 할 정도로 무엇이 급박하고 무엇이 사리판별을 못하게 하십니까?
자신의 소중한 천륜도 지키지 못하면서 무슨 의기로 비겁에 빠진 천하사람을 건져 살릴수 있으며
황극제, 종도사라는 우격다짐의 종통이라는 지위가 천륜이 모두 잘려나가 자신의 손과 발을 모두 잘려 몸둥이만 굴러다녀도 좋을만치 가치가 있는것입니까?
이 모두가 앞에서는 감언이설과 ,교언영색으로 사람의 혼을 빼는 간교한 사위의 농간이며
뒷구멍에서는 단체의 단물을 올곧이 빼먹으려 부단히 종종걸음치는 사위의 계락입니다.
인식전환과 개인양심의 회복
증산도의 모든 간부들과 모든 신도들은 천지대세의 시간과정을 헤아리는 혜안을 터득하셔야 합니다.
사위가 벌이는 저 종종걸음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사람의 인식세계를 가늠해볼줄 알아야 합니다.
사위는 세상이 변천하는 시간의 변국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일류대학을 나왔어도 그 학식이 그 사람의 인격이나 혜안을 갖추어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학식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평생 전문적으로 익힌 지식과 관념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힘듭니다.
사위라는 사람의 인식세계는 이 세계가 흥망성쇠라는 주기적 변국과정의 마디로 흘러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인식한다 해도
열달이 차야 산모가 아이를 낳듯이 그 오랜시간을 감내할 의지와 역량이 선천적으로 부족한사람입니다.
그 역량이 너무나 부족하여 배고프면 무조건 입에 집어넣고 보는 동물적본능의 습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시간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한 생명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인내심은 부족하고 동물적습성으로 인한 물질적욕구와 명예욕구에 대한 의지만이 비정상적으로 과항되어 그 목적을 이루고자 간교한 감언이설과 교언영색에 아무런 양심의 척도도 없이 능수능란한 재주?를 보이게 되는것입니다.
그런데 왜 증산도의 성도님들은 이 어리석은 의지의 화신인 간교한 사위의 종종걸음치는 흉중을 간파하지 못하는것입니까? 일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일인데 왜 스스로들 유아기적 인식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단견을 가진 청맹과니를 자처하는지 모를일입니다.
지금 세상의 변천을 보면 문득 문득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수천년전부터 구조화된 물체와 기록으로 전해지는 인류의 역사와 유산을 어느정도는 찰떡같이 믿고 있습니다.그것이 유불선 경전이 되었든, 역사서의 기록이 되었든 문화유산이나 족보가 되었든 어쨌든 증거? 가 있으므로.
하지만 한 사람이 백년도 못사는 생을 살다가면서 인습적인 학습을 통해 인식하는것보다.그때 그때 당국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살기위해 살아남기 위해, 인식의 전환을 달리해야 할 실재적,실천적 인식의 전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나를 가르쳐주는것이지 무슨 얼어죽을 미완의 도전책이나 누가봐도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마패쪼가리에 매달려 스스로 자작사당 성구해석의 기복신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상제님이 좋아도 아무리 증산도가 비젼이 있다고 해도 나를 상제님과 증산도만 있는 울타리에 가두어 두면 안됩니다.
그것은 상제님과 태모님과 증산도 전체를 그리고 나를 인식적으로 스스로 욕되게 하는것입니다.
진실로 증산도를 사랑하고 상제님을 공경한다면 아직도 우리보다 월등히 더 많은, 세상사람들의 인식세계와 공감되지 못하는 우리들의 나만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엄연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거대세계로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그 발걸음이 진정한 구도자이며 진정한 신앙의 첫걸음이 될것입니다.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한 발걸음과 더불어 우리의 신앙은 천지공사라는 틀속에서 스스로 먹거리를 찾고 스스로 일거리를 만들어내어 스스로 우리들의 천지집을 지어가는 과정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알아도 알수없고 몰라도 알수밖에 없는 인고의 과정이라는 지고지난한 개척과정이 그러한 능동적이고 스스로 일을 창조해내는 성사재인의 판을 만들기위한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없이 흘러가는 시대변화와 환경은 촌음을 다투며 과거의 찬란하고 잔인했던 우리들의 인식들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새로운 시간을 창조해내고 있건만, 결말에는 필시 파국을 맞이할 음흉한 의지의 화신인 사위는 지금도 종종걸음을 치고 있고
사부님은 인식의 영역이 무한개방되고 확장되는 이 시대에 이해불가, 패권주의 종통확립의 야망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양심적인 지성을 확대하기보다는 아집과 독선에만 사로잡혀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그 유한한 생명력의 해원잔치에 여우같은 사위도 끼어들어 그 역시 동상이몽의 유한한 생명력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있습니다.
역시 시간에 대한 인내심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말많은 인간(옥,짬)들은 오늘도 한 구석에서 갈데까지 간 의지박약의 자신들을 성찰하지는 못하고
기본적인 인격을 망각한채 온갖 입에 담지 못할 패악과, 혁명가님과 그 가족에 대한 인신모욕을 서슴치않고 있습니다. 이 역시 아무런 죄의식없이 천륜의 소중함을 짓밟는 그 결말을 가늠하지 못하는 가련하다밖에 할 수 없는 인생들입니다.
그 어리석은 자신들의 뜻에 동조할 사람은 더 이상 없을것입니다. 피아를 떠나 자신들의 세력확장에 뚜렷한 한계성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스스로도 제어못하는 분노와 망령된 객기로 의기투합하여 모인 모임이 얼만큼의 생명력이 있을는지?
인터넷이라는 바다 한귀퉁이에 자신들은 복면마스크에 검은 옷을 입고 몰래 발을 담그며 온갖 패악무도의 객기로
열심히 허장성세를 꾸미고 있지만 그 생명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지켜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