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약용의 효변론爻變論
정약용 효변론의 핵심은 ‘효爻’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다산은 '주역사전'의<효변표직설爻變表直說>에서 “효는 변 함을 의미하니 변하지 않음은 효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해석하고있다. 이러한 해석의 경전적 근거는 '계사전'의 “효라는 것은 변함을 말 하는 것이다.” 라는 구절에 있다. 다산은 '주역' 해석에 있어서 이른바 ‘이경증경以經證經’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경전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어떤 해석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매우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효爻’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기존의 ‘효爻’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고려한 것이다. 다산에 의하면 ‘효爻’와 ‘획畫’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효爻’는 변함을 의미하지만 ‘획’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건괘乾卦의 초구初九는 변함을 의미하는 효이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획이 아니다. 따라서 건괘乾卦의 초구를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획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 '주역사전'의 <효변표爻變表>에서 건괘乾卦 초구를 건지구乾之姤로 표현하고 있다. 건괘乾卦 구이九二는 건지동인乾之同人이 되고, 건괘乾卦 구삼九三은 건지이乾之履가 되고, 건괘乾卦 구사九四는 건지소축乾之小畜이 되고, 건괘乾卦 구오九五는 건지대유乾之大有가 되고, 건괘乾卦 상구上九는 건지쾌乾之夬 가 된다. 이처럼 '주역'의 64괘 384효는 모두 모지모某之某의 형태로 이 해해야 하는 것이다.
다산의 이러한 효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주역사전'의 <효변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爻變表 爻變表下
乾初九爲乾之姤 屯初九爲屯之比
九二爲乾之同人 六二爲屯之節
九三爲乾之履 六三爲屯之旣濟
九四爲乾之小畜 六四爲屯之隨
九五爲乾之大有 九五爲屯之復
上九爲乾之夬 上六爲屯之益
用九爲乾之坤
諸卦六爻之變,皆倣此。 〇用九、用六,唯乾、坤有之。
右六爻,各成一卦。 故三百八十四爻, 其實三百八十四卦也。
위의 표의 설명에 나와 있듯이 각 효는 각각 하나의 괘가 되고 따라 서 384효는 결과적으로 384괘가 된다. 효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기존의 '주역' 해석과는 다른 해석이어서 역학사에 있어서 새로운 면모임에 틀림이 없다.
다산의 효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시괘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주지하듯이 각 효는 자리를 나타내는 초初, 이二, 삼三, 사四, 오五, 상上과구九와 육六이라는 숫자가 합쳐져 있다. 그래서 건괘乾卦의 각 효는 초구, 구이, 구삼, 구사, 구오, 상육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숫자 구와 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괘법에 의하면 구와 육 뿐만 아니라 칠과 팔이라는 숫자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괘법에 의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칠과 팔은 효를 나타내는 숫자가 되지 못하고, 구와 육이 효를 나타내는 숫자가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다산의 효에 대한 인식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주역'의 효를 나타내는 숫자가 칠과 팔이 아니고 구와 육이 된 것은 ‘변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이 다산의 인식이다. 효를 나타내는 숫자 구와 육에 대해 다산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구는 노양老陽이고 육은 노음老陰이다. ‘노 ’ 의 개념에는 변하지 않음이 없으니, 구와 육은 이미 변했음을 나타내는 명칭이고, 변하지 않으면 구와 육이 아니다. 시괘법에 따라 세 번 모두 홀수(1, 3, 5, 7, 9)를 얻으면 그 수는 구가 된다. 세 번 모두 짝수(2, 4, 6, 8, 10)를 얻으면 그 수는 육이 된다. ……
‘초구初九’라고 한 것은 초획이 변동하여 음이 된 것을 말하며, ‘초육初六’이라고 한 것은 초획이 변동하여 양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즉, 주공이 효사의 글을 지을 때부터 이미 변한 것을 위주로 하여 그 물상을 이 용한 것이니, 효변을 알지 못하면 주공의 효사를 읽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다산은 시괘법에 나오는 숫자 구와 육을 효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시괘법에 따라 숫자 구와 육은 이미 변했음을 나타내는 명칭이며, 효도 이에 따라 이미 변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것이다. 따라서 다산의 설명에 의하면 건괘乾卦의 초구에 나오는 ‘잠룡潛龍’은 건乾의 하괘인 건乾이 이미 손巽으로 변했을 때의 물상을 나타내며, 곤괘坤卦의 초육에 나오는 ‘이상履霜’은 곤坤의 하괘인 곤坤이 이미 진震으로 변했을 때의 물상을 나타낸다. 만약 효를 나타내는 숫자가칠이나 팔이었으면, 효는 변하지 않게 되어 건괘乾卦의 초구에 나오는 ‘잠룡潛龍’은 건乾의 하괘인 건乾의 물상을 나타내고, 곤괘坤卦의 초육에 나오는 ‘이상履霜’은 곤坤의 하괘인 곤坤의 물상을 나타내게 된다.
위와 같은 다산의 효변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역사전'을 보면, 건괘乾卦 초구인 ‘잠룡이니 쓰지 말라’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는 건괘乾卦가 구괘姤卦로 변했음을 나타낸다. 시괘법에 따라 제1획이 세번 모두 홀수를 얻으면 초구라고 한다. 건괘乾卦는 진震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본래는 모두 용이다. 변하여 손巽이 되니 손은 곧 숨음이 되고, 엎드림이 되고, 들어감이 되니 이것이 ‘잠룡’이다. 들어가 나오지 않고, 때에 따 라 쓰지 못하므로 ‘잠룡이니 쓰지 말라’라고 한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처음에 나오는 ‘이는 건괘乾卦가 구괘姤卦로 변했음을 나타낸다’이다. 원문은 ‘此乾之姤也’이다. 이러한 표현 은 '주역사전'의 384효에 대한 설명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목이다. 이러한 표현은 다산의 효변론을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산의 '주역' 해석은 그 시작이 바로 이 효변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효변론은 다산 역학의 시작이요 전제이다. 그만큼 다산 역학에 있어서 효변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전제가 있기 때문에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건괘乾卦 초구의 ‘잠룡’이라는 말을 해석할 수 있다.
건괘乾卦 초구는 건괘乾卦가 구괘姤卦로 변했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괘인 건乾이 아닌 손巽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손巽의 상징인 숨음이나 엎드림이나 들어감을 알아야 비로소 ‘잠룡’이라는 말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산 역학이론의 핵심이자 역학사의 일대 전환이라 평가받고 있는 효변론의 경전적 근거는 무엇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경증경以經證經’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다산이 아무 런 근거없이 이러한 이론을 제기할 까닭은 없다. 이에 대해 다산은 유교
13경 중의 하나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특히 다산은 '춘추좌씨전' 중에서 '주역'의 점법과 관련된 내용을 뽑아 <춘추관점보주春秋官占補註>라는 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이 편을 살펴보면, 다산은 '춘추좌씨전' 중에서 '주역'의 점법과 관련된 17 조항의 사례를 정리해 놓고 있다. 이 17조항의 사례 중에서 다산은 특 히 소공昭公 29년(B.C. 513년)에 실린 채묵蔡墨의 사례를 핵심적인 근거로 제시한다.
가을에 용이 강絳이라는 땅의 교외에 나타났다. (이 일에 대해) 위헌자가 채
묵에게 물었다. 채묵이 대답하기를, “ '주역'에도 있습니다. 건지구乾之姤의
효사에는 ‘잠룡이니 쓰지 말라’라고 되어 있고, 건지동인乾之同人의 효사에
는 ‘용이 밭에 나타나다’라고 되어 있고, 건지대유乾之大有의 효사에는 ‘용
이 하늘을 날다’라고 되어 있고, 건지쾌乾之夬의 효사에는 ‘항룡이니 후회
함이 있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고, 건지곤乾之坤의 효사에는 ‘나타난 여러
마리의 용이 머리가 없으니 길하다’라고 되어 있고, 곤지박坤之剝의 효사에
는 ‘용이 들에서 싸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용이 빈번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누가 그것을 사물로 지칭했겠습니까? 여기에서 채묵은 위헌자의 용에 대한 물음과 관련하여 '주역'의 효사를 인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