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어느 한가한 날 몇몇 제자들을 앞에 놓고 각각 그의 소원과 포부를 말해보라 했다.
이때 많은 제자들은 군사, 정치 외교에 걸쳐 자신들의 능력과 포부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유독 증석(曾晳)이란 제자만이 전연 색다른 말을 했다.
그는 그때 제자들이 공자의 물음에 다들 대답하는 것도 아랑곳 없이
혼자 거문고 만을 타고 있다가 공자가 그의 이름을 지적했을 때에야 비로소 타고 있던 거문고를 앞으로 밀치고
「저의 뜻은 다른 제자들과 다릅니다.」하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증석은 공자의 도통(道統)을 이어받았다는 증자(曾子)의 아버지로 부자가 같이 공자에게 배웠는데
그의 나이도 공자보다 겨우 여섯 살인가 아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성격도 성격이려니와 공자를 항상 허물없이 대했다.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할 뿐인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공자가 이렇게 말하자
증석은
「늦은 봄에 봄옷을 새로 갈아입고
어른 아이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강물에 때를 씻고
산에 올라 바람을 쏘인 다음,
노래 부르며 시를 읊고 돌아오겠습니다.」
이에 공자는
「나는 너를 좋아한다」하고 그와 같은 기분을 말했다.
이 점은 공자가 도교의 자연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장면이라 하겠다.
이 증석이란 인물은, 여기 그가 한 말 가운데 이미 초연한 자연주의적 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만
실상 그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공자와는 전연 색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친한 친구의 문상을 가서 우는 대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괴로운 세상을 떠나는 그대를 환송한다.」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선 그를 미치광이라 평했는데,
공자는 일찌기 말하기를 완전무결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미치광이에게 기대를 걸겠다고 하여 그를 은근히 말했었다.
이점은 장자의 사상과 일맥상통하고 있지 않은가?
공자는 위대한 정치적이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서구의 사회주의자들의 이론과 일치한다는 점에 우리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예기(禮記)라는 책 가운데서도 볼 수 있고, 공자가어(孔子家語)라는 책에도 나온다.
뒤에 학자들은 이 학설을 공자의 말씀이 아닐 것이라고 부정하려 했다.
말하자면 봉건제도와 권력통치에 적합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 이론이란 간단히 골자만 빼면 이렇다.
「…큰 도(道)가 행해지게 되면 천하가 다 균등(共)하게 된다.
착한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쓰게 되고,
신의와 친목을 일삼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만을 아버지로 알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알지 않는다.
늙으면 의탁할 곳이 있고 커서는 일할 것이 있으며
의지할 곳 없는 어린아이와 과부와
홀아비와 병자는 다 맡아서 길러 주는 곳이 있다.
재물은 땅에 버리기를 싫어 하지만
그렇다고 꼭 자기 집에 간직해 두지도 않는다.
일을 제 손으로 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남을 위해 일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해치려는 꾀가 생기지 않고,
도둑이니 반란이니 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리하여 문을 열어두고 잠그지 않는 세상을 대동(大同)이라 부른다……」
플라톤의 이상국가(理想國家)니 묵자(墨子)의 겸애(兼愛)니 하는 것도 다 이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없고,
사회주의 학자들이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능력에 의해 생산하고 필요에 의해서 소비하는 세계」가 바로 이 공자의 말을 빌어간 느낌이 든다.
공자는 이론만을 내세운 학자나 사상가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이었고 또한 외교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