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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16 11:44
일본제국주의가 한국교회의 구약성경이해에 미친 영향. 이어서~
 글쓴이 : 게리
 

물론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 작성되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교회가 역사에 남을 이런 공식문서를 작성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한국교회 구약성경이해에 있어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정도로 일제는 한국교회가 구약사상을 수용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한편, 한국교회의 친일인사들은 구약성경을 일본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읽게 하려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충실히 시행해서, 구약성경을 통해 친일사상을 전파하려고 했다. 강백남은 구약 출애굽기에 나오는 십계명을 강론하면서, 신사참배는 결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미합중국의 워싱톤 동상이 있는데 합중국 국민으로는 그 동상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고, 합중국 국기에 합중국 국민으로 누구나 다 경의를 표합니다. 합중국은 기독교국이니만치 기독교인이 대다수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 우상숭배자로 간주합니까. 그렇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일본 황국신민만이 국조숭모(國祖崇慕)하는 의식에 기독교인이 어찌 참례할 수 없으며 황국(皇國)을 대표한 일본 국기에 경의를 표함이 어찌 기독교인에게 죄가 되겠습니까. 전화위복(轉禍爲福)하는 자 있으나 기독교인은 그러한 의미에서 참배함은 절대로 아니요 국가의식에 국민의 의무로서 참례(參禮)함이 당연한 줄로 각오(覺悟)하고 시인(是認)한 즉 양심이 평안하고 충군애국지심(忠君愛國之心)이 날이 감을 따라 두터워집니다. 사신우상(邪神偶像)은 금수 곤충 어별(魚瞥)의 형상으로 된 것인데 어찌 우리의 조상이 그 우상과 동류(同類)가 될 수 있으랴? 그런즉 신사참배하는 일을 우상숭배라고 한다면 이(此)는 불경죄(不敬罪)에 가깝다고 말하여 둡니다.69)

이들은 구약성경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도 인용하면서 일제의 한국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애썼다. 한국인들이 앞장서서 식민주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구약에 관한 논문을 최초로 쓴 영광을 누린 양주삼(梁柱三, 감리교 협성신학교 교수)은 "신동아 건설과 반도인 기독교도의 책임"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의 설립자라고 칭할만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로마제국의 공민(공민)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반도인들은 대 일본제국의 신민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것이 반도인의 유일한 활로입니다. 반도인들은 이 기회에 죽은 과거를 청산하고 산 장래를 위하여 활동하여야 되겠습니다. 선각자가 된 기독교도들은 민중에게 이 활로를 지시할 책임이 있습니다.70)

양주삼을 비롯해서 일본제국주의에 협조한 친일적인 조선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이 유태인이면서도 협소한 민족주의를 버리고 로마제국의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또 이름도 로마식으로 창씨개명한 것처럼 조선기독교도들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전세계 교통이 통하는 것처럼 지금은 누구나 대일본제국의 길을 밟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고 신약성경도 헬라어로 기록했던 것처럼 우리도 국어인 일본어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71) 그리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한국지배를 신의 뜻으로 본 사람도 있었다. 최태용은 "조선기독교회의 재출발"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는 그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희망하며 따르는 것에 대해서 "나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요한복음 18:36)하면서 이를 물리치고, 영적 사명에 적합하도록 그들을 정결히 하여, 그들을 종교적 사명을 달성하는 세계의 사도로 하였던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그 제자들이 로마의 주권에 복종하면서 그 종교적 사명을 달성하도록 인도했던 것이다.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섬기듯이 일본국가를 섬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 국가는 일본국가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다해야 할 국가적 의무와 지성(지성)은 이를 일본국가에 바쳐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일본국에 바치도록 신에게서 명령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들을 일본 사람들이나 일본교회가 아닌 한국인 종교지도자들이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성경을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수단으로 삼은 식민주의적 성경해석의 전범(典範)들이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한국에 진출한 일본조합교회도 당연히 구약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조선전도부의 어용적 성격은 1919년 3·1독립운동에 대한 반응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3·1독립운동을 목격한 와타세는 즉각적으로 "조선 소요 사건과 그 선후책"을 <新人> 4월호에 기고해, 3·1운동에 참가한 조선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정신이 농후하고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이 없는 유대교도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즉, 만일 기독교인들이 산상수훈의 정신을 안다면 그들은 그런 식으로 반행해서는 안될 것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형제로서 더 포용적으로 내선일체를 대성하는 정신"에 근거하여 행동했어야만 했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건전한 신앙을 근거로 해 건전한 사상"을 배양함으로써 유다주의를 극복하고 "양민족의 새로운 영적 일치"를 달성하기 위한 조합교회의 조선 전도의 의의를 더욱 강조하였다.72)

일본 조합교회가 일본 정부의 입장에 발맞추어 구약을 비판하고 신약 복음서를 앞세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본기독교도들 가운데는 구약성경을 식민주의적으로 이해하면서,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것을 '출애굽사건'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은 드디어 제국의 판도(版圖)에 병합되었도다. 일장기가 계림의 아침을 비추어 참으로 빛나리라고 나는 마음 속으로 엄숙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이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명기 31:7-8). 우리나라와 한국과의 관계는 유래가 깊고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실로 하나님이 이 국민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이라고 느껴야 한다. 이런 의식은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이어져왔다......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조상들에게' 한국이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73)

이 얼마나 구약적인 발언인가. 이들은 출애굽사건과 가나안 정복 사건을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침략과 동일시한다. 이런 그릇된 생각은 타국을 식민지화하는 제국주의적인 사고의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구열강은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가증스럽게도 출애굽과 가나안정복을 침략의 성경적 근거로 삼았다. 이것은 미국을 점령한 청교도들도 마찬가지였다.  

1620년 매사추세츠 주 프리머츠에 정착한 청교도인들은 자신들이 새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모든 식민화 작업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졌다고 그들은 믿었다. 1613년 버지니아에서 휘태커(Alexander Whitaker)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고, 그의 손으로 우리를 이 일로 인도하셨다"고 설교하였다. 영국의 식민주의 사상에 이런 약속의 땅의 이미지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순례자들이라고 불리던 청교도인들은 자신들을 고대 히브리 백성과 일치시켰다. 그들은 신천지를 새로운 가나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진군해들어가는 하나님의 선민이었다......1783년에 스타일스(Ezra Stiles)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야말로 '미국의 여호수아'이고, "독립전쟁에서처럼 명예스럽고 훌륭한 동기로 무기를 사용한 때가 역사상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시대 이래로 일찍이 없었다"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는 1776년에 미 연방공화국의 설립자인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과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신생 미국의 국쇄(Great Seal)에 약속의 땅 이미지를 넣자고 제안했다. 프랭클린은 모세가 홍해(갈대바다)를 가르면서 그 물살에 바로의 군사들이 빠져죽는 그림을 제안하였다. 제퍼슨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되는 그림을 넣자고 주장하였다......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사상이나 미국을 고대의 가나안과 일치시키려는 시도는 미 원주민이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그들을 추방시키는 데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식민자들은 스스로를 '사탄의 세력'인 미 원주민들과 대결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미원주민들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멸망하고 추방되어야 한다고 여겼다.74)

신앙을 찾아서 신대륙으로 갔다는 청교도들이 얼마나 그릇된 성경관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그릇된 성경관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고통당하고 학살당했는지  알 수 있다.75) 구약성경, 특히 출애굽과 가나안정착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미국을 정복한 청교도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중남미 지역을 정복했는데, 그들도 가나안 정복을 모델로 삼았다. 그래서 멕시코 성서학자 타메즈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많이 사용된 대륙 정복의 성서적 근거는 가나안 정복의 이야기였다. 16세기 스페인 사람으로 명성과 영향을 끼쳤던 철학자인 세플베다(Juan Gine de Sepulveda)는 이 성서의 주제를 사용해서 원주민과의 전쟁을 정당화했다. 그는 신성 모독을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또한 그 대륙이 약속의 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대륙 정복을 합리화했다(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땅을 줄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주장이었다). 하나님께서 스페인 사람들을 선택해서 야만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게 했고 그들의 땅을 정복하게 했다. 세플베다는 이러한 신념에 근거해서, 침략 전쟁을 합법화했을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의 범죄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76)

기독교적인 유럽의 제국주의 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에 편승한 어용적인 일본 기독교인들 역시 일제의 한국침략과 식민지배를 가나안정복에 근거해서 정당화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들 제국주의자들이 서로 협약이라도 한 듯, 구약성경을 동일하게 왜곡하는 모습에서 전율을 금치 못한다. 물론 이런 성경해석이 한국교회구약성경이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출애굽과 가나안정복을 식민지 백성들의 입장에서 읽지 않고, 제국주의적인 입장에서 읽을 때, 그것이 성경내용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타국을 침략하고 점령하는 무자비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은연중에 이런 제국주의적 성경해석에 물들어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성경을 매우 사랑했다.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 한국사람들이 번역한 성경을 가져와서 선교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일로 평가받는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읽기를 중시했으며, 성경연구를 통해서 신앙을 키웠다. 특히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한국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고,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고자 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원칙을 내세우는 선교사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또 일제식민지배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에 의해서 반구약적 성향을 주입받게 되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에 구약보다는 신약을 더 중히 여기는 습성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의 구약경시태도가 상당 부분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주의적 유산이기 때문에 이런 성향을 극복하고 구약과 신약을 동일한 하나님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동등하게 선포하는 것이 바로 탈식민주의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 논문을 쓰는 의의가 여기에 있음을 밝히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1) 탈식민주의에 관한 가장 최근의 논의에 대해서는, Robert J. C. Young, Postcolonialism- An Historical Introduction (Malden: Blackwell Publishers Ltd., 2001)을 보라. '탈식민주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번역한 것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디콜로나이제이션(decolonization)이 탈식민주의이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식민지배에 대한 포괄적인 저항을 말하고,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구체적인 행위가 디콜로나이제이션이기 때문에,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좀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 둘을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탈식민주의로 번역한다. 그리고 제국주의(imperialism)와 식민주의(colonialism)도 역사적인 전개에 따라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도식적으로 말하면, 타국을 정치적으로 통치하려는 지배이데올로기(dominant ideology)를 제국주의라고 하고, 경제적인 목적으로 타국을 침략하고 수탈하는 자본주의적 행위를 식민주의라고 한다. 제국주의가 좀더 포괄적이고 식민주의는 더 구체적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둘이 서로 중첩되고, 사람들도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병용하려고 한다.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는 전통적인 의미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끝나고 식민지 국가들이 영토와 주권을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예전 제국주의 국가들이나 강대국들에 예속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2) 다른 두 가지 작업, 즉 구약성경에서 식민주의적 요소와 탈식민주의적 요소를 찾아내는 작업은 다음에 하려고 하는데, 조만간 "엑소더스와 새 도시사상"이라는 주제로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탈식민사상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논문에서는 셋째 작업 가운데 일본제국주의가 한국교회의 구약성경이해와 연구에 미친 영향을 다루지만, 한국교회가 학문적으로는 일본보다 오히려 서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또 지금도 받고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한국에서 출판된 성경주석들과 논문들이 얼마나 서구지향적인지를 탈식민주의적으로 검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Bart Moore-Gilbert, Postcolonial Theory-Contexts, Practices, Politics, 이경원 옮김,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 (서울 : 한길사, 2001), 63.

4) R. S. Sugirtharajah, "Introduction: The Margin as a Site of Creative Re-visioning," ed. R. S. Sugirtharajah, Voices from the Margin- Interpreting the Bible in the Third World (Maryknoll: Orbis Books, 1997), 2. Heikki Räisänen,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R. S. Sugirtharajah, Krister Stendahl, James Barr, Reading the Bible in the Global Village: Helsinki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00)도 보라. 아시아적인 시각으로 성경읽기에 대해서는, Choan-Seng Song, Third-Eye Theology- Theology in Formation in Asian Settings, 朱在鏞·李正熙 共譯, 아시아의 苦難과 神學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를 보라.

5) 이렇게 말하면, 식민주의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직도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와 민족들, 그것도 동일 국가 내에서 타민족에 의해, 그리고 접경국가에 의해서 식민지배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Robert J. C. Young, 3-4. 이런 형태의 식민지배도 주류 탈식민주의논의에서는 배제된다.

6) Bill Ashcroft, Gareth Griffiths, and Helen Tiffin, The Empire Writes Back, 이석호 옮김,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 (서울: 민음사, 1996), 12-13.

7) 아프리카의 탈식민주의에 대해서는, 이석호 엮음,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화론과 근대성 (서울: 도서출판 동인, 2001)과 Ngugi wa Thiong'o, Decolonising the Mind- the Politics of Language in African Literature, 이석호 옮김,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 (고양 : 도서출판 인간사랑, 1999)를 보라.

8) 일차세계대전 무렵에 전세계 면적의 10분의 9가 식민지였다. 영국은 전세계 면적의 5분의 1을,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Robert J. C. Young, 2.

9) 우리나라가 서구에 의해서 직접적인 식민지배를 받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특히 학문적으로 서구종속적이기 때문에 서구와 한국의 관계를 신식민주의적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논문이라는 글쓰기에서 나타나는 원전중심주의, 즉 서구종속적인 글쓰기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연구는, 김영민,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 : 민음사, 1996, 1997)을 보라.

10) "그러나 극동의 三國, 곧 한국과 일본 및 중국의 경우에 있어서는 사정이 달랐다. 일본과 중국은 선교를 직접 서구에서 받았으나 植民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였고,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는 식민적 제국주의가 오히려 일본이었고, 기독교는 이 침략 일본에 대한 저항적 민족 에너지와 결탁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특수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한국에서 이 日帝의 식민 세력에 대한 민족적 同一性의 보존 충동에 동맹하는 형식으로 토착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경배, 교회와 민족 (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1981), 16-17.

11) 김승태·박혜진 엮음, 내한선교사 총람 (서울: 한국기독교사연구소, 1994), 4.

12) 이만열, 한국 기독교 수용사 연구 (서울: 두레시대, 1998), 194.

13) 송길섭, 한국신학사상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1991), 75.

14) "한편 이러한 미국 세력의 부식(扶植)은 경제면에서도 전개되었다. 언더우드는 한국의 수입품에 영국과 미국의 셔츠·면직물·면사·모사·석유·의복·식량·목재·비누 및 설탕이 있음을 주목한다. 그는 1904년 한국의 수입이 880만 달러로 대폭 증가한 것은 새로운 철도 부설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200만 달러의 자재를 수입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를 두고 국가적 긍지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그리하여 통상과 교회가 손에 손을 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진전시키고 평화의 왕자이신 그리스도의 교훈을 확장해 간다'고 의기양양하게 설파했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사고는 백인우월주의에 의해 미개 민족의 문명화가 곧 기독교화이며 나아가서는 미국화(식민지화)로 진전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한국의 기독교화와 식민지화를 꾀하고 있었던 만큼, 그들은 선교 활동 중에서도 상행위로 무역의 이득을 취하고 이권을 탐했다. 언더우드는 석유 석탄 농기구 등을 수입했고 다른 선교사들도 이같은 일을 따라 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자기들이 하는 일이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만열, 한국 기독교 수용사 연구, 195-196. 선교사들의 "미국 팔기와 자본주의 전하기"에 대해서는, 류대영, 초기 미국선교사 연구(1884-1910)-선교사들의 중산층적 성격을 중심으로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1), 212-264도 보라.

15) Edward W. Said, Orientalism, 박홍규 옮김, 오리엔탈리즘 (서울 : 교보문고, 1991, 2000).

16) R. S. Sugirtharajah, Asian Biblical Hermeneutics and Postcolonialism- Contesting the Interpretations (Maryknoll: Orbis Books, 1998). 이 책은 서양의 지배를 받은 아시아국가들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같은 동양인인 일본에 의해서 식민지배를 받은 한국의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ed. R. S. Sugirtharajah, The Postcolonial Bible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8), R. S. Sugirtharajah, The Bible and the Third World- Precolonial, Colonial and Postcolonial Encounter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도 비슷하다.

17) ed. R. S. Sugirtharajah, Postcolonialism and scriptural Reading, Semeia 75 (Atlanta : Scholars Press, 1996).

18) 한국 근대서사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연구는, 나병철, 근대 서사와 탈식민주의 (서울 : 문예출판사, 2001)을 보라.

19) 일본은 아시아를 서구와 구분지으려고 했고, 그 중심역할을 맡고자 했다. "'아시아는 하나'라는 명제로 유명한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1862-1913)의 구상은 일본의 초기 아시아론으로서 주목된다. 그는.......동양의 우위를 주장하며 서양의 식민주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산업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을 꿈꿨다." 백영서, "진정한 동아시아의 거처-20세기 한·중·일의 인식," 최원식·백영서 엮음, 동아시아인의 '동양'인식:19-20세기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7), 16. 청일전쟁 이후에 아시아에서 일본이 부상하면서, 일본을 맹주로 한 아시아 연대론이 확산했다. 안중근도 아시아 연대론에 근거한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는데, 그는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고, 백인종과 대항하기 위해 황인종인 한·청·일이 제각기 자주 독립을 유지하는 대등한 아시아 연대를 꿈꿨다. ibid., 23.

20) 일제는 한국의 민족세력,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한국 기독교의 배후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선교사들을 축출하려고 했는데, 105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Japan Chronicle 특파원, The Korean Conspiracy Trial, 1912, 윤경로 옮김, 105인 사건 공판 참관기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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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모습 15-03-16 13:12
 
. 강백남은 구약 출애굽기에 나오는 십계명을 강론하면서, 신사참배는 결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미합중국의 워싱톤 동상이 있는데 합중국 국민으로는 그 동상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고, 합중국 국기에 합중국 국민으로 누구나 다 경의를 표합니다. 합중국은 기독교국이니만치 기독교인이 대다수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 우상숭배자로 간주합니까. 그렇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일본 황국신민만이 국조숭모(國祖崇慕)하는 의식에 기독교인이 어찌 참례할 수 없으며 황국(皇國)을 대표한 일본 국기에 경의를 표함이 어찌 기독교인에게 죄가 되겠습니까. 전화위복(轉禍爲福)하는 자 있으나 기독교인은 그러한 의미에서 참배함은 절대로 아니요 국가의식에 국민의 의무로서 참례(參禮)함이 당연한 줄로 각오(覺悟)하고 시인(是認)한 즉 양심이 평안하고 충군애국지심(忠君愛國之心)이 날이 감을 따라 두터워집니다. 사신우상(邪神偶像)은 금수 곤충 어별(魚瞥)의 형상으로 된 것인데 어찌 우리의 조상이 그 우상과 동류(同類)가 될 수 있으랴? 그런즉 신사참배하는 일을 우상숭배라고 한다면 이(此)는 불경죄(不敬罪)에 가깝다고 말하여 둡니다.69)
그때그모습 15-03-16 13:13
 
양주삼을 비롯해서 일본제국주의에 협조한 친일적인 조선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이 유태인이면서도 협소한 민족주의를 버리고 로마제국의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또 이름도 로마식으로 창씨개명한 것처럼 조선기독교도들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전세계 교통이 통하는 것처럼 지금은 누구나 대일본제국의 길을 밟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고 신약성경도 헬라어로 기록했던 것처럼 우리도 국어인 일본어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호지구멍눈 15-03-16 13:23
 
친일적 기독교사관이 얼마나 교묘하게 전개되는가 확실하게 보여주네요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섬기듯이 일본국가를 섬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동 15-03-16 14:28
 
1. 한국교회가 역사에 남을 이런 공식문서를 작성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
2.  특히 한국교회 구약성경이해에 있어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고 할 수 밖에 없음
3. 이런 정도로 일제는 한국교회가 구약사상을 수용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음
4. 한편, 한국교회의 친일인사들은 구약성경을 일본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읽게 하려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충실히 시행해서, 구약성경을 통해 친일사상을 전파하려고 함
학동 15-03-16 14:29
 
1. 양주삼을 비롯해서 일본제국주의에 협조한 친일적인 조선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이 유태인이면서도 협소한 민족주의를 버리고 로마제국의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김
2.  또 이름도 로마식으로 창씨개명한 것처럼 조선기독교도들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
3.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전세계 교통이 통하는 것처럼 지금은 누구나 대일본제국의 길을 밟고 다닌다고 말함
4.  그리고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고 신약성경도 헬라어로 기록했던 것처럼 우리도 국어인 일본어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함
학동 15-03-16 14:30
 
1. 신앙을 찾아서 신대륙으로 갔다는 청교도들이 얼마나 그릇된 성경관을 갖고 있었는지,
2. 그리고 그런 그릇된 성경관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고통당하고 학살당했는지  알 수 있음
3.  구약성경, 특히 출애굽과 가나안정착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미국을 정복한 청교도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음
4.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중남미 지역을 정복했는데, 그들도 가나안 정복을 모델로 삼았다. 그래서 멕시코 성서학자 타메즈는 이렇게 말함
몽마르뜨 15-03-16 17:31
 
선교사들의 이러한 사고는 백인우월주의에 의해 미개 민족의 문명화가 곧 기독교화이며
나아가서는 미국화(식민지화)로 진전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한국의 기독교화와 식민지화를 꾀하고 있었던 만큼, 그들은 선교 활동 중에서도
상행위로 무역의 이득을 취하고 이권을 탐했다. 언더우드는 석유 석탄 농기구 등을 수입했고
 다른 선교사들도 이같은 일을 따라 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자기들이 하는 일이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Best of luck to you! 행운을 빕니다!
사람과사람들 15-03-16 19:23
 
얼마 전 올린 글귀에서 기독교가 일제 시대 친일행위를 한 것을 반성하지 않은 것은 잘못 된 행위고
해방이후에도 반성하지 못한 것은 더욱 큰 잘못이다는 글귀를 본 적 있습니다.
이 글을 보니 좀더 구체적으로 양쪽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겨울 15-03-16 19:48
 
우리나라 기독역사의 뿌리가 환영받을만한 일을 한 것은 아니군요.
사오리 15-03-18 23:17
 
마음이 동요되면 활 그림자가 뱀처럼 보이고 누워있는 돌이 엎드린
호랑이처럼 보이니 이 가운데는 모두 살기가 서려 있다. 마음이 안정
되면 석호 같은 포악한 사람도 갈매기처럼 온순하게 변하고 시끄러운
개구리 울음소리도 아름다운 음악소리로 들리니 어디에서나 참된 이
치를 보리라.

【태사부님께 암살자 보내고 친일부역한 이상호, 이정립무덤에 절을한 노상균 이석남/ 통진당 광주 홍어 이석남  】
이상호 이정립 추종계열
이상호 이정립 --- 홍성렬
노상균(견마지로.whRkfkakdltld) --- 이석남(참종자. 도심주. 심주도.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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