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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4 15:58
[대학공부] 서학의 탄압은 정치적 사건
 글쓴이 : 칠현금
 
[대학공부] 천문지리에 대한 소고
 
 
지구 지리와 방위에 대한 이해
 
정조 :
북극에 남북의 높낮음이 있어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반대되고, 시각은 동서의 빠름과 늦음이 있어서 밤과 낮이 상반된다고 하였다. 그 경도와 위도의 수와 상대되는 까닭을 차례로 말하라. ...... 북두칠성은 봄과 여름이면 그 색이 청색과 적색이 되고 가을과 겨울이 되면 그 빛이 백색과 흑색으로 되는데, 사시의 계절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것은 무슨 이치이냐? 토성(土星)이 적도와 거리가 멀어지면 둥근 테가 커지고 넓어지고 적도와 가까워지면 둥근 테가 토성의 본체와 가까워지고 좁아진다. 원근에 따라 형상이 달라지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이가환 :
땅은 계란의 노른자와 같고 하늘은 계란의 껍질 같아서, 경도(經度)와 위도(緯度)의 분도(分度)는 모두 그와 더불어 상응합니다. 하늘에는 남극과 북극 두 극이 있으며, 땅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하늘은 360도로 나누어지는데, 땅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면에 있으면서 북쪽으로 250리를 갈 때마다 북극의 고도는 1도씩 높아지며, 남극의 고도는 1도가 낮아집니다. 그렇다면 땅의 한 바퀴는 9만 리이고, 남쪽과 북쪽의 거리는 4만5천리인데, 이것은 서로 대대(待對)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쪽이 겨울이면 반대쪽은 여름이 되고 이쪽이 봄이면 반대쪽은 가을이 되어서 춥고 더움이 상반됩니다.
 
남쪽과 북쪽의 관계가 이미 그런즉 동쪽과 서쪽의 관계도 그와 같습니다. 동쪽으로 250리를 1도의 차이가 나는바, 동쪽과 서쪽 서로간의 거리가 7천5백리가 되면 1시간이 차이가 납니다. 이것이 쌓여 4만5천리가 되는데, 이것 역시 서로 대대(待對)가 되어 있습니다. 이에 이쪽이 자시(子時)면 저쪽은 오시(午時)가 되고, 저쪽이 묘시(卯時)면 이쪽이 유시(酉時)가 되어서, 낮과 밤이 서로 상반됩니다. 이것은 같지 않음의 극치인데, 그 사이에서 아주 치밀하게 운행하는 도수에 대해서는 모두 앉아서 추산하여 알아 낼 수가 있습니다. ......주야는 남북의 차이로 인해서 길거나 짧아지고, 절기는 동서의 차이로 인해서 빠르거나 늦어집니다.
 
 
위 문답에서 정조임금은 북극에 남북의 높낮이가 있다고 했는데, 이는 북극에 남과 북이라는 높고 낮음이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이가환은 하늘에는 남극과 북극 두 극이 있는데, 땅도 역시 그러하다고 답변한다. 이는 앞서의 개천설과 혼천설 같은 우주의 형태에 관한 문답에서 보았듯이 남극과 북극을 동일한 극으로 간주하고 반구의 둘레가 가장 큰 적도대를 남방으로 보는 관점인 것이다. 이가환의 답변을 통하여 보면 남반구와 북반구의 서로 대대(待對)되는 관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동양천문지리학에서 동서남북의 방위를 통한 지구 지리의 이해는 지구를 구만리로 보고 이를 도수로 분할하고 고도의 높낮이에 따른 위차를 통하여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가환은 호가 금대(錦帶)이다. 천문지리는 물론 기하학에도 정통하였는데, 서학의 도입에 따른 폭넓은 지식의 섭렵에 의한 바가 크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서학도라 불렸던 이들에게 공통적인 현상이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특히 천문역법에 종사하는 이들에게서 두드러진 특징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역법曆法의 독자적 확립과 역서曆書의 간행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필요에 의해서 중국식으로 옷이 갈아입혀진 서양식 천문역산학이 도입되었지만 그 안에 담겨진 우주론적 자연지식은 조선의 토착 사대부 지식인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껄끄럽고 불온한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전통 성리학적 우주론과 배치되는 종동천설宗動天說, 일월오성의 우행설右行說, 정기법定氣法이라는 절기節氣 배치법, 그리고 지구설地球說 등이 그러했다. 이러한 이론들은 시헌력 체제로 대표되는 서양식 천문역산학의 핵심적 이론으로 역산 전문가들에게는 시헌력 체제의 수용과 함께 기계적으로 수용되는 것이었지만 사대부 유학자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그러한 자연 지식들은 고전적 패러다임, 즉 성리학적 자연인식 체계와 부합하지 않았으며, 고대 이래 성인聖人이 부여해주고 성리학이 정당화해온 상하上下의 명분적名分的 사회 질서와 윤리에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서양식 천문역산학이 담고 있던 새로운 자연 지식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또는 전통적인 성리학적 자연 이해의 틀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조선 학인들에게 남겨진 과제였다.’
(명말明末·청초淸初 중국 우주론의 늦은 유입과 그 영향, 문중양, 다산학 13호(2008.12) : 7~42)
 
조선 후기 사옥을 일으켰던 천주교박해사건은 실제 천주교의 박해가 아닌 서양학문인 서학에 대한 탄압으로 정치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학문을 숭상하고 누구보다 학문적 성취가 높았던 정조임금 사후 나타난 사옥은 천주교를 걸고 넘어지면서 실제로는 서학파를 제거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정치기획사건으로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o 순암집(順菴集) > 순암선생문집 제17권 > 잡저(雜著)
서양(西洋)의 글이 선조(宣祖) 말년부터 이미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명경 석유(名卿碩儒)들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나, 제자(諸子)나 도가(道家) 또는 불가(佛家)의 글 정도로 여겨서 서실(書室)의 구색으로 갖추었으며, 거기서 취택하는 것은 단지 상위(象緯)와 구고(句股)의 기술에 관한 것뿐이었다. 연래에 어떤 사인(士人)이 사행(使行)을 따라 연경(燕京)에 갔다가 그에 관한 책을 얻어 가지고 왔는데, 계묘년(1783, 정조 7)과 갑진년 어름에 재기(才氣)있는 젊은이들이 천학(天學)에 관한 설을 제창하여 마치 상제(上帝)가 친히 내려와서 일러주고 시키는 듯이 하였다.
 
안정복(安鼎福)의 천학고(天學考)에서 언급되고 있는 서학과 천학에 대한 기록이다. 조선 성리학적 전통사회에서 누구나 쉽게 천주교 서적을 읽어보았다는 것이며, 천문 기하학의 학술을 주로 받아들이고 수용했던 것인데, 여기서 안정복이 주장하는 ‘계묘 갑진년간에 천학설을 제창하여’라는 주장은 안정복이 그렇게 보았던 것이고, 실제는 그렇게 누명 씌워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양학문은 천주학으로 덧칠되어 정치적으로 숙청된 것이다.
 
 
정조 시대의 실력있는 실용학자들의 등장은 성리학 중심주의의 주류 노론세력들에게 위협적이라는 판단이 가져온 정치탄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에서 희생당한 이가환은  폭압적 탄압에 대하여 “몽둥이로 재(災)를 두드리는 격이니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더욱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이러한 탄압에 따른 실용학파의 이론무장은 더욱 강화되고 반발적 정서가 더욱 굳건했기에 1839년 기해사옥과 1866년의 병인양요를 불러오는 박해에까지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정복이 말하는 천학파는 종교로서의 천학이 아닌 탄압에 반발하는 사상적 저항으로서의 천학파였다고 할 수 있다.
 
 정조임금이 대표적으로 총애하던 금대 이가환과 다산 정약용은 "나는 사람을 쓸 때 8년의 시련을 주어 의리를 실험한 후 8년을 믿고 쓴다"고 했던 정조임금의 발언에서 볼 때, 조선 후기 시대의 난국을 헤쳐나갈 중요한 인재 중의 인재였던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 되었다.
   
성호 이익의 종손이고 이승훈의 삼촌인 이가환은 "이 몸이 죽으면 이 나라의 기하학이 끊어질 것이다"라고 절규했다. 조선 제일의 문장가요 수학과 과학에 능통하고 한번 읽었던 책은 모조리 기억하였으며, 안 읽어 본 책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방면에 정통하고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였던 대학자 이가환이었는데, 그래서 다산도 정조도 처음엔 이러한 이가환의 천재성을 믿을 수 없었을만큼 정말로 대단한 천재학자였는데, 정조의 신임을 받고 나라를 이끌 재상의 후보감으로 점지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볼 수 있는데, 죽어서도 천주학도로 낙인찍혀 있으니 그 한이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이에 대하여 천주교에 대하여 비판적인 관점을 취한 안정복은 순암집에서 역사적 기원을 소상하게 언급하였다.
 
○《열자(列子)》에 말하기를, 
“주(周) 나라 목왕(穆王) 때 서쪽 끝에 있는 나라에서 화인(化人)이 왔는데, 물과 불 속으로 들어가고 쇠와 돌을 뚫고 산천(山川)을 뒤집어 놓고 성읍(城邑)을 옮기는 등 천변만화하는 재주가 무궁 무진하였으며, 물건의 모양을 바꾸고 사람의 생각을 바꾸었다.”하였다. (살펴보건대, 화인은 곧 현인이다. 대개 이간국이 중국으로부터 4만여 리의 거리에 있으니, 가장 서쪽의 땅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환술(幻術)을 잘하고 재주가 많았으므로 서역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이를 사모하여 본받았으니, 그것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 청(淸) 나라의 선비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에 말하기를, 
“대진국은 《후한서》 서역전(西域傳)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바다 서쪽에 있고 영토가 사방 수천 리이며 4백여 개의 성이 있고 복속된 작은 나라가 수십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천축국은 서쪽으로 대진국과 통한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당(唐) 현종(玄宗) 개원(開元) 7년에 토화라(吐火羅) 국왕이 천문(天文)을 해독하는 사람 대모사(大慕闍)를 바쳤는데, 물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법당(法堂)을 하나 설치하고 본교(本敎)의 교리에 따라서 공양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금의 마테오 리치의 천주당(天主堂)과 비슷한 것인데 현종 시대에는 시행될 수 없었으니, 어찌 당시 조정에 학식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 말은 역시 천주설(天主說)이 그르다는 말이다.
 
○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말하기를, 
“대서국(大西國)에 마테오 리치란 자가 있었는데, 바닷길을 나선 지 8년 만에 8만 리의 파도를 건너서 동월(東粤)에 와서 10여 년을 살았다. 그가 지은 《천주실의(天主實義)》에는, 첫머리에서 천주가 처음으로 천지를 창조하여 안양(安養)을 주재하는 도리에 대하여 논하고, 다음으로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는 것이 금수와는 크게 다른 것임을 논하고, 그 다음으로 육도(六道)를 윤회한다는 말이 잘못된 것임과 천당과 지옥이 선악의 과보(果報)임을 변파(辯破)하고, 끝으로 사람의 품성이 본래 선하여 천주를 공경하여 받드는 뜻을 논하였다. 그들의 풍속은 임금을 ‘교화황(敎化皇)’이라고 부르는데, 장가를 들지 않기 때문에 세습하여 잇는 일이 없고 현명한 자를 택하여 세운다. 또한 그들의 풍속이 우의(友誼)를 중히 여겨 사사로이 저축하지 않으며, 《중우론(重友論)》을 지었다. 초굉(焦竤)이 말하기를, ‘서역의 리치군[利君]이 「벗이란 제 2 의 나다.」 하였는데, 이 말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다.’ 하였다. 자세한 것은 《속이담(續耳譚)》에 보인다.”하였다.
 
안정복의 주장처럼 동양에 천주교가 유입된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그 동안 아무 문제없던 것이 조선 후기에 집중적으로 부각되어 탄압을 받은 것은 성리학적 사상의 일대 혁신을 이루고 서학에 두루 통한 실용학문에 정통한 실력자들을 정치적으로 숙청한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순암집에 계속되는 성호 이익의 천주실의에 대한 발문은 당시의 천주교에 대한 이해를 대변한다.
 
○ 성호 선생의 《천주실의》 발문(跋文)에 대략 말하기를, 
“‘천학실의’란 이씨(利氏) 마두(瑪竇)가 지은 것이다. 그는 구라파(歐邏巴) 사람인데, 만력(萬曆) 연간에 예수회[耶蘇會]의 친구인 양마락(陽瑪諾)·애유략(艾儒略)·필방제(畢方濟)·웅삼발(熊三拔)·방적아(龐迪我) 등 몇몇 사람과 함께 바다를 건너와서, 3년을 나그네로 지내면서 비로소 그 학문에 통달하였다. 오로지 천주(天主)만을 높였는데, 천주란 곧 유가에서 말하는 상제(上帝)이지만, 경건히 섬기고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믿는 것은 불씨(佛氏)의 석가이다. ......이씨(利氏)가 중국에 와서 수십 종의 책을 지었는데, 천문을 관찰하고 지리를 살펴서 운행을 계산하여 역법(曆法)을 만든 우수함은 일찍이 중국에 없던 바이다. 그렇지만 그가 축건(竺乾)의 교를 배척한 것이 대단한 일이기는 하나 필경에는 자신의 교도 환망(幻妄)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오히려 깨닫지 못하였다. 중국 사람들이 한(漢) 나라 명제(明帝) 이전까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가 모두 천당과 지옥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어찌 유독 윤회설만 잘못된 것이고 천당과 지옥에 관한 주장은 옳단 말인가. ......내 생각으로는, 서국(西國)의 풍속 또한 급속히 변하여 길흉의 응보를 점점 믿지 않게 되자 부득이 천주경(天主經)의 가르침이 있게 되었던 것이니, 처음에는 중국의 《시서(詩書)》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따르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설을 보태어서 지금까지 전해온 것이며, 그 이후의 허다한 영이의 자취는, 저들이 이른바 마귀나 광인(誑人)의 소치에 불과한 것이다. ...... 저 서사(西士)들이 탐구하지 않은 이치가 없고 통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없으면서도 그 고착된 고정 관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애석한 노릇이다.
 
성호 이익이 ‘저 서사(西士)들이 탐구하지 않은 이치가 없고 통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없으면서도 그 고착된 고정 관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애석한 노릇이다’라고 통탄하였는데, 성호의 종손으로 이승훈의 삼촌이었던 성호의 집안에서, 또 성호의 학설을 추종한 성호학파가 어찌 천주학파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순암집(順菴集) 순암선생 행장(行狀)에는 성호의 말을 계속 언급하고 있다.
“ ......우리 유가(儒家)에서 말하기로는, 상제(上帝)가 내려주신 성품과 하늘이 명하신 성품은 모두 하늘에서 품부받은 것이다. 《시경》에 ‘상제가 네 곁에 계시니[上帝臨汝]’라고 하였고, 또 ‘상제를 대한 듯이 하라.[對越上帝]’고 하였고, 또 ‘천명을 두려워하라.[畏天命]’고 하였는바, 이 모두는 계구(戒懼)와 근독(謹獨)의 공부가 아닌 것이 없고, 상제를 높이 떠받드는 도가 아닌 것이 없다. 서양 사람들이 상제를 자기들의 사주(私主)로 생각하여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지은 죄를 용서받기를 구하는데, 이것은 불가(佛家)에서 참회(懺悔)하는 일과 뭐가 다른가. 
 
유가의 성인(聖人)은 괴이한 일과 귀신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바, 이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치지 않을 경우 그 말류의 폐단은 장차 온 세상 사람들을 환망(幻妄)의 영역으로 몰아넣으면서 인심을 선동할 것이다. 그리하여 후세에는 이른바 연사(蓮社)와 같은 무리들이나 미륵불(彌勒佛)을 사칭하는 자들이 반드시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으로, 못된 짓을 창안한 죄를 반드시 받게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당의(黨議)가 분열되어서 피차간에 서로 틈을 엿보고 있으니, 혹시라도 어떤 사람이 상대편을 일망타진할 계책을 세울 경우, 아마도 천당의 즐거움을 미처 누리기도 전에 이 세상의 화가 먼저 이를까 염려된다.”
 
성호의 염려대로 성호학파가 서학도의 누명을 쓰고 일망타진 당하는 참화를 입었다. 이가환의 희생은 애석하기도 하지만 억울할 수밖에 없다. 주류들의 당리당론에 따라 기하학과 천문역학과 실용과학에 눈뜬 실용학을 서학, 천주학으로 누명씌워 희생시킨 정치적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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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 13-11-07 00:53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사제단 13-11-07 01:14
 
참 잘 읽힙니다. 땡큐.
원형이정 13-11-07 10:29
 
각종 천주교 박해의 이면에 그런 이유들이 있었군요.
부지깽이 13-11-07 17:56
 
퇴근시간이라서 나중에 다시 읽을게요. 감사인사부터 드립니다
탕아 13-11-10 23:36
 
정조 임금의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과 
안목도 대단하지만 이가환이라는 
천재적 자질을 갖춘 학자도 대단하군요. 

이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큰 인물들이 
기득권을 점하고 있던 유교론적 지배층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니... 

역사속의 모진 면을 또 한번 보게 되네요
뿌리깊은잠 13-11-11 04:12
 
친현금님 글은 이해 속도가 느려서 

인사만 먼저 남기고 천천히 읽을께요 

감사합니다
소리샘 13-11-12 10:12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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