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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6 12:35
[특집기고] 대법국 천계탑에 대한 소론(이전 글/ 참고용) 2
 글쓴이 : 칠현금
 
정광(正光) 원년(520년) 4월 중순에 간다라에 들어갔던 북위의 혜생(惠生)이 남긴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서역 최고탑이라고 찬탄해 마지않는 작리탑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다시 남쪽으로 60리를 가서 성에 이르렀다. 동남쪽으로 7리를 가면 작리탑이 있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부처가 열반하니 2백년 후에 과연 같은 이름의 국왕이 출현하였다. 왕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곧 탑을 세웠다.” 
 
제 22대 단군 색불루(索弗婁) 재위 : BC 1285 ~ BC 1238
1238년 -200년 = 1038년 / 1038년 + 2014년 = 3052년
1974년 갑진년을 불기 3000년으로 보는 해석과 12년 시차가 발생
색불루 단군과 석가불의 200년의 시차는 낙양가람기의 200년이란 기록과 관련지어 의미있다.
 
13층의 카니시카왕의 ‘작리탑(雀離塔)’은 서역 최고의 탑'이었다. 서역 최고의 탑이라는 작리탑(雀離塔)의 이름도 흥미를 끈다. 주작(朱雀)은 남방을 지킨다는 신조(神鳥)이다. 작리라는 명칭은 <남방 離>라는 풀이로 대체되는 점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미르, 3이라는 수와 작리탑의 교집합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13층탑으로 전세계 목탑의 원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리탑의 주위를 돌면서 예경을 하던 천의무봉한 옷을 입은 서역인들의 염불송이 들리는듯 하다.
 
“탑 안의 장식물들은 모두 금과 옥으로 만들었는데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금반(金盤)은 밝게 빛나고 미풍이 불어오면 보탁(寶鐸)도 함께 울렸다. 서역의 탑가운데 최고였다. ...그 위에 보리수를 심었는데 가지는 사방으로 뻗고 잎이 무성하여 하늘을 가렸다. 나무 아래 높이 일장오척 되는 좌불상이 4개 있고, 용 네 마리가 진주망을 항상 지키고 있어 만약 훔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자가 있으면 곧 재난이 일어났다.”
 
이 서역 작리탑의 4개의 좌불상은 석가부처의 불상이 아닌 것도 틀림없어 보인다. 만약 석가부처의 불상이었다면 부처의 상이 있고 주변에 협시佛이 있는 것으로 혜생이 기록하였을 터이지만 단순히 좌불상이 4개가 있다는 기록이 의미하는 바는 곰곰이 되새겨 볼 부분이다. 지금은 페샤와르 박물관에서 모형도와 옥개석을 모형품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이 대탑에 대하여 혜초는 이렇게 언급하였다.
 
“서쪽으로 3일거리에 큰 절이 하나 있는데, 천친(天親)과 무착보살이 살던 절로 이름은 카니시카(葛諾歌)이다. 절에는 큰 탑이 있는데 항상 큰 빛을 발한다. 이 절과 탑은 옛날에 카니시카왕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왕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을 지은 것이다.”
 
카니시카를 한음으로 葛諾歌라고 기록하여 놓았지만 카니는 왕이고 시카는 석가이다. 페샤와르에 도읍하여 불교최대중흥기를 이룩한 카니시카왕은 샤카족의 또 다른 다른 석가였던 것이다.
 
천계탑이라는 천개탑의 지리적 위치는 페샤와르의 스와트 밸리로 일단의 추정이 가능해진다. “내가 서촉에 있어도 일심하는 자에게는 찾으리라”는 그 서촉 또한 분명코 페샤와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현지명 사천성 성도와의 관련성도 세운 상의 총각판 주역의 역할과 관련지어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면 대법국이란 서천서역의 지리적 위치라는 막연한 이 대법국은 어디인가? 아프가니스탄은 불의 나라라는 뜻이다. 불의 땅, 불왕이 주석하여 계시는 땅이다. 아(阿) 음은 서역에선 접두적 의미로 뜻을 상실하였지만 <아>는 곧 대(大)나 한(桓)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아프가니스탄이 대불국, 대법국이란 설명이 자연스레 된다. 여기 바미얀이 바로 세계최대의 불상이 조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고대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선진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던 아프가니스탄을 지금의 비참한 상황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 지역이 사실상 봉금된 지역이나 마찬가지인 이유는 깊히 생각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봉금이란 필연적 사실의 이유에 수긍이 갈 것이다.
 
바미얀으로 가는 길은 힌두쿠시 산맥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바미얀에 도착하기 전에 붉은 색을 띠는 거대한 산이 나타나는데, ‘식스브리지마운틴’이라고 하는데 붉은 흙과 바위들만 가득한 나무와 풀이 없는 홍산으로 마치 화염이 타오르는듯하다고 한다. 이 산을 넘으면 바미얀이다. 백양나무가 우거진 길을 달려서 바미얀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절벽에 무수하게 조성된 바미얀 석굴이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대략 20,000개 정도의 석굴이다. 이에 대한 기행기록은 불교를 믿는 이들의 눈이 보다 세세할 것이다.
 
“감았던 눈을 뜨고 다시 쳐다보니 거대한 석굴이 이미 눈앞에 서 있었다. 차에서 내려 높이 55m 부처님(바미얀 서대불)이 계셨던 석굴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석굴 앞 땅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부처님은 아니 계시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인사드리고, 석굴 앞으로 다가갔다. 파괴된 잔해가 석굴 안에 가득했다. 부처님이 서 계셨을 석굴 안에 들어가 돌아다녔다. 이 곳 저 곳 돌아다녔다. 부서진 흙덩이를 보호하기 위해 덮어놓은 포장을 걷고 흙을 살폈다. 산산이 부서진 흙덩이 속에서 ‘불상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55m 대불에서 동쪽 방향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38m 대불(바미얀 동대불)이 서있었던 석굴로 갔다. 그곳에도 역시 부처님은 아니 계셨다. 허전한 마음 달랠 길 없어 석굴 옆에 난 통로를 따라 올라갔다. 석굴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나를 따라 왔다. 그들과 함께 올라가니 작은 석굴들이 무수하게 있고, 그 속에 불화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대개는 훼손된 상태였는데,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는 알 수 있었다. 씁쓸했다. 작은 석굴에 앉아 바미얀 평원을 보았다. 현재 인구 15만을 자랑하는 바미얀은 해발 3000m에 있는, 힌두쿠시 산맥 속에 위치한 거대한 ‘분지’이자 ‘오아시스’다. 분지를 둘러싼 힌두쿠시 산맥들이 위용을 보이는 가운데, 분지 가운데엔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강이 흐르고, 군 데 군 데 백양나무 숲이 우거진 참으로 멋진 곳이었다.”http://cafe.naver.com/jjnd/11471 지장행자
 
아프가니스탄의 유적지 탐사에는 매슨이라는 자가 등장한다. 아주 아마추어적인 고고학자라고 하는 매슨은 가명이고 본명은 제임스 루이스이다. 1822년 인도에 왔던 그는 1827년 7월 아그라에서 동료 리처드 포터와 함께 탈영하여 아프가니스탄 가즈니 지역을 돌아보았다. 1832년에 다시 카불에 들어갔다. 이후 6년간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며 베그람 일대와 자랄라바드 지역을 탐사했다. 수많은 스투파가 흩어져 있는 자랄라바드 다룬타 지역에 관심을 갖고 탑들을 파헤쳤다. 그러다 비마란 제2탑을 조사했다. 돔의 둘레가 12m나 되는 비마란 제2탑은 매슨이 조사하기 이전 이미 아마추어 탐험가 존 마틴 호니그버거가 탑의 북쪽 부분을 열다가 중단한 적이 있었다. 매슨은 바로 이 부분을 열고 탑의 가운데로 들어갔다. 석실이 있고, 그 안에 돌로 만든 호(壺)가 보였다. 호 중앙에 금으로 만든 작은 원통형 사리구가 있었다. 금제 사리구 표면에는 여덟 개의 아치형 공간 아래 부처님과 천인 상이 새겨져 있고, 사리구 위 아래에 각각 12개씩의 루비가 박혀 있었다. (불교미술기행, 조병활, 이가서, 2005. 283p)
 
아프가니스탄은 대승불교의 중흥지로 많은 불교유적이 있다고 한다.
 
문화재관리국의 자키르(Zakir)씨의 말에 의하면 자그만치 3,700여곳에 불교유적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계최대의 불상으로 알려진 바미얀의 대불뿐만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 그렇게 불교유적이 많은 것은 이곳 아프가니스탄이 바로 2-5세기 사이에 인도 대륙의 북부지역에 대 제국을 건설한 쿠샨왕조의 발흥지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8대성지를 비롯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많은 탑을 세운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 이후에 두 번째로 수 많은 불적지를 중창하고 탑과 사원을 새로 건축한 쿠산왕조는 인도 불교사에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카니시카왕 때는 경전을 결집하고 대승불교를 옹호했다. 그러므로 이곳 카불을 비롯한 아프가티스탄은 대승불교의 중흥지라고 할 수 있다......카불근교 2곳의 불교유적답사 내가 이곳 아프가니스탄에 온 것은 난민구호활동을 위한 것이어서 난민지역을 답사하는 간간히 틈을 내어 우선 두곳의 유적지를 방문했다. 한곳은 카불시내에서 남동쪽으로 20km 떨어진 바그라미(Bagrami), 야크다라(Yakhdara)마을에 있는 유적지였다. 뒤로 깍아지른 돌산이 마치 설악산과 같은 모습이었고, 골짜기 언덕에 돌과 흙으로 둥글게 쌓은 탑이 있는데, 이미 도굴되어 반쪽은 무너진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한쪽은 원형이 보존되어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위에는 승방터가 있어서 타버린 숯가루가 남아 있었고 잘 쌓여진 벽면이 땅속에 뭍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우선 2개의 탑을 둘러보았는데 이곳 말고도 주위에 여러 곳의 탑터가 있는 것 같았다. 또 한 곳은 카불 북쪽 6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카불(Kabul)주의 북쪽에 붙어 있는 파르완 (Parwan)주의 차하리카르(Chaharikar)군의 툽다라(Toopdara)마을인데 뒤로는 3,000m이상의 연봉이 둘러있고 앞에는 넓은 평원이, 그리고 저멀리 끝에는 6,000m 이상의 힌두쿠시 연봉들이 하얀모자를 쓰고 연이어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http://www.jungto.org/community/community7.html?b_no=15217&sm=v
 
바미얀 불교유적은 2km가 넘는 넓은 곳에 승방이 산재해 있으며, 카불 북서쪽 128km지점의 바미얀 계곡에 있다. 아프가니스탄 중앙 고원지대의 힌두쿠시 산맥으로 에워 쌓여 있는 바미얀 계곡은 북쪽으로 길게 뻗은 높은 바위 절벽과 접해 있는 분지에 있다. 바미얀 계곡의 문화경관과 고고유적은 계곡 지류를 따라 8군데의 유적지로 구성된 연속 유산이다.
 
주로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석굴과 감실(niche)에는 벽화와 마애석불좌상이 남아 있다. 바미얀강 지류의 계곡에는 6~13세기에 만들어진 100여개의 석굴을 포함하는 카크라크(kakrak) 계곡의 석굴이 있다. 바미얀 절벽에서 남동방향으로 약 3km지점에는 석불입상(10m)의 파편과 사산 왕조 때의 벽화 장식 흔적을 볼 수 있는 신전 잔해가 있다. 바미얀 절벽 남서방향 약 2km지점의 풀라디(Fuladi) 계곡을 따라 있는 쿨리 아크람(Qoul-I Akram) 석굴과 칼라이 가마이(Kalai Ghamai) 석굴에도 벽화장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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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절벽의 남쪽에 있는 계곡 분지 중앙에는 샤흐리 굴굴라(Shahr-I ghulghulah) 요새 유적지가 있다. 바미얀 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더 가면 칼라이 카파리(Qallai Kaphri)의 2개 요새와 성 군락, A군락과 B군락이 있다. 이 군락에는 6~8세기에 조성된 성벽과 정착촌 유적이 있고, 바미얀 계곡의 동쪽으로 약 15km 정도 좀 더 가면 샤흐리 주하크가 있다. 카불에서 125km떨어진 바미얀대불이 있는 이 바미얀이야말로 온통 불교유적지 지천인 것이다. 신강에서 천불동이 무수히 있지만 바미얀의 규모와 숫자에는 미칠 수가 없다.
 
바미얀의 거대절벽 남쪽 계곡분지 중앙에 요새 유적지가 있었다는 이 사실은 계곡 절벽의 3대불상과 계곡 남쪽 요새의 유적지에 사라진 불탑이 있었을 가능성을 가지게 한다. 바로 1탑 3금당 구조의 배치라는 탑 중심의 황룡사 탑과 금당배치구조에 부합하는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카크라크[Kakrak]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에 대한 자료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계곡 중에 있는 불교석굴사원. 거상(巨像)이 있는 석굴군의 계곡에서 동남으로 3km 들어간 계곡의 서향(西向)에 있는 역암 절벽에 조영된 대불감(大佛龕)과 석굴로 이루어짐. 소규모이나 그 벽화의 자료적 가치는 매우 큼. 1923년과 30년 프랑스 조사대가 조사. 1굴의 전실(前室)은 파괴되었으나 팔각형 평면상에 반구형의 천정을 이고 있으며 천정은 천정(天頂)과 사다리꼴의 열감대(列龕帶)로 이루어짐. 벽화는 이곳 양측에 남아 있으며 천정부의 중심에 보살좌상이 그려져 있고, 주위에는 17기의 좌상이 배치됨. 중심권 전체를 둘러싸고 8개의 둥근 테두리에 좌불을 배치했으며 각 좌불은 다시 11기의 작은 원내의 좌불로 둘러싸임. 또한 열감대에는 각 감마다 좌불 또는 공양자를 한명씩 배치하고 그 사이에 작은 스투파를 그림......  
 
이상하게도 불탑유적이 보이지 않는 바미얀 유적군에서 카크라크에 대한 자료에 ‘각 감마다 좌불 또는 공양자를 한명씩 배치하고 그 사이에 작은 스투파를 그림’이라는 이 부분은 바미얀도 스투파에서는 예외가 아니었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장은 대당서역기에서 바미얀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동서 2000여 리, 남북 200여 리로 설산 중에 위치한 바미얀국에는 수십 개의 큰 사원과 수천의 스님들이 있다. 동북방에 서 있는 석불이 있는데 높이가 140여 척이고,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또 그 동쪽에는 큰 가람이 있는데 가람 동편에도 서 있는 석불이 있고, 높이는 100여 척이나 된다. 성의 동쪽으로 2∼3리 떨어진 곳에 있는 가람에는 부처님의 입열반와상이 있는데,길이는 1000여 척에 달한다.
 
2001년 3월 2일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얀대불에 대하여 현장이 보고 기록한 것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140여척의 서대불과 100여척의 동대불, 그리고 동쪽 가람의 1000여척에 달하는 입열반와상의 존재는 바미얀이 최대의 불국토였음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長安三千金世界, 終南百萬玉樓臺'라는 말이 있는데, 대륙 장안과 종남산이 아무리 불교가 번성하였다 해도 결코 이 바미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데, 이는 곧 천축이 낙양이고 장안이고 거기 산이 종남산이었다는 말로 밖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혜생의 낙양가람기의 낙양과 현장의 대당서역기의 대당, 대진(大秦)이라 칭해지는 진나라 모두가 서역을 칭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3천 금불(金佛)이 주석하여 계신 세계인 천문만호(千門萬戶)의 번성한 불국토 장안 낙양과 백만옥루가 첩첩이 죽림처럼 들어선 종남산이라는 수식은 오히려 바미얀의 실재하였던 모습에 미치지 못한다.  
 
당나라 때 곡강회라는 연회가 있었는데, 과거에 급제하면 곡강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한다. 이 연회가 파하고 나면 자은사에 모여 진사에 급제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겼는데 이를 안탑제명(雁塔題名)이라 했다. 진사 급제자의 명단이 “묘하게 행렬을 이루어서 마치 기러기 떼 같았다”고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자은사는 현장이 서역에서 가져온 경전을 보관하던 안탑이 있다. 안탑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천축기(天竺記)의 “달친국(達親國)에 가섭불의 가람이 있다. 돌산을 뚫어 5층탑을 지었는데, 아래층이 안형(雁形)이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하고, 석가모니가 몸을 던져서 생명을 구한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천축기의 달친국은 달지국으로 胡, 고월족의 나라로 스키타이의 다른 명칭인 호족, 색족, 샤카족의 나라이다.
 
두산백과에 안탑 [雁塔]은,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었다고 하는 탑으로 인드라사일라구아산(Indrasailaguhā:帝釋窟山)의 동쪽 봉우리에 있었다고 하며, 옛날 보살(菩薩)이 정육(淨肉)을 먹는 중을 바로잡기 위해서 기러기로 화하여 하늘에서 떨어진 흔적이라고 전한다.
 
마가다국은 중인도의 동부 왕사성이다. 고대 인도는 현재 인도일 수 없다. 인드라 환인제석천왕의 굴이 있는 산의 동쪽 봉우리에 있던 기러기탑의 기러기가 다시 가을 하늘을 날아오른다. 湖南西神司命旗를 펄럭이며.  
 
자신이 지은 시를 모조리 불태워 남아서 전하는 것은 허균에게 보낸적 인간적 소회의 시만이 전하여 단지 피어오르다 만 한 젊은 여인으로만 남은, 스물일곱의 나이에 연꽃이 시들 듯이 저 세상으로 간 초희가 틀림없이 선계의 불국토에 대한 시를 읊었으리라 여겨지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문이 초희와 함께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집을 지을 때 반드시 길일(吉日)을 택하여 상량을 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떡이나 기타 잡물(雜物)을 싸 가지고 와 축하하면서 이것을 장인(匠人)들에게 먹이는 풍습이 있다. 그러면 장인의 장(長)이 떡을 대들보에 던지면서 상량문을 읽고 축복을 한다. 이것을 상량식이라고 하는데, 초희의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의 이에 해당하는 축가를 보면서 불선(佛仙)들의 지상불국토였던 서역 월국(月國)에 세워졌을 백옥루에 대한 감회를 느낀다.
 
새벽빛 희미하여 비단구름 드리웠고 / 曙色微明雲錦帳
팔해에는 구름 덮여 어두운 밤이구나 / 八垓雲黑知昏夜
 
새벽은 밝아오는데 금도(錦都, 간다라)에는 구름이 드리워 있고, 세상은 온통 칠흙같은 밤이구나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8살 초희의 노래에서 萬里雲迷太乙宮이 연상된다. 다시 초희의 규원을 감상하면서 가을밤 기러기 소리에 귀 기울인다.
 
月樓秋盡玉屛空   월루의 가을은 옥으로 만든 병풍을 둘렀고
霜打蘆洲下暮鴻   서리 내린 저녁 갈대밭에는 기러기 내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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