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6 <붓筆>
자신을 상제님의 붓이라 알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상제님 말씀에 붓이 들어가면 무슨 뜻이 되었건 자신의 도수라 여겼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신 뒤에/ <포교오십년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筆>/ 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옛사람 이윤이 50세에 49년 동안의 그름을 깨달았다 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내가 천지운로를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너희들은 삼가 타락치 말고 오직 일심으로 믿어 나가라.”(증산도 도전 초5:319, 개5:414)
붓님은 상제님께서 종필終筆이라 쓰신 것을 자기가 붓을 놓는 시기로 알았다. 이걸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자기 나이 오십이 되는 해가 도전 완간 시간대이며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는 때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임오년 동지에 도전 개정판 가제본을 신단에 올린다. 마치 서전서문의 큰 기운을 받으려고 가정기사삼월기망嘉定己巳三月旣望에 맞추어 이상호가 대순전경을 출간한 것처럼 붓님도 ‘포교오십년공부 종필’의 자의적 해석에 맞추어 도전 개정판을 내놓은 것이다. 난법이 궁극으로 가면 서로 통하게 마련인가. 요즘은 태어날 아이의 사주를 미리 정해놓고 제왕절개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 격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을 한다.
“임오壬午(2002)년 동지는 포교 50년 공부의 50년에 들어가는 첫 시간이다. 계미癸未(2003)년은 선천 오만 년의 압축판이다. 5만년이 압축된 시간 50년, 그 50년을 맞는 계미년 1년! 마무리 포교 운은 50년으로 끝난다. 포교는 50년 세월로 다 끝난다. 잘하자, 잘하자, 파이팅!”
붓님은 계미년 1년을 강조하기 위해 주역 계사의 ‘대연지수 오십’과 이것을 해설한 ‘왕필의 주석’을 참고자료로 나누어 준다. 그리고 외울 것을 주문했다. 얘기인즉 49년 동안은 진법도운을 여는 준비과정이었고 마지막 한 해에 철저한 역사반성과 신앙개혁을 통해 대세몰이 도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시 되고 있는 붓님의 자료 따 담기 방법이다. 앞뒤가 어찌 되었건 자신의 구미에만 맞으면 되었다. 상제님 말씀 증언자들이 붓님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라는 전언이 있다. 앞뒤 다 자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말씀만 취사선택해 버리니 황당함 그 자체다.
<주역계사周易繫辭 : 대연지수大衍之數, 오십五十. 기용其用 사십유구四十有九>대연지수는 50이지만 사용하는 것은 49이다.
<왕필왈王弼曰 연천지지수演天地之數. 소뢰자所賴者, 오십야五十也. 기용其用 사십유구四十有九, 즉기일則其一 불용不用. 불용이용지이통不用而用以之通, 비수이수이지성非數而數以之成, 사역지대극야斯易之大極也. 사십유구四十有九, 수지극야數之極也. 부무불가이무명夫无不可以无明, 필인어유必因於有. 고상명어유물지극故常明於有物之極, 이필명기소유지종야而必明其所由之宗也.>
그는 이어서 상제님께서 언급한 이윤이라는 인물이 잘못 기록되었다고 선포한다. 그러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혁명가 이윤을 참회하는 삶의 표본이라는 거백옥으로 수정해버린다. 내가 갖고 있는 초판 도전에도 이윤을 두 줄로 그어 지워놓고 그 옆에 거백옥이라 적어놓았다. 이제 그의 수정의 변을 들어보자. 붓님이 도전공부의 일환으로 제시한 도전 이기작업과 자료메모를 이렇게 쓸 줄은 진정 알지 못했다.
“5편을 제일 늦게 교정보았다. 시간이 없어서 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나중에 이것을 다시 보니 잘못된 것을 알았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짜깁기 하는 것이 교정인가? 초판에 이윤에 대한 주석을 달아놓은 것도 자기는 모르는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초판에 실려 있는 이윤에 대한 주석을 보자.
<이윤의 이름은 이伊이며 윤尹은 관명이다. 상(은)나라의 개국중신이며 5대를 연이어 상왕을 보좌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100세를 살았으며 천수를 다하여 박 땅에 묻혔다. 이윤은 원래 하왕조 말년에 유신씨有莘氏 부락(현재의 산동성山東省 조현 북에 있다)의 가노였으며 지략이 풍부했다. 후에 몸종노예가 되어 신씨 여자를 따라 상탕이 있는 곳으로 가서, 탕의 명에 의하여 주방에서 일하였으며 재주와 지혜로써 탕의 눈에 들어 하나라로 보내어져 하의 걸을 보필하였다. 그는 하의 걸에게 오랫동안 간언하였으나 걸이 권고를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천명이 탕에게 있음을 짐작하였다. 그래서 이윤은 장차 하나라가 망할 것이라 예측하고, 상나라로 돌아와 탕을 보좌하였다. 그는 탕임금을 위하여 계획을 짜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하나라를 공격하여 무너뜨리고 상황조의 토대를 닦았다. 탕이 죽은 후에도 계속 탕의 두 아들 와병, 중임을 보좌하였으며 또한 탕의 손자 태갑을 왕으로 받들어 태갑에게 탕의 공덕과 하의 걸이 폭정으로 망한 사실을 가르치고 정사에 힘써 잘 다스릴 것을 권하였으나 태갑은 정사에 태만할 뿐이었다. 이윤은 여러 번 충고했으나 충언을 듣지 않아서 단호히 태갑을 동궁으로 보내어 자성自省케 하고 스스로 섭정했다. 3년 후 태갑이 과오를 뉘우치자 이윤은 그를 국가의 도읍으로 모셔 와서 자신은 재상으로 물러나 마음을 다하여 그를 보좌했다. 이 성구말씀은 포교 50년 공부 중에서 마지막 대세몰이의 결정적 도수인 숙구지 도수를 열어 자기혁신으로 대전환의 기틀을 마련하게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윤의 도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범사지본凡事之本은 필선치신必先治身이라’고 말한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교정을 보지도 못했는데 주석을 달아 놓았다는 것이 어째 잘 믿기지 않는다. 액면 그대로 믿는다 해도 작업자들이 다 작업해서 올린 것을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럼 붓님은 왜 ‘이윤’이 잘못 된 기록이라고 주장한 것일까? 개정판 측주를 보자. 붓님의 욕심이 이제 활자화 되어 드러나고 있다.
<50수는 천지일원수인 100수가 음양으로 나뉘어 운행하는 천지대정수로서 상제님은 이 중 후반 50수를 진법신앙 문화를 창출하는 포교공부의 역사도수로 ‘인사의 주인’에게 붙이셨다.>
그는 스스로를 ‘인사의 주인’이라 여겼다. 인사의 주인인 자기 나이에 개벽의 시간표를 붙여놓았다고 생각했다. 상제님 천지공사를 이룰 인사의 주인이 바로 자기인데 뒤에 혁명가 이윤이 나오는 것은 자신이 짜깁기 해 놓은 교리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혁명을 당한다니 그 불편한 말씀을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윤이 나올 것이 아니라 신독사상과 사부 신앙의 절대성을 강조할 어떤 인물이 나와야 했던 것이다. 도전성편의 위대한 공덕으로 하느님의 반열에 오르고자 했는데 이윤의 좌우명인 ‘범사지본凡事之本은 필선치신必先治身’만 갖고는 사부 신앙의 절대성을 강조하기에 부족했다. 자칫 혁명이라도 일어날까 입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 대체해놓은 인물이 거백옥이다. 개정판에 거백옥 관련 주석을 보자. 별스럽지도 않은 이것을 찾는 데 아마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이름은 원瑗 백옥伯玉은 자이다. 전국시대 위나라 대부. 공자는 거백옥蘧伯玉(?~?)을 ‘군자 정치가이며 난세의 치자로서 시중時中에 맞게 행장行藏과 진퇴進退를 분명히 하는 인물이라고 찬양하였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나오는 구절로 원문은 ‘연오십이지사십구년비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이다. 상제님께서는 군자 거백옥의 부단한 자기개혁의 정신을 마무리 도운 50년 과정에 붙이셨다. 50년 공부의 첫해로부터 49년까지는 진법도운을 여는 준비과정으로 쓰시고 마지막 한 해에 철저한 역사 반성과 신앙개혁을 통해 대세몰이 도수로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상제님까지 동원해 거백옥을 군사부 문화와 참회하는 삶의 표본이라 찬양 강조했다. 지금까지 일이 되지 않았던 것은 ‘사부 신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거백옥이 자신의 주군을 섬긴 것처럼 신도들이 사부를 섬기는 신앙개혁이 이루어져야 대세몰이 도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니들이 나를 개떡같이 알고 있어서 대세가 돌지 않았다’는 의미다. 나를 잘 받들어야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부 신앙’을 최고로 잘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 중이다. ‘사부 신앙’의 절대성을 강조하니 범법자가 양성된 것이다. 별을 단 사람도 나왔으니 장군이 나왔다고 해야 하는가?
그 계미년으로부터 12년이 흘러 올해가 을미년이다. 칠팔년간 고국성의 7*8의 오십육도 다 지나고 또다시 사오미의 끄트머리에 와 있다. 아직도 일이 되지 않은 것은 신도들이 여전히 자기를 개떡같이 알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다. 붓님의 역량이 딱 여기까지이기 때문이다. 내 귀에 캔디로는 대사를 감당치 못한다. 붓님은 특히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도를 가는 사람도 멀리한다. 욕심으로 가득 차 자기에게 아부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상제님 말씀도 욕심에 눈이 가려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니 일이 될 턱이 없는 것이다.
그럼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포교오십년공부 종필이란 무슨 의미인가? 포교오십년공부의 결론이 종필終筆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인사적으로 해석을 하면 필筆의 사명을 이제 마친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붓이라 여기는 그 인물을 이제 마무리 도정에는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붓님이 도수 맞아 나온 인물은 인물인데, 책 만드는 공부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종필終筆이라는 말은 붓님 나이 오십에 도전완간본이 나와서 모든 신도들이 ‘사부 신앙’에 눈을 떠 사부를 하느님처럼 받들어 대세몰이에 들어가 세상을 개벽을 한다는 말씀이 아니다. 책만 만드는 도정, 책장사하는 도정, 책 광고하는 도정을 이제 끝낸다는 말씀이다. 하마정에서 붓을 들어 ‘대적 놈이라’하신 말씀과 ‘말이 콩밭으로 들어가는데 안 끌어내느냐’하신 말씀과 종필終筆이라 하신 이 말씀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서로 꼭 닮은 말씀이다.
뒤에 이윤을 말씀하신 것은 그 때 그 인물이 나와 새 기틀이 열리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것이다. 창업의 문왕의 도수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잘못된 것을 고쳐서 쓰는 이윤의 도수다. 지금 도정혁명의 현실을 그 말씀에 비추어 보면 상제님께서는 사부 신앙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는 거백옥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혁명가 이윤을 말씀하신 것이 맞다. 천지에 질정한 일이 말 몇 마디 바꾼다고 바뀌지는 않는다. 자기 구미에 맞게 말씀을 제단 해봐야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다 드러나고 만다. 내가 주장하지 않아도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천지공사다. 상제님과 심법 게임 해봐야 이기지 못한다.
문왕과 이윤의 도수를 문공신 성도 한사람이 받았다는 것은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짬똥들이 공연히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혀 카더라 통신을 만들어 안씨 타도를 외쳐본댔자 헛짓이다. 자기들이 지금 고소사건 몇 개로 화려한 꽃을 피운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손의 복을 장사지내는 상여 꽃에 지나지 않는다. 신앙적금 중도 해약했으니 부자 되길 바란다.
이제 억지도정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