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와의 족보전쟁 - 종계변무 宗系辯誣
조선시대의 족보는 사회적·정치적 기능 못지않게 일종의 종교적 기
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들이 원초적으로 갖는 질문, 즉 나는 어디
에서 왔을까하는 의문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해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인들은 족보를 통하여 자기의 뿌리를 의식했다. 현재의 그들
이 존재하는 이유와 장차 그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될지를 보여주는 것이
족보였다. 족보를 통하여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와서 이제 후손들로 계승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그들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설명해주
는 것이 족보였던 것이다.
따라서 가짜 조상을 갖는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현실적인 처지
가 불우하여 조상의 이력을 조작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도 조상 자체를
바꾸는 것은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만약 조상 자체를 모를 경우 번듯한
가문에 빌붙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조선왕실의 족보를 잘못 기록한 문서가 있었다. 그것도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를 틀리게 기록하고 있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명나라의
공식기록인 「대명회전大明會典」이 그것이었다.
조선개국 이후부터「대명회전」은 태조 이성계를 고려 말의 권신 이인임
李仁任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었다. 이것은 물론 가당치도 않은 기록인데,
명나라는 이것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물론 곡절이 있
었다.
고려말 조선개국을 앞두고 중앙정치세력들은 이성계 일파와 반이성계
파로 양분되어 있었다. 특히 조선개국 직후 명과 조선과의 관계가 험악
해지자 반이성계 일파들은 명나라로 도망하여 그곳에서 반이성계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윤이尹彛와 이초李初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윤이와 이초는 명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이성계를 축출하여 했다. 그들
은 이성계에게 불리한 말을 서슴지 않았으며, 심한 경우 사실을 왜곡하
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성계를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조작한 것도
그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이인임은 고려말의 친원파로서 정권을 농단하던 권신이었다. 이인임
이나 이성계난 성이 이씨였다.
이것을 이용하여 윤이와 이초는 이성계를 이인임의 아들로 조작했다.
물론 이성계가 친원파 이인임의 아들이라서 지독한 반명파라는 사실도
왜곡, 선전했다. 당시는 그렇지 않아도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가 일촉
즉발의 상태였다.
본래 이성계는 천하가 아는 친명파였다. 그런데 조선개국 직후 국경마
찰로 조선과 명나라는 전쟁을 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당시 조선
의 실력자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공언하고 결사항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는 이성계가 친원파의 거두 이인임의 아들이라
는 날조를 그럴 듯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알아도 일부러 그렇게 몰
아가려 했을 것이다. 조선의 약점을 잡아두기 위해서다.
태종이 즉위하면서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는 정상화되었다. 양국간의
관계가 정상화되자 조선정부는 이성계의 아버지를 이인임으로 기록한
「대명회전」의 기록을 수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명나라는 이를 들
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후부터 조선은 명나라에 대해서 「대명회전」의 기록을 정정해줄 것을
끊임없이 요청했다. 이른바 종계변무 宗系辯誣라 불리는 양국간의 외교현
안은 이후 장장 200여 년을 끌었다.
명나라에서 「대명회전」의 기록을 정정해준 것은 선조 때에 이르러서였
다. 당시 종계변무를 위해 명나라에 파견되었던 유홍柳泓의 눈물겨운 간
청과 조선정부의 200여 년에 걸친 끈질긴 외교가 실효를 본 것이다. 유홍
은 귀국하면서 이성계의 혈통을 제대로 정정해 수록한 「대명회전」을 가
지고 돌아왔다.
이 소식을 접한 조선정부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200여
년 이상이나 조상님들에게 송구스러움을 면할 길이 없던 왕들의 수치가
일시에 사라진 것이다.
선조는 교외까지 거동하여 직접 수고한 사신들을 영접했다. 아울러 사
신들의 공훈을 기려서 공신책봉을 거행했다. 종계변무에 성공하고 돌아
온 사신들은 모두 광국공신光國功臣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선조에게는
정륜입극성덕홍렬定倫立極盛德洪烈이라는 거창한 존호가 올려졌다. 왕실
의 세계를 바로잡은 커다란 공을 세웠다는 의미다. 종계변무를 위해 선
조 및 정부의 관료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대목
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