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장수 고시니의 군대가 사용한 군기들 기록화(일본 자료).
그림 하단에 조총을 어깨에 멘 왜병 옆으로 십자가 군기도 보인다.
예수회 신부는 틀림없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속삭였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 예수회가 중국은 물론 인도까지 정복시켜줄 것이다.”
그래서인지 히데요시는 인도까지 정복할 수 있다고 너무나 자신만만했고 심지어 부채의 앞과 뒷면에다가 중국어와 조선어를 써서 달달 외웠다고 조중화는 말한다.
여기서 독자들이 명심해야할 바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예수회는 교황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로마 카톨릭 조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사실상 ‘다른 예수’ 즉 거짓 예수(적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다.
그들의 위험성을 알아차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무모한 전쟁이 끝난 이후 천주교인들을 일본에서 씨를 말려버리고 예수회를 추방시켰다.
그러나 예수회는 수백 년이 흐른 뒤 함포를 단 미국 함선들을 끌고 와서 일본 땅에 쏘아대며 협박하게 하여 결국 일본을 개항시키고야 말았다.
그리고 예수회는 메이지 유신을 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급속도로 일본 열도를 차지하고 일본을 부추겨 조선을 점령하게 하여서 천주교인들이 거기에 합법적으로 드나들 수 있게 했다.
굳이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대원군이 예수회와 천주교인들을 목을 잘라가며 개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에서는 대원군 때문에 조선의 개화가 늦어져서 망했다고 대원군을 증오하게 만드는 역사교육을 시킨다. 한국의 교육체계가 예수회의 입맛에 맞게 교육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한국 천주교인들의 일부는 이 땅을 천주교 국가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군함으로 나라를 침공해주든지, 아니면 압박을 해달라는 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것이 대원군의 무서운 박해를 초래한 단초를 제공했다.
천주교인들이 성인이나 위인으로 존경하는 김대건 신부나 알퐁소 신부 조차 예수회 소속임은 알려진 상식이다. 이미 예수회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익히 알려진 존재이며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이순신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천주교를 잘 묘사하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산에 상륙하여 동래성을 함락하고
조령을 넘어 북진했던 고니시의 부대는
줄곧 큰 깃발을 앞세우고 있었다.”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이었다.”
조선군을 공략하고 있는 고니시 장군 군대. 사진 우측의 십자가 군기를 보라.
중앙에 보이는 깃발은 십자가와 천사의 나팔을 형상화한 고니시의 부대 마크이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했던 장면)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언으로 철병을 명하면서 6년에 걸친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왜군은 철수를 서둘러야만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충무공은 목에 걸린 큰 가시였다. 앞길을 막고 있는 큰 바위였던 것이다.
충무공이 바다의 요충을 가로막고 있어서 도저히 해상 퇴각로를 뚫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니시는 퇴로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도 조선 양민들의 목을 베어 소금창고에 옮기는 작업을 계속했다.
조선 양민들의 목을 벨 때에도 그의 진영에는 변함없이 비단 천에 열십자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조선 양민들의 베어진 목들이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에게는 제사상의 돼지머리보다 훨씬 처리하기 쉬운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 일본 만화 '수군장~소서행장전' 표지.
독실한 천주교 신자답게 고니시 유키나가는 십자가를 부착한 투구를 쓰고 있다.
실제로 소서행장은 십자가가 달린 투구를 썼던 인물이다.
어느날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 양민의 목 수백 개와 함께 전령을 명나라 수군 장수 진린에게 보냈다.
“조선인의 목인지 일본군의 목인지 누가 구분할 수 있겠소? 이 수급들을 전과 보고용으로 명나라 황제에게 보내시오. 남의 나라에 와서 힘들여 싸울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소? 진린 장군께서는 이제 해상 퇴각로를 열어주시오. 우리는 이만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오.”
하지만 충무공은 더 많은 왜군의 목을 베어 진린에게 보냄으로 퇴로를 열어주지 못하도록 했다.
예수회 사제가 종군신부로 참전한 일본 십자군
십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전쟁에 나가는 것은 템플기사단이나 프리메이슨들이 흔히 사용하는 전형적인 ‘과시’였다. 그처럼 십자가 깃발 나부끼며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의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다. 임진년(1592년) 4월 13일이었다. 바다를 뒤덮은 왜군(倭軍)의 배에는 십자가 깃발이 휘날렸다.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쟁인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그토록 비극적인 사건이 우리나라와 천주교의 최초의 만남이 되었다. 400여년 전 조선인들이 겪은 임진왜란은 한국판 십자군 전쟁이었다.
“왜적의 배가 대마도에서 우리 바다로 오며 바다를 뒤덮듯 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 징비록-
↑ 부산으로 침략하는 왜군 병선의 돛에 있는 십자가 표시를 보라.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했던 장면)
↑ 왜군 병선의 돛에는 십자가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십자가 군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했던 장면)
왜군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와 사위이자 쓰시마 도주 ‘소 요시토시’가
병선 수백 척에 병력 1만8700명을 이끌고 부산 영도에 상륙했다.
군기로 십자가 깃발을 사용.
십자가 군기 휘날리며 돌격하는 기리시단(吉利支丹) 왜군(일본 자료)
십자가 군기를 들고 있는 기수병들 앞에서 조준사격을 하고 있는 왜군 조총병들(일본 자료)
↑ 조선 수군의 화포 공격을 받고 격침되는 고니시의 왜군 병선.
십자가 군기를 보라!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했던 장면)
↑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의 화포 공격을 받고 분멸하는 왜군 병선.
십자가 군기를 보라!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부산포해전 장면(1592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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