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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25 08:00
노래 잘하고 일 잘한 '만 년 처녀', 김길임 명창
 글쓴이 : 흰두루미
 








예전에 정월대보름이나 팔월 추석날이 되면, 동네 여자들이 모두 모여 손에 손을 마주 잡고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돌면서 <강강술래> 노래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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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전해져 왔지만, 특히 전라도의 남쪽 해안 지방에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옛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여그 우수영 앞에 있는 울돌목 바다에서 왜놈들 허고 싸울 적에, 싸울 사람이 없응께 허수애비를 만들어서 진도 앞 산에다 세워 놓고 강강술래처럼 손 잡고 빙빙 돌게 했디야. 시방은 진도대교를 놓니라고 울돌목 여울을 매웠는디, 옛날에는 소용돌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배가 지나갔다 허먼 물속으로 들어가버링께 그리서 임진왜란서 이순신 장군이 이겼대야.”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선두리에서 1927년에 태어난 김길임 명창은 어려서부터 울돌목에 얽힌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 끝에 불리워지는 <강강술래>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가난한 농부 김대표씨의 8남매 중에서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물 긷고, 빨래하고, 방아찧고, 밥하고, 동생들 보살피느라고 초등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고생이야 말도 못하지라. 우수영 장에 오먼 물도 못 얻어 먹는다는 말이 있을만큼 물이 귀히서, 우물 밑에 조금씩 괴는 물을 뜰라고 우물 밑에 내려가서 바가지로 닥닥 훑어서 떠갖고는 갖다 붓고 갖다 붓고 허기를 밤새도록 힜응께. 겨울이먼 손이 꽁꽁 얼고 얼굴에 고드름이 허옇게 매달링게, 어린 것이 얼마나 추웠겄어.”

그렇게 고달픈 생활 속의 유일한 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노래를 잘 불러서 <육자배기>나 <아리랑 타령>이나 <강강술래>를 아기 때부터 흥얼거릴 수 있었고, 또 “어매 태겨서” 곧 어머니를 닮아서 목소리가 곱고 구성지게 잘 불렀기 때문에 길임이 처녀가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 들어 “잘한다”, “한 번 더 해라”, 추켜 세우는 통에 재미가 나서 자꾸자꾸 불렀습니다.

특히 정월대보름이나 팔월 추석이나 단옷날 같은 명절 때면 마을 처녀 중에서 제일 인기있는 가수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북을 잘 치시고, 어머니는 노래를 잘 부르시고, 큰오빠허고 작은 오빠는 장구도 잘 치고 노래도 잘 히서 당골네 가족이라고들 힜어. 나도 별나게 노래를 잘헌다고들 혔는디 아버지가 무서워서 집에서는 노래를 못 힜지. 그려도 친구들허고 모여서 놀 때는 신나게 불러 버맀어.”




달 떠온다 달 떠온다

동해 동창에 달 떠온다
저 달이 뉘 달이냐
강호방네 달이로다
강호방은 어디 가고
저 달 뜬 줄을 모르는가

하는 가사를 길임이 처녀가 처량한 곡조에 얹어 '늦은 중머리'로 길게 내뽑으면 동네 처녀들이 달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이면서 “강강술래 강강술래”하고 받습니다.

양에 양에 양임이는
시집 가던 사흘만에
바느질을 하라 하여
겨와 기름 불을 켜고
섶뉘비고 짚뉘비고
아랫강에 개가 짓고
건너강에 닭이 울어
잠이 와서 잠잤더니
시아버지 호령소리
시어머니 기침소리
에라 이거 못 살것네

하며 시집살이를 한탄하는 가사를 조금 빠른 '중중머리'로 '낭창낭창' 부르면 처녀들과 갓 시집 간 새댁들이 '나붓나붓' 걸어가면서 “강강술래 강강술래‘하고 후렴을 받습니다.


뛰어보세 뛰어보세

억신억신 뛰어보세
높은 마당 깊어지고
깊은 마당 얕어지네
억신억신 뛰어보세

하며 '자진머리'로 넘어가면 모두들 다리를 들썩이고, 어깨를 출렁이고, 댕기머리 휘날리며, 원을 그리고 빙빙 돕니다.

그러다가 “남생이 놀아라 절래 절래 놀아라“ 하고 선창하면 ’남생아 놀아라 절래 절래 잘 논다” 하고 받고,
“고사리 대사리 꺾자 너무 대사리 꺾자 유자꽁꽁 재미나 넘자 아장아장 버리여“ 하며 아장아장 걷기도 하고,
”청애 청애 엮자” 하면서 뒷사람이 앞사람 어깨를 잡고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도 하고,
“몰자 몰자 덕석 몰자“ 하면서 덕석몰이를 하기도 하고,
허리를 보듬어 안고 ”진주 새끼 잘룩잘룩 가사리 벗이여“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잡았네 잡았네 진주 새끼 잡았네” 하면 앞사람이 뒷사람을 잡고 꼬리따기를 하기도 하고,
“밟자 밟자 기와를 밟자” 하면서 기와 밟는 시늉도 하고,
“가마 타세” 하면 세 사람이 손 넣고 한 사람이 그 위에 가마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달이 지고 희부옇게 동이 터오곤 했습니다.

밤새도록 뛰어 놀던 처녀들은 빨갛게 상기된 볼에 웃음을 띄우고 '욱신욱신' 쑤시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방에 쓰러져서 단잠을 자고 난 다음, 다시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방아를 찧고 빨래를 했습니다.

빨래를 하면서는 “날씨가 좋아서 빨래를 갔더니만 모진 놈 만나서 돌베개 배었네 덩기 둥당에 둥당덩” 하고 <둥당에 타령>을 부르며 킥킥거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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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를 찧으면서는 “에양 에양 에에야 어허 이것이 방아로구나” 하며 <방아 타령>을 부르고, 도리깨질을 할 때는 <도리깨 노래>도 부르고, 밭에서 일을 할 때는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하면서 <아리랑 타령>을 부르며 동네 처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던 길임이 처녀도 어느덧 나이가 스물이 되어 장승환이란 총각한테 시집을 가더니 남편 따라 인천으로 덜렁 떠났습니다.

“그 사람의 본 고향은 우수영인디, 목포서 자람서 배를 탔디야. 인천서도 커다란 고깃배 기관장을 혔는디, 돈은 잘 벌어다 줬어도 배 타고 나가먼 보름만에도 오고 한 달만에도 오고 바람 불먼 설 달만에도 옹께 부부 정이란 걸 통 모르고 살았어. 그러다가 삼 년 뒤에 6.25 사변을 만나서 나 혼자 친정으로 내려왔는디 나중에 들응께 인천서 죽었디야. 그렁게 시방은 그 사람 얼굴도 기억을 못혀.”

스무 살에 시집 가서 3년만에 청상과부가 된 '노래 잘부르는 길임이'는 다시 친정에서 빨래하고, 방아 찧고, 물 긷고, 밭일을 하며, 노래부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27살이 되었을 때 오빠 친구이며 잘 생긴 홀아비인 홍준철씨를 만나 두 번째 시집을 갔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해도 듣기는 좋아해서 임방울 명창의 레코드를 틀어 놓고 혼자 듣곤 했던 36살의 홀아비는 노래 잘부르고 일 잘하는 색시를 얻자 입이 헤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에게는 근심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내가 사주에 무자식이 끼어서 애기를 못 낳아. 점을 치먼 남자로 태어났으먼 나라의 녹을 먹고 만 군사를 거느릴 팔잔디, 여자로 태어나서 자식도 없고 이 고생을 헌다는 거여. 우리가 자식없이 사는 게 딱했든지 큰 시숙님이 막내 아들을 양자로 들이라고 하셔서 그 놈이 아들 노릇을 허고 있지.”

한 가지 근심이 없어지고 나니 금새 또 다른 근심이 생겼습니다.

소장수를 하면서 돈을 잘 벌던 그녀의 남편은 ‘사주에 바람 풍자가 들어서’ 어딜 가나 여자가 줄줄 따랐습니다. 얼굴이 호인으로 잘 생기고 돈 잘 쓰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을 마다하는 여자가 어디 있으며, 따라붙는 여자를 물리칠 한량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 사이에서 몸살을 앓는 건 '본각시'뿐이었습니다.

“말도 못허게 속썩었어. 그 사람이 오빠 친구만 아니라먼 당장에 나가버맀을 거여. 오빠 위신, 친정 체면 땜시 꾹꾹 참았어. 한 번은 한 바탕 싸우고 나가버린다고 무조건 집을 나왔는디 차부에 나옹께 갈 디가 있어야지. 친정에 갈 수도 없고 히서 셋째 동서네 집에 가서 하소연만 허다가 할 수 없이 돌아와 부렀어. 그리서 내가 시방도 조카들더러 신랑 잘 생긴 사람 얻지 말라고 혀.”

그러면서도 신랑 성질이 불 같아서 그렇지 싸우고 나면 금방 풀어지니까 지금까지 살았노라고 웃으며 얘기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잘 생긴 신랑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순박함이 어려 있었습니다.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가끔씩 수줍어하기도 하고 볼이 빨개지기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저는 나이가 들었어도 처녀티가 나는 '만 년 처녀' 모습을 봤습니다. 

그렇게 속을 썩여 가면서도 때로는 오순도순 정도 나누고, 장이 열리는 날이면 집에다 주막을 만들어 술도 팔고, 친아들만큼이나 귀여운 양아들을 키우며 사느라 한 동안 노래를 잊고 살던 그녀에게 뜻밖에 다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왔습니다.

38살이 된 1965년에 볼일이 있어서 큰집에 갔다가 마침 서울에서 문화재 위원들이 <강강술래>를 할 줄 아는 아주머니들을 서른 명쯤 모아 놓고 녹음을 시켜가면서 조사를 하는 자리에 끼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뭣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르고 자꾸 권하는 통에 아는 노래를 모두 불렀습니다.

그러고 난 지 얼마 뒤에 시숙님이 말하기를, “제수씨, 문화재 된다우”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재가 뭣이다요?”
“임방울씨나 이런 양반은 노래를 잘 불러서 문화재로 이름을 남기고 간다 안합디여? 제수씨가 인자 그런 사람이 되는 거다요.”
“오매, 내가 으떻게 임방울씨처럼 된다요?”

임방울씨라 하면 어렸을 때 ‘협률사’라는 창극단이 포장 치고 공연을 할 때 진도까지 걸어가서 포장을 들치고 몰래 숨어 들어가 <춘향전>이나 <장화홍련전> 같은 창극을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에 송만갑이나 임방울 같은 명창의 노래는 소녀의 가슴에 깊이 파고 들어 “부모만 안 무서웠으면 그런디로 따라 댕길” 생각도 할만큼 흠뻑 빠진 적이 있지만, 자기가 그런 명창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그때 모였던 다른 아주머니들을 제치고 제일 어린 나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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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뭔지도 몰랐던 그녀는 처음에는 귀찮기만 했습니다. 밭에서 일하면 면에서 사이드 카 타고 와서 말 시키고, 사진 찍고, 노래 불러보라고 하며 퍽도 귀찮게 굴었습니다. 한 3년간을 “돈도 안 줌서” 귀찮게 굴더니, 드디어 40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돈 만 원이 나왔습니다.

“돈이 나옹께 우리집 양반이 면장님이나 시숙님한티 점심이나 한끼 잘 대접허라고 하셔서 면장님한테 찾아갔더니 깜짝 놀라시며 이 돈은 그런디다 쓰면 안된다고 바람직하게 쓰시라고 허시는 거여. 그리서 우리집 양반을 드맀더니 목포 가서 서 돈짜리 반지 사고, 내 여름 옷 한 벌 사고, 여비 쓰고 돌아오셨대. 그리서 우리집 양반은 시방도 그 반지를 껴.”

난생 처음 받아 본 나랏돈이 그리도 기뻤던지 그녀는 퍽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뒤로 꼬박꼬박 돈이 나오고, 사람들 대우도 달라지고, 제자들 가르치라고 연수비도 나왔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군에서 행사가 있을 때 나가서 소리를 하자니 집에서 하던 술장사는 자연히 때려치우게 됐습니다. 그뒤 대전에서 열렸던 전국 민속경연대회에 <우수영 농요>로 나가서 국무총리 상을 받고, 진주에서 벌어진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 상을 탄 뒤로 해남 우수영의 <강강술래>와 <농요>는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디 내가 마흔 두살 때 간이랑 쓸개에 병이 들어서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어. 그리서 그런 대회에 나갈 때는 몸이 안 좋아서 제자가 앞소리를 허고 나는 받는 소리만 혔지. 그 뒤로 몸이 좋아지기는 혔지만 인자 나이가 들응께 힘이 부쳐서 제자들 갈치기만 허지 내가 직접 소리는 안 혀.”

그녀는 해남이나 진도를 왔다갔다 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군민의 날이나 전라남도 문화재가 열릴 때 제자들을 데리고 나가 소리를 하는 것 말고는 평소 살던대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밭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다만 옛날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런 행사 때가 아니면 좀체로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월대보름이나 팔월 추석날이 되어도 사람들이 모여서 풍물을 치고 푸짐하게 놀지도 않고, 강강술래를 부르며 놀던 처녀들은 모두 서울로 떠나고 없으니 빈 달만 적막하게 동산에 걸려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디 민요는 백성들의 일과 놀이를 더욱 풍요롭고 건강하게 해주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노래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삶도 변했고, 일의 성질도 변했고, 노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민요는 삶의 노래가 아닌 행사의 노래로 변하고 말았고, 백성들의 삶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꽃 다운 나이에 한복 곱게 차려 입고 나붓나붓 춤을 추며 강강수월래를 부르던 '만 년 처녀' 김길임 명창. 그녀는 옛날의 처녀 시절을 그리워하다가 199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와 함께 달빛 아래 신비롭게 펼쳐지던 여인들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노래들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출처: https://dreamnet21.tistory.com/362?category=165532 [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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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9-09-25 09:26
 
이 노래는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전해져 왔지만, 특히 전라도의 남쪽
해안 지방에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겨울 19-09-25 09:27
 
특히 정월대보름이나 팔월 추석이나 단옷날 같은 명절 때면 마을 처녀 중에서 제일 인기있는 가수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겨울 19-09-25 09:28
 
그렇게 속을 썩여 가면서도 때로는 오순도순 정도 나누고, 장이 열리는 날이면 집에다 주막을 만들어 술도 팔고, 친아들만큼이나
귀여운 양아들을 키우며 사느라 한 동안 노래를 잊고 살던 그녀에게 뜻밖에 다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왔습니다.
산백초 19-09-25 11:12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선두리에서 1927년에 태어난 김길임 명창은 어려서부터 울돌목에 얽힌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 끝에 불리워지는 <강강술래>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산백초 19-09-25 11:14
 
시집살이를 한탄하는 가사를 조금 빠른 '중중머리'로 '낭창낭창' 부르면 처녀들과 갓 시집 간
새댁들이 '나붓나붓' 걸어가면서 “강강술래 강강술래‘하고 후렴을 받습니다.
산백초 19-09-25 11:18
 
그러면서도 신랑 성질이 불 같아서 그렇지 싸우고 나면 금방 풀어지니까 지금까지 살았노라고 웃으며
얘기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잘 생긴 신랑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순박함이 어려 있었습니다.
늘배움 19-09-25 16:57
 
가난한 농부 김대표씨의 8남매 중에서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물 긷고, 빨래하고, 방아찧고, 밥하고, 동생들 보살피느라고 초등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늘배움 19-09-25 16:58
 
밤새도록 뛰어 놀던 처녀들은 빨갛게 상기된 볼에 웃음을 띄우고 '욱신욱신' 쑤시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방에 쓰러져서 단잠을 자고 난 다음, 다시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방아를 찧고 빨래를 했습니다.
늘배움 19-09-25 17:00
 
문화재가 뭔지도 몰랐던 그녀는 처음에는 귀찮기만 했습니다. 밭에서 일하면 면에서 사이드 카 타고 와서 말 시키고,
사진 찍고, 노래 불러보라고 하며 퍽도 귀찮게 굴었습니다. 한 3년간을 “돈도 안 줌서” 귀찮게 굴더니, 드디어 40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돈 만 원이 나왔습니다.
코스모스 19-09-26 18:06
 
“문화재가 뭣이다요?”
코스모스 19-09-26 18:07
 
난생 처음 받아 본 나랏돈이 그리도 기뻤던지 그녀는 퍽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뒤로 꼬박꼬박 돈이 나오고, 사람들 대우도 달라지고, 제자들 가르치라고 연수비도 나왔습니다.
코스모스 19-09-26 18:08
 
본디 민요는 백성들의 일과 놀이를 더욱 풍요롭고 건강하게 해주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노래입니다.
코스모스 19-09-26 18:08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삶도 변했고, 일의 성질도 변했고, 노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민요는 삶의 노래가 아닌 행사의 노래로 변하고 말았고, 백성들의 삶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코스모스 19-09-26 18:09
 
꽃 다운 나이에 한복 곱게 차려 입고 나붓나붓 춤을 추며 강강수월래를 부르던 '만 년 처녀' 김길임 명창. 그녀는 옛날의 처녀 시절을 그리워하다가 199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와 함께 달빛 아래 신비롭게 펼쳐지던 여인들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노래들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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