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덕립>
우리는 도성덕립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상제님 진리의 궁극 이상이다.
근데 이 도성덕립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 핵심에 개벽이 있다. 병겁을 지나고 지축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선천이 혼란스러웠던 것은 지축이 삐딱하게 기울어졌기 때문이며 개벽을 해 지축이 바로 서면 인간정신이 바로 서서 도성덕립이 된다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며 논리적으로 그럴싸한 얘기다. <우주원리>라는 책도 이 논리에 원리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여기에 한번 빠지면 도성덕립의 절대법칙으로 신봉한다. 수행이 잘 안 되는 것도, 인간 수명이 짧은 것도 지축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보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논리다.
지구상에서 나고 자란 물질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 육체를 가진 인간은 이 물질의 지배를 받고 있다. 때문에 녹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자본이야말로 이 세상을 뜻대로 주무를 수 있는 여의주다. 이 녹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생활의 모든 활동이 이루어진다.
자국의 백성이 민란을 일으키고,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그 근저에는 녹을 더 확보하기위한 경쟁인 것이다. 이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자본이 없으면 지구촌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상제님 말씀이 하느님 말씀이 되려면, 책을 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녹祿 즉 자본을 타야한다. 상제님을 믿어 녹이 붙는다면 세상 누구도 믿으라하여 믿지 않겠는가! 자연스럽게 믿게 된다. 서민자래庶民自來하여 사람 바다를 이룬다.
페이스북에서 친구 맺기로 진리를 전파하려고 해봐야 되지 않는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또 온갖 카페에 가입해 사람을 만나려 하지만 용이하지 않다. 이렇게 해서 가뭄에 콩 나듯 한두 사람 들어오면 이제 기운이 도는 모양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안 된다. 제자리걸음이면 다행이고 자꾸 쪼그라든다. 이것이 20년 이상 지속된 종정님 도정의 민낯이다.
그래서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 한 바 있지만 현실 중에 극현실은 녹祿이다. 그러므로 비현실은 이 녹을 등한시한 각종 논리들이다. 비현실적인 논리들은 차별적이며 특별하고 독버섯처럼 화려해서 사람을 현혹시키고 궁극에는 몸을 병들게 한다. 이곳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지축이 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마치 임옥에서 땅 빠질까 근심했던 그때의 성도와 다르지 않다. <임옥에서 땅 빠진다>고 하셨던 태모님 말씀의 진의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임옥의 땅이 꺼져버리는 사건이 아니라 태모님 선화에 관한 말씀이었다. 태모님 당신님을 땅에 비유한 것이다. 지축이 바로 선다는 문제도 이와 같이 비유를 품은 현실적인 사건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축이 선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보면 무슨 이야기일까?
도전에 보면 <돈에 눈을 틔운다> 말씀이 있다.
돈에 눈을 틔워 돈이 선한 사람을 따르게 한다는 것은 사람이 돈의 흐름을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이 흐름이 사람의 의식까지 바꾸어 놓는다. 가까운 예로 생명이 소중해서 안전벨트 매기가 정착된 것이 아니라 안 매면 부과되는 과태료 돈 때문이다. 이제 누구도 차에 타면 안전벨트를 맨다.
그래서 녹은 곤에 붙어 있으므로 녹祿을 바로 잡는 것은 곤坤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 곤을 바로 세우는 것은 곤의 실체인 지축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 지극히 현실적인 해석이다.
이미 벌어진 만물은 다시 근본자리로 되돌려 놓지 못한다. 남녀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똑같은 인간임을 강조하지만 남과 여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음양으로 갈라지기 전의 상태가 무극이라면 남녀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원시반본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을 인간이라는 무극으로 돌아갈 뿐 남녀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곤을 바로 잡는 것은 지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돈에 눈을 틔워 우리의 의식을 바로 잡는 것이다.
천지에 큰 녹이 형성되면 도덕성이 결여된 곳에 녹이 끊어진다. 또 대중이 각 분야에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돈이 흘러가지 않는 곳은 무엇이 되었든 다 사라진다. 그래서 도성덕립은 돈줄을 움켜쥐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핵을 다스리는 것도 이 녹줄이다.
정치적인 권력으로 무언가를 해결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지난 20세기의 역사를 수박 겉핥기로 본 것이다. 왕조문화에서 이런 민중의 문화로 전환하는데 얼마나 많은 희생과 눈물이 있었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놀공들을 잡고 나라의 도둑을 잡아 뭐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냥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피를 동반해야 하고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정치권력으로 해결하려면 다시 20세기 역사의 전철을 밟아야 한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또 다른 아수라장이다.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자!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농협 356-0719-4623-83안정주
※ 통합경전계좌 : 국민은행 901-6767-9263노영균sjm5505@hanmail.net
※ 투자금 계좌: 하나은행 654-910335-99107 안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