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슷한 신화가 오히려 성경 신화의 실존을 증명해 주는가?
성경보다 훨씬 오래된 주변국의 신화가 오히려 노아의 방주와 같은 성경 신화가 실존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상당수 있다. 심지어 창조과학회 조차도 필자가 제시한 신화들과 함께 중국과 아시아 등지에 존재하는 홍수신화까지 들먹여서 노아의 방주를 입증하려 한다(도데체 창조과학회는 과학 하는 곳인가? 고고학을 하는 곳인가? 과학이라는 이름을 내걸 자격도 없는 싸구려 궤변논자들이다.)
그러한 주장들이 얼핏 보면 정말로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창조과학회의 주장에 대해 목사들과 신학생들의 방관하는 죄가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신학을 알고 있다면 그러한 주장은 감히 할 수도 없다. 아니, 신학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모순이 그대로 드러나버린다.
첫째, 비신학적으로도 그들의 주장은 궤변일 수밖에 없다. 만약 모세가 실존했다면 그는 람세스 2세(BC 1290 ~ BC 1223)때의 인물일 것이다. 모세5경을 모세가 기록했다는 억지주장을 편다 하더라도 수메르와 바빌론의 점토판 보다 오래되지는 않았다. 수메르의 점토판중 가장 오래된 것은 BC 2000년경쯤 된다. 즉, 모세5경을 모세가 기록했다고 억지주장을 하더라도 구약은 수메르 점토판보다 오래된 것이 아니다.
두번째, 신학적으로도 전혀 타당하지 못하다. 신학계에서는 모세오경이 모세의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예 포기해 버린 지 오래이다. 모세오경이 모세에 의해 쓰여졌다고 믿는 것은 일반 평신도들뿐이다. 구약성경은 히브리 민족의 바빌론 유수 당시 BC 1000경 무렵에 전승들이 나타나, 전해 내려오는 전승들이 BC 500년 무렵에 문서에 기록되기 시작 한 것이다. 게다가 바빌론 유수 당시 유대인들은 바빌론의 문화를 다수 받아들였다.
물론, 세계각지에 퍼져있는 유사한 홍수신화에 대해서 우리는 유의해 볼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수메르지역의 신화가 널리 전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바빌론 유수 이후에나 만들어진 구약으로 무엇을 증거한단 말인가?
인도의 홍수신화의 경우 다른 지역으로부터 유입된 것임이 확실시 된다. 인도의 홍수신화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적 기념비인 베다어 성전의 찬양 시에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고대 바라문 교의 베다경전은 BC 1500~1000년사이에 기록된 것인데, 곧 아리안 족이 아직도 뉴델리 북쪽의 펀자브 지역에 정착하고 있으나, 아직 남동쪽의 갠지스 강 유역에서 퍼져 나가지 못했을 때 기록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 후대에 쓰여진 범어 서적들에게서는 뚜렷이 눈에 띄는 홍수 설화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그 형태들은 세부 사항에서만 약간씩 다를 뿐이고 일반적으로 유사성을 띠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크게 떠들어 대는 중국 남서부 운남성 롤로족의 홍수 신화의 경우는 중국에 경교가 수입된 후에 형성된 것이다. 기독교의 한 종파였던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s)는 안디옥 근처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428년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 감독에 임명됐으나, 교리논쟁에 휩싸인 후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패배해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렸다. 결국 네스토리우스파는 몸을 추스르고 독자적인 교회 전통을 수립해 나갔으며, 페르시아를 기반으로 7세기 초부터 인도와 아라비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고 이 물결은 비단길을 따라 중국까지 이르렀다.
알로펜을 중심으로 한 네스토리우스파의 선교단이 중국에 도착한 것은 635년 당 태종 때였다(이때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였다). 당 태종은 재상 방현령을 보내 네스토리우스파의 선교단을 맞이했고 장안(長安)에 머물면서 경전을 번역하도록 했다.네스토리우스파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경교(景敎)로 널리 알려졌다.홍수전설을 가진 중국의 롤로족은 일반적으로 6일마다 안식일의 휴식 규정을 지킨다. 이런 전설과 풍속모두를 네스토리우스파(경교)의 선교사들의 가르침과 관련시킨 A.헨리 시의 해석이 옳을 것이다. 중국으로 넘어온 경교는 13 세기에는 그 교회가 운남성에 세워졌다. 이때에는 마르코 폴로가 이 지역으로 여행을 했고 알로펜이라는 경교의 교도가 중국에 도착한 것은 일찍이 AD 635년이었다고 전해진다.경교는 원래 로마에서도 추방당한후, 동양으로 건너오면서 토착화가 진행되어서 많이 변질되었으며 결국 소멸되어 버렸다.
즉, 중국의 홍수전설은 엄연히 경교의 영향이다. 이야기가 좀 빗나가겠지만, 신라고분에서 발견된 일부의 십자가유물을 가지고 고대한국이 기독교국가였다는 해괴망측한 주장을 하는 목사가 있다. 이런 궤변논자들은 역사학자들에게 돌 맞아도 싸다. 신라의 고분에서 아라비아지방의 유리잔이 대량 발굴 되었듯이, 그것은 당과 아라비아와의 활발한 무역으로 인해서 경교가 약간 유입된 것 뿐이지, 경교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린 경우는 어느 역사서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아메리카 대륙에 홍수전설이 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아메리카 인디오들과 마야족의 표의문자에 의해 쓰여진 마야의 고사본의 내용에는 전설의 뮤대륙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코르테스에 의해 마드리드 도서관에 보관중인 '트로아노 고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
"칸의 6년 11무르크.사크의 달에 무서운 지진이 시작되어 13츄앤까지 쉴새 없이 계속되었다.(마야의 달력에 의하면 3일간의 기간임) 언덕의 나라 뮤대륙은 희생될 운명에 처해있었다. 대지는 두 번이나 치솟았다가 밤사이 사라졌다. 지하불의 작용에 의하여 대지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여러 곳이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땅이 갈라지고 10개의 나라(민족)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하여 6400만의 주민은 그 나라와 함께 더불어 침몰했다. 이 책을 쓰기 8060년전의 일이다." [오카다 히데오/오만한 문명에 대한 경고/김도희 옮김/나무생각/P.218]
"멕시코의 유카탄반도에 있는 우슈말 유적의 신전벽에 이 신전은 우리들 신조의 원조인 뮤 국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신전의 내부는 뮤 대륙이 있었던 서쪽을 향하고 있다." [오카다 히데오/오만한 문명에 대한 경고/ 김도희 옮김/나무생각/P.219]
물론, 필자는 전설의 뮤 대륙이나 아틀란티스 대륙이 실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아메리카 인디오들의 홍수 이야기라고 제시하는 것은 실상 뮤 대륙의 전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디오의 기서 치람, 파람 5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재앙의 전설에 따르면 하늘에서 불과 재가 떨어지고, 하늘에 거대한 뱀이 나타나 뱀의 껍질과 뼈 조각이 땅에 떨어지고 난 뒤 대지가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고 한다.
이것은 마야의 뮤 대륙의 비극적인 전설에 영향 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진과 화산폭발, 혹은 운석의 낙하와 같은 대 이변(하늘에서 불과 재가 떨어짐)에 의해 대륙이 바다 속으로 침몰되었다는 인디오의 전설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 대홍수가 발생했다는 창세기의 홍수전설과는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마야족의 뮤 대륙의 전설과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마야의 전설은 외면하고 인디오의 전설만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틀란티스 대륙이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나, 노아의 홍수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나 모두 똑같다. 신화를 신화로 보지 못하고 역사로 착각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기독교인의 경우에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아틀란티스나 뮤 대륙의 침몰신화는 아예 건드리지도 않고, 인디오의 전설만을 이용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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