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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24 11:17
제 111편「중국」 6- 중국 최초의 근대적 혁명정당이라 칭하는 중국동맹회 결성
 글쓴이 : 전설따라소설쟁이
 
 
 
동맹회 결성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쑨원의 일희일비一喜一悲
 
 
 
쑨원은 1903년을 기점으로 그간 걸어온 정치경력에서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해부터 중국 내에서 가장 권위 있고 유력한 세력인 지식인계급이 혁명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지식계급의 가담에 관하여 미국의 중국사학자 완 Y.C.Wan교수는 변화의 요인으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는 이 시기에 청조의 쇠퇴가 너무나 뚜렷해져서 청조의 타도를 부르짖는 쑨원의 혁명론이 힘을 얻게 됐다는 점이다. 둘째는 보황론의 입장에서 개혁을 외치던 거물급 지식인 량치차오 역시 혁명론을 제시함에 따라 쑨원의 혁명론에 비해 덜 본질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개혁론으로부터 혁명론으로 전환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쑨원의 혁명론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키는 데 이바지 했다.
 
 
 
이제 중국 내의 지식인들이 쑨원의 혁명입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날로 늘어나고 있을 즈음, 그는 해외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먼저 미국 영토로 편입된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 이어서 영국,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 SI 서기국과 연이어 프랑스를 방문했다.
 
쑨원이 해외를 순방한 목적은 중국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전 세계 열강들이 중국혁명을 도와야 한다는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쑨원의 활동 결실은 1905년에 중국동맹회, 통칭 동맹회의 결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쑨원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중국 최초의 명확한 강령을 가진 중국혁명동맹회
 
중국의 18개 성가운데 17개 성의 대표를 자처하는 유학생 70명이 쑨원이 제시한 네 개의 강령, 곧 만주족을 쫓아내고 중화를 회복하며 민국을 건설하고 지권地權을 평등하게 한다는 강령에 충성을 바치기로 서약하는 가운데 이 조직을 발족시킨 것이다. 쑨원은 중국동맹회의 총리總理에 선출됐고 또 한사람의 지도적 혁명가인 황싱黃興이 그 다음 서열을 차지했다.
 
 
 
예루살렘 헤브루대학교 시프린 교수가 주장하는 쑨원의 중국동맹회에 대한 평가
 
 
 
시프린 교수는 한 마디로 쑨원의 중국동맹회를 중국 최초의 근대적 혁명정당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가감해 볼 때 중국의 역사는 그 어떤 목적을 가지고 혁명의 깃발을 걸고 투쟁했을지라도 결국 그 혁명 자체가 기존의 왕조를 없애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깃발 바꾸기에 불과 했기 때문에 역사는 단지 혁명이나 개혁이 아닌 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물론 실패 했을 때에는 온 일가친척이 효수를 당하게 되는 참극의 길을 걷는 다는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중국 역사의 왕조에는 끊임없는 민란과 반란이 되풀이 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기본적인 사상 조직이 구체적으로 명시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쑨원이 혁명론을 주장하기 전의 중국의 역사는 황제를 중심축으로 하는 보황론保皇論에서는 한 사람의 명령에 모든 국가가 통제되므로 기본적인 조직과 강령이 황제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혁명론이라는 것은 그저 단순히 중국 역사에서 기존 왕조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왕조를 새우는 것으로 역사는 반복될 뿐이었다. 그러나 쑨원으로부터 중국 최초의 근대적 혁명정당이 태동된 것이다.
 
 
 
쑨원의 전기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꼽히는 해럴드 시프린Harold. Z. Schiffrin 교수의 쑨앗센: 마지못한 혁명가sun Yat-sen: A Reluctant Revolutionary란 책은 1980년 출판한 책이다. 이 책에서 예루살렘 헤브루대학교의 시프린 교수는 그것은 기본적인 조직과 이데올로기 및 선전과 행동을 위한 강령을 지녔다고 평한 것이다. 시프린 교수는 이 조직이 쑨원에게 준 이익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중국 사대부집안의 아들들이 그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미천한 집안 출신이라 괄시를 받던 그가 중국 사회에서 중시되던 가문과 출신의 벽을 뛰어넘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시프린 교수가 지적한 미천한 집안 출신이라는 설명은 쑨원을 지적한 것으로 그는 분명히 잘살았던 집안의 출신이나 관료출신의 집안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권력가들이 암중모색을 하면서 수많은 왕조가 탄생했고 스러지는 중국의 역사에서 쑨원의 위대성은 중화사상에 가로막혀 내부적인 투쟁으로만 일관했던 시각을 전 세계 열강에게 혁명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때로는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쑨원이 건설하려던 민국은 결코 자유주의 민국이 아닌 사회주의 민국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그가 혁명을 위해 활동했던 결실은 중국이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의 열강에게 알렸다는 점이다. 즉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를 위시한 열강 세력에게 부패한 서태후 권력의 종말을 알리면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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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따라소설쟁이 15-02-24 11:49
 
쑨원의 위대성은 새삼 강조할만 하다.  비단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는 왕 (황제)중심의 사회체제 시스템으로
정치체제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것은 비단 힘 센자가 투쟁하여 이룩한 역사이기도 하지만  힘없는 백성이
스스로를 위탁하기 위해서 맡긴 자발적 역사이기도 했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2-24 11:53
 
전 세계는 투쟁을 통한 통합체제 시스템에서 초기 성 이라는 개념을 도입 한 뒤 자체적인 국가 시스템을 갖춘
것은  역사적으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유럽만 해도 국가의 형태가 나타난 것이 불과 얼마 되지 못했다.
오히려 국가의 형태는 동양사회가 서구의 사회보다 월등하게 앞선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인류의 대 이동에 따른 현상이었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2-24 12:03
 
또 한가지는 왕권과 황제 중심의 문화에서는 피지배층인 하층민이 지배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 조차 없었고, 설령 대항을 해도 단지 "난亂" 혹은 민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혁명이란 단어가
나타난 것도 서구 사회는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서 대중에게 알려진 후 보편적인 용어로 정착된 것이다.
개혁이란 단어는  제도와 관습 문물을 바꾸는  통칭적인 용어이다.

 "난과 혁명"에 관하여 왕조 시대의 "난과 혁명" 근대에 와서의 "난과 혁명"을 잘 구분 지어야 한다.
왕조 시대는 가장 하층민중이 일으킨 것이 성공한 사례가 단 한번도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통칭 "민란"
으로 정의 된 것이고, 왕(황)조 시대의 혁명이란 하층민이 아닌 왕족의 전유물 이었고. 그 다음이 사대부 였다. 
그들에게는 혁명을 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단지 왕족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혁명을 통한 새로운 왕조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에게는 혁명을 할 수 있는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이 처음부터 준비 됐기에 성공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그외의 것은 혁명이라는 용어를 차용해도 민란으로 역사는 기록할 뿐이다. 왕족이 일으킨 인류역사의 다툼은 "난"이라
기록하지 않고 실패 했을지라도 "역성혁명"이라고 기록할 뿐이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2-24 12:07
 
최근에 와서 학자들이 성공한 투쟁을 혁명이라 이름 붙이고, 실패한 것에 관하여 구데타라는 용어를  차용해서 쓰고 있다. 혹은
혁명과 구데타의 중간이 "정변"이라는 용어로 순화 시켜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쑨원의 위대성이 드러나는 것은 그의 집안은 왕족이나 사대부가가 아닌 오히려 격이 낮고 가난한 집안의 출신으로 중국에서
최초로 혁명 정당인 동맹회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중국 최초의 근대적 혁명정당이라는 뜻이다.
현포 15-02-24 14:12
 
13억 중국사람들이 존경한다는 중국의 국부 쑨원.어릴적 교과서로만 알았던 쑨원이라는 한 인간을 보며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것인지 생각해봅니다...
환경에 적응하며 일의 강약을 조절하고, 일의 성패를 가늠짓는 최대의 관건이 의지라고 생각함.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의지가 큰 사람들!
 상제님말씀처럼 될일을 안되게 하고 안될일을 되게 하라.
사오리 15-02-24 17:37
 
산골짜기에 피어난 한 조각 구름, 가고 머묾에 얽매임이 없고,
하늘에 걸린 밝은 달, 고요하고 소란스러움에 개으치 않네.

【태사부님께 암살자 보내고 친일부역한 이상호, 이정립무덤에 절을한 노상균 이석남/ 통진당 광주 홍어 이석남  】
이상호 이정립 추종계열
이상호 이정립 --- 홍성렬
노상균(견마지로.whRkfkakdltld) --- 이석남(참종자. 도심주. 심주도. 바지) ,
몽마르뜨 15-02-24 18:52
 
"난과 혁명"에 관하여 왕조 시대의 "난과 혁명" 근대에 와서의 "난과 혁명"을 잘 구분 지어야 한다.
왕조 시대는 가장 하층민중이 일으킨 것이 성공한 사례가 단 한번도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통칭 "민란"
으로 정의 된 것이고, 왕(황)조 시대의 혁명이란 하층민이 아닌 왕족의 전유물 이었고. 그 다음이 사대부 였다. 
그들에게는 혁명을 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단지 왕족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혁명을 통한 새로운 왕조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에게는 혁명을 할 수 있는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이 처음부터 준비 됐기에 성공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그외의 것은 혁명이라는 용어를 차용해도 민란으로 역사는 기록할 뿐이다. 왕족이 일으킨 인류역사의 다툼은 "난"이라
기록하지 않고 실패 했을지라도 "역성혁명"이라고 기록할 뿐이다.
Best of luck to you! 행운을 빕니다!
창호지구멍눈 15-02-24 20:30
 
혁명론’이라는 것은 그저 단순히 중국 역사에서 기존 왕조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왕조를
새우는 것으로 역사는 반복될 뿐이었다. 그러나 쑨원으로부터 ‘중국 최초의 근대적 혁명정당’이 태동된 것이다.
사람과사람들 15-02-25 00:00
 
시프린 교수는 “그것은 기본적인 조직과 이데올로기 및 선전과 행동을 위한 강령을 지녔다”고 평한 것이다.
감사하게 봅니다
혁명밀알 15-02-25 00:51
 
눈 아프게 잘 보고 갑니다.
목화씨 15-02-25 14:22
 
량치차오 역시 혁명론을 제시함에 따라 쑨원의 혁명론에 비해 덜 본질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개혁론으로부터 혁명론으로 전환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쑨원의 혁명론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키는 데 이바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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