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정약용이 생각한 방납(防納)과 피역(避役)의 문제
정조 즉위년(1776) 「병신정식」의 결과로 무토 도장에 대한 파견이 원칙적으로 사라지면서 도장 파견에 따른 폐해가 일부분 감소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국가의 적극적인 개혁으로 도장・차인의 횡포가 줄어들었던 반면에 이번에는 지방관아의 수령과 아전들이 궁방전 내에서 방납을 시행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생각하건대, 토지 없이 면세한다는 것은 장토는 주지 않고, 다만 세총 안에서 혹 1백결을 아무 궁 에 떼어주는 것이다. 매 15결마다 돈 1백냥을 거두었으며, 본현으로부터 호조에 직납하게 하여, 궁속들이 내려와서 소란피우지 못하게 하였다. 조정에서 휼민하는 마음이 이에 이처럼 지극하였으나, 그 전에 본현은 이로써 간사한 짓을 하였다. 기사년(1809)과 갑술년(1814) 겨울에 1결의 방납가가 많게는 32냥에 이르렀으니【쌀 1두가 전 1냥】, 1백결에 대한 방납가를 통계하면 3천 2백냥이었다. 이에 부유한 집의 기름진 전지 중에 상품 1백결을 덜어내어 궁에 상납하는 것으로 하였다가, 겨울과 봄 사이에 먼저 이 돈을 징수하여, 모두 개인 주머니로 돌렸다. ……
위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무토면세지 내에서의 수취를 본현(本縣)에서 맡아하며 호조에 직납하게 한 「병신정식」의 내용이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궁속의 파견을 금지한 것 역시도 정조 즉위년 궁방전에 대한 일련의 조치가 실제로 적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의 일련의 조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초에 와서는 오히려 지방 관리의 방납에 의한 폐단이 생겼다. 이들이 경작민에게 수취하는 양은 전을 기준으로 하여 법적세액인 1결당 7.67냥의 약 4배가량이었다. 이처럼 규정되 세액보다 과징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토면세지의 궁세수취에서 해당 지방관아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발생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도장과 같은 중간 수취인의 역할을 지방관 및 아전이 대신함으로써 실제 궁방전에 소속된 민인들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고, 그대로였거나 오히려 방납으로 인하여 증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무토면세전에서의 수령과 아전의 폐해는 목민심서에도 나타난다.
여러 궁방에는 이른바 무토면세전이 있는데, 즉 민결면세전이다. 매 민전 1백결 마다 전 7백냥을 거두어 호조에 직접 납부하면 호조에서 본궁에 지급한다. 매 1결마다 본래 전 7냥을 거두는 것인데 탐관오리와 교활한 아전이 이를 빙자하여 간악함을 부린다. 큰 흉년에 양호와 방결은 1결마다 백미 40두를 거두는데 쌀 1두마다 전 1냥이므로 모두 40냥이다. 만약 무토면세전이 1백결이라면 그 전이 4천냥이니, 7백냥을 제외하여 호조에 납부하고, 3천 3백냥은 관리와 아전이 나누어 가지니 어찌 횡 포가 아니겠는가?
목민심서의 내용을 통하여 법정세액인 1결당 7냥(7.67냥)의 5~6배에 해당하는 40냥을 경작민에게 거두어 호조에 납부하고 남은 차액인 33냥을 지방관과 아전이 횡령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처럼 도장・차인과 같은 중간 수취층의 남징을 막기 위한 국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방관과 아전이 새롭게 부여된 무토면세전에서의 수조권을 이용하여 규정된 세액보다 몇 배가 되는 양의 방납을 시행하였다. 이는 결국 일반민들의 부담이 도장・차인이 파견 된 당시와 같거나 오히려 가중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방납의 폐해에 대한 다 산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큰 흉년을 만나면 마땅히 이 돈으로 결전【균역청에 납입하는 것】에 옮겨 충당하게 하고, 결전은 다시 백성에게 거두지 않는다면 큰 혜택일 것이다. 결전은 매 1결마다 전 50푼을 거두면, 매 1천결마다 5백냥이 되며, 6천결은 3천냥이다. 만약 [위의 것이] 부족하다면 오직 부족한 수만큼을 조금씩 나누어 부과하여 거둘 것이며, 만약 넘치는 것이 있다면 그 남은 전을 쇄렴의 종류, 예를 들 어 장착지【쌀 2석】, 호조작지【쌀 5석】, 공인역가【쌀 5석】 등의 것에 옮겨 충당하게 하고, 다시 쇄렴을 거두지 않는 것이 옳다.【만약 그렇더라도 궁결미 12석은 본래 작전하지 않아야 함】
무릇 아전들의 방납은 반드시 으슥한 소굴에 의거하니, 궁방의 무토면세전이 1백결이면 아전의 1 천결은 모두 이것으로 [부정의] 소굴을 삼았다. 경기도에는 별도로 다른 소굴이 없기 때문에 궁결이 커다란 소굴이 된다. 모두 이런 것을 만나면 마땅히 1백결의 장부를 따로 만들거나 【50결・30결 등 그 본수에 따름】 아무 마을의 어떤 이는 몇 결 몇 부이며, 아무 마을 어떤 이는 몇 결 몇 부임을 일일이 열거하여 성책하고서 매번 방납의 위반을 조사할 때 이 장부를 참고 검토해야 한다. 만약 무토궁방전 [장부에] 이름이 없다면 아전의 사사로운 방납에 연유된 것이니 한 섬의 썩은 생산으로 냄새를 피우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산이 제시한 해결책은 방납에 따른 과도한 징세를 다른 명목의 세액으로 이속시키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목민심서에서도 언급한대로 규정상 7백냥을 징수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4천냥을 남징하였을 경우 규정세액 7백냥을 제외한 나머지 3천 3백냥을 결전結錢・쇄렴碎斂 등의 세액 납부에 이용하자는 것이다. 이는 민인의 부담을 경감시켜줄 뿐만 아니라 지방재정에 있어서도 세수의 유지와 원활한 중앙으로의 상납을 가져오므로 유리한 일이었다. 이 외에도 다산은 과징된 방납가를 이용한 다른 세액의 충당뿐만 아니라 방납을 근본적으로 해결 방법 역시 제시하였다. 궁방전은 아전들이 횡령하기 쉬운 대상이니만큼 그 설치 여부를 정확하게 문서화하여 지방관 혹은 아전이 임의로 징세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