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대한민국에서 '빨간바지' 아줌마로 대표되는 '복부인'들은 얼굴에 살집이 많고 배가 불룩 튀어나오고 오른 손에는 악어가죽 백을 들고 다니는 열성 아줌마들로 한 때 대한민국의 땅을 헤짚고 다녔습니다. 이 아줌마들의 원조가 누구냐하면..
소년시절, 많은 사람이 명작전집을 통해 아프리카 오지에서 리빙스턴과 스탠리 두 사나이의 감격적인 해후를 읽고 감동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복돋워 준 두 사람은 아프리카 침략의 선봉장인 셈이었습니다. 리빙스턴은 결과적으로, 스탠리는 의도적으로 말입니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덥고 습도가 높아 <유럽인의 묘지>라 하여 19세기초까지만 해도 해안 가까이에만 백인의 발길이 닿았을 뿐 대륙의 내지(內地)는 순결한 <처녀지>로 신비에 싸여 있었습니다.
스코트랜드 사람인 리빙스턴이 첫 대륙탐험에 나선 것이 1841년, 그는 세 번째 탐험에 나선 1866년 이후로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1869년, 미국 헤럴드신문사 기자가 센세이셔널한 특종거리를 위해 아프리카로 리빙스턴을 찾아 나서는데 사실 그도 리빙스턴이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다만 리빙스턴의 뒤를 밟으며 아프리카 여행기나 연재할 상업적인 요량으로 길을 떠났다가 정말 리빙스턴을 극적으로 해후하는 <특종>을 낚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생활에 귀의한 리빙스턴은 끝내 유럽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사랑하는>원주민 속에 다시 파묻혔지만 그가 스탠리에게 건네준 한 장의 지도야말로 뒷날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안내도가 될 줄은 리빙스턴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이 지도의 가치를 대번에 간파한 스탠리는 이 지도로 <한탕벌이>를 노려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개발을 외쳤는데 여기에 가장 먼저 응한 이가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 왕입니다. 이들 두 사람이 합자하여 만든것이 <콩고회사>라는 개인 회사인데 이것이 아프리카 진출의 시초였습니다.
스탠리는 전 콩고 지방을 돌면서 원주민 추장들에게 구슬, 옷감 등을 선사하고 종이 위에 그 종족의 표지를 그리거나 찍도록 하였고, 그 종이쪽은 훗날 전면 위임장으로 돌변하여 벨기에는 본국의 수백 배에 이르는 영토를 아프리카에서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70년대 성남단지를 개발할 당시 철거민들에게 분양한 <딱지>를 헐값에 사들여 떼돈을 번 복부인들의 수법을 스탠리는 이미 터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돈맛>을 제대로 아는 미국인다운 스탠리의 행각이었습니다. 한국 복부인의 원조는 대동강 물을 팔아 착복한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위임장으로 둔갑시킨 홍길동도 울고갈 <딱지대왕> 변신술의 대가 스탠리였습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