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리학의 하학공부에 대한 다산의 비판 혹은 오해
다산이 유배지에서 그의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다 보면, 그의 가정 교육도 여느 평범한 유자의 그것과 그다지 커다란 차이가 없음을 볼 수 있다. 유가의 자손답게 일상의 삶을 충실하게 살 것을 강조한다. 특히 효․제․자에 힘쓸 것을 강조하고, 소학공부를 부지런히 할 것을 당부한다. 퇴계나 율곡이 그들 자손들에게 당부하는 가르침과 사실상 커다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성리학의 전 체계를 뒤흔들어 놓던 다산도 거가(居家)의 부분에서는 오히려 이들 성리학자들의 글과 행동을 본 받을 것을 곡진하게 당부하고 있다. 그는 주자의 거가사본(居家四本)을 집안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을 것을 부탁하고,자제들에게 정자나 주자의 책, 성리대전이나 퇴계언행록, 율곡집에서 좋은 구절을 뽑아 3. 4권의 책을 만들어 제가(齊家)의 기본을 삼을 것을 부탁하고 있다.
관동기에 행해지는 이러한 소학공부는 유학에서는 대체로 하학(下學)에 해당한다. 이렇게 하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가르침은 비록 성리학자들의 글이라도 선현들의 것이라면 전혀 구애할 것이 없다는 것이 다산의 태도이다. 다산도 소학의 가르침을 몹시 중시한다. 대학을 그토록 중시한 다산도 '소학은 대학의 뿌리요 바탕'이다(1)라고 하여 소학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당연히 하나의 의문을 갖게된다. 과연 성리학에서의 하학의 세계와 다산이 바라보는 하학의 세계는 동질적인가 아니면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애초에 그 차이가 없는 것인가? 도의 세계가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도의 세계로 진입하는 하학의 영역에 대해서도 무언가 다른 해석과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다산도 공부론도 역시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라는 유가 일반의 공부 방법에 찬동하고 있다. 다만 그는 하학은 도문학의 영역으로 보고, 상달은 존덕성의 영역으로 두고 있다. 그는 중용의 존덕성과 도문학에 대한 논의에서 양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자의 도는 下學而上達에 있다. 고로 중용에서 비록 知天을 하는 것(존덕성)을 가장 으뜸가는 공부로 삼았으나, 하학의 방도는 반드시 도문학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도문학의 방법은 정미한 것을 극치로 삼는 것이다.(2)
앞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산은 하학을 도문학의 영역으로, 상달을 존덕성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다산의 구분법은 마치 견문지지(見聞之知)와 덕성지지(德性之知)를 구분하고자 한 송대 장횡거의 견해와 일견 유사하다. 그는 견문지지를 '물(物)과 만나서 이루어지는 지'라고 하여 행위를 통한 후득적인 지로 파악하고, 덕성지지란 '견문에 의해 싹트지 않는 천덕양지(天德良知)'로서 비경험적이며 초월적인 지로 파악하고 있다.(3) 물론 송유들은 덕성지지와 견문지지를 체용의 관계로 파악하여, 선천적인 본체의 지를 우등한 것으로 후득적인 견문지지를 열등한 것을 치부하는 것 등에서는 다산의 생각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다. 또한 여기에서 다산이 말하는 도문학의 의미는 성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격물궁리의 공부법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상론할 것이나 중요한 것은, 다산이 규정하는 하학의 범주이다.
다산에 있어서의 하학의 범위는 객관적인 경험과 양탁(量度)(4)이 가능한 일용행사의 세계에 한정된다. 다산은 하학의 세계를 견문지의 영역으로 한정하고, 본체론적인 심성론과 분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리학에서는 하학 속에서 부단히 견문지지와 덕성지지의 결합을 꿈꾸고 있다. 일상생활 어디에나 천리가 깃들여 있어, 그것을 깊이 체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주자의 언명에 따르자면,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저 혼연한 본체는 마치 냇물이 쉬지 않고 흐르며, 하늘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것'(5)처럼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도도히 흐르는 그 변하지 않는 덕의 실체, 그것을 찾는 노력이 성리학의 공부론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특히 주자의 저 유명한 중화신설(中和新說)에서는 왜 이 일상적인 하학의 세계가 움직임 없고 고요한 미발의 세계와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을 공부론을 통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요컨대 주자는 미발의 세계가 허무적멸의 불가적 세계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학의 영역과 결합하여야 함을 다음과 같이 밝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제 성리학에서 보여 주는 하학의 세계를 따라가 봄으로써 다산의 하학 공부가 지닌 사상적 의미를 반조해 보고자 한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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