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주리(主理)의 주자학2
퇴계는 다산이 지적한 바 있듯이,
1) 주자학의 연속적 구상의 틀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 그는 '오직 심성(人心) 상(上)'에서만 전론(專論)했던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이(理)를 우주적 패턴 하에서 인식하기보다 <인간의 도덕적 상황>하에서 갖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주자학을 벗어나 양명학적 요소를 결합했다고 뚜 웨이밍(杜維明)과 웨이신 푸(傅偉勛)는 지적했다. (杜維明, <퇴계학보> 20집; 傅偉勛, 「儒家心性論現代化課題」, <從西方哲學到禪佛敎> ; 한형조, <주희에서 정약용으로>, 제4장 2절)
2)의 경우 또한 퇴계의 이기(理氣)이원론적 구도와 닮았다. 다산은 인간의 경향성을 육신(形軀)과 정신(靈明)으로 갈라 그 둘의 격전장을 실존 상황으로 설정했다. 이는 퇴계가 주자학적 구도를 변용하면서 대립시킨 이(理)와 기(氣),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은 다산의 이분법적 설정과 실질적으로는 겹쳐 있다. 다산의 영육(靈肉) 이원론은 서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퇴계학파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다산이 처음 정조의 사단칠정의 물음에 율곡의 설로 응대하자, 초기 순교자였던 이벽(李檗)이 '인간은 정신(性靈)과 육신(形軀)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라며 퇴계의 설을 지지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벽은 다산이 주자학을 전면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이론적 무기를 제공했던 사람이다. 즉, 성정(性情)의 체용론적 구도를 받쳐주던 사단(四德)과 사단(四端)을 거꾸로 읽는 방식을 경학적 기반에서 일러주었던 사람도 그였다.)
3) 퇴계는 그 선명한 이분법에서, 사단(四端)과 도심(道心)이 육신의 소종래(所從來)인 기(氣)와는 달리 이(理)의 초월적 근원으로부터 온다고 말했다. 퇴계는 내적 경건, 즉 경(敬)을 통해 초월적 존재인 이(理)와 대면하며, 그와 합일한다고 했다. 퇴계는 이도(理到)와 대월상제(對越上帝) 사이에 큰 간격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속의 육신의 제 요소를 극복하고 자기 속의 초월자를 대면하기 위해 깊이 내면의 닻을 내렸다. 이 같은 삶의 자세는 가위 종교적인 것으로, 서학을 위시한 다른 종교적 전통과 공유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퇴계는 주자학의 형이상학을 신학적으로 이동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이는 영육을 이원화하고, 원시 공맹의 이름으로 상제의 신학을 선명히 주장한 다산의 사유와 궤를 같이 한다.
4) 인간의 도덕적 존엄에 대해 주리(主理)와 주기(主氣)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이 문제는 퇴계와 율곡 사이에서는 뚜렷한 논점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가려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잠복해 있었다. 인물성동이론에서 이 문제는 선명히 드러난다. 남당의 주기는 기(氣)의 차별에 입각해 만물의 차이를 강조하고 이것은 곧 차별과 위계로 이어졌다. 이 차별과 위계는 우주적 생명과 인간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바로 인간 사이에서도 이미 금 그어진 것이다. 인간은 신체적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성에서도 우열을 안고 태어난다. 인간의 존엄은 여기서 상당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같은 선천적 불평등은 후천적 노력을 통해 교정되고 선천적 동일성을 회복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임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과 다른 생명의 본성이 다르다는 남당의 주기적 견해는 과학적 객관성을 결과하지 않고, 대내적 신분 관계를 정당화하고, 오랑캐인 청에 대한 대외적 불관용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에 비해 외암의 주리는 기(氣)의 차별성이 아닌 이(理)의 동일성 위에 정초되어 있다. 인간의 마음은 이(理)에 기원한 천군(天君)으로서 신체의 기질(氣質)에 의해 제약되거나 침범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어 각자에게 주체성을 부여한다. 마음은 절대적이고 독립적인 위상과 권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차별 없이 존엄하다. 그것은 인간과 사물의 차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어떤 차이도 무색하게 만든다. '인간과 다른 생명의 본성이 같다'는 외암의 주리적 견해는 과학적 객관성을 놓쳤을 지는 모르나 신분적 제약을 풀어 주고, 오랑캐인 청과의 대외적 관용 위에서 문화적 교섭과 회통을 진작시키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여기에서 북학이 자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여성 유학자들 또한 이 바탕 위에서 주자학적 교양을 익히고, 주자학적 공부를 발진시킬 수 있었다. 녹문의 누이인 임윤지당과 또 다른 여성 유학자 강정일당은 '하늘이 내린 성(性)에 어찌 남녀의 차별이 있으랴'라고 말하면서 성인을 지향해 노력해 갔던 것이다. 임윤지당이 낙론의 주리를 일츨 발전시킨 녹문의 누이인 것 또한 내게는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녹문의 사상은 주기적 외양을 띠고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주리(主理)의 극단화로 보아야 한다.)
다산은 이기론(理氣論)이 숙명적 비관론을 유포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인간의 선악이 기질(氣質)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엄밀한 의미에서 행위의 주체는 없는 것이며 그에게서 도덕적 책임도 물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것을 천명했다. 인간은 생물학적 필연성까지 거부할 수 있는 부정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본성이 기질에 의해 제약되고 규정된다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의 논리를 거부했다. 이것은 다산의 독창이지만, 또 한편 기질의 결정력을 약화시키면서 이(理)의 실질적 권능을 부각시킨 주자학의 주리적 계열에서, 또 주자학을 비판하고 심(心)의 주체성을 강조한 양명학에서 일찍이 내세운 바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점에서 다산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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