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축(癸丑)년(1913) 9월 19일에 후일 현무경파-순천도를 개창하고 김 일부 성사의 정역을 용담팔괘로 완성시킨 장 기준이 차 경석(車京石)을 찾아옵니다.
1912(壬子)년에 차 경석은 고수부님이 지니고 있던 약장 열쇠를 양도받아 비밀히 열어보려 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법궤에 일자(壹字)로 봉한 함지를 떼고 열쇠로 열려고 조화궤에 대는 순간 청천하늘에 뇌성번개가 대작하여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놀란 뒤 조화궤안에 보물조화가 들어 있음을 짐작하고 때가 되어야 법궤를 열 것으로 알게 됩니다.
그 후 장 사수(기준)가 고수부님을 찾아뵙고 차 경석 성도와의 우여곡절 언쟁 끝에 고부인의 명으로 열쇠를 넘겨받은 장 기준은 고부인 차 경석 장 기준 3 경진생(三庚辰生:일명 3룡)이 합일 되는 도수로 조화궤가 열립니다.
개탁(開坼:개봉)된 궤 속의 내용물을 인수하여 확인하니 창호지(窓戶紙)로 쌓여진 책보자기가 나왔는데 한 겹을 펴보니 또 백지로 쌓여져 있는 끝에 흰 병이 있었고 병마개를 펴보니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이라는 글이 쓰여 져 있었고
병 속에는 백지로 말려진 심지 세 개가 들어 있기에 병을 쏟아 보니 심지 세 개가 바닥에 떨어져 각자 하나씩 주워서 펴보니 고수부님이 짚은 심지에는 安乃成이라 쓰여진 밑에 律呂度數라 쓰여져 있었고,
차 경석이 짚은 심지에는 車京石이라 쓰여 진 밑에 布政度數라 적혀 있었고, 장 기준이 짚은 심지에는 張基準이라 쓰여진 밑에 大學度數라 쓰여져 있었습니다.
태모 고수부님의 심지에 安乃成 律呂度數라는 마지막 유훈 글이 씌어 있음은 대단히 중요한 공사입니다. 율려도수는 태을주 사명이며 현무경 전수 후 3년 태을주 수련도수를 명하신 것은 바로 율려도수를 받드는 것이었으며 상제님 진리포교는 바로 태을주 전수이기 때문입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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