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께서는 정읍 대흥리 안 내성(安乃成) 성도 집에서 기유년(1909) 원단 현무경(玄武經) 공사를 집행하시고 이튿날 대흥리 지근거리에 있는 차 경석 집으로 가시어 병세문을 지어 맡기시는 공사를 보십니다. 뒤에 차 경석 성도는 상제님께서 하루 전에 이웃에 사는 안 내성(安乃成) 성도 집에서 현무경(玄武經)을 집필해 맡기신 공사내용을 전해 듣고 안 내성 성도로부터 현무경(玄武經)을 빌려갑니다. 그런데 안 내성(安乃成) 성도의 3년간 태을주 수련의 공백기와 함께 차 경석 성도로부터 현무경(玄武經)을 다시 돌려받았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참고하면 태모님에게 바친 이외에 차 경석 성도에게 현무경(玄武經) 원본을 빌려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불가능함은 물론이거니와 확실치도 않습니다.
결국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면 안 내성(安乃成) 성도가 상제님 명으로 3년 수련에 들어가기 전 태모님에게 바친 현무경(玄武經)은 바로 차 경석 성도를 통해 태모님에게 바쳐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후일 장 기준이 찾아와 이러한 바탕에서 태모님에게 바친 현무경(玄武經)은 기유년(1909) 상제님께서 다음과 같은 태모님의 천지대업 불변 다짐 공사에도 쓰신 것으로 나옵니다.
<선정원경(仙政圓經)>*증산(甑山)께옵서 공사(公事)를 행(行) 하시난대, 일반신도(一般信徒)를 열좌(列坐)케 하시고 대학(大學) 일권(一券)과 현무경(玄武經) 일권(一券)으로 자장(自場) 중에서 책(冊) 이권(二券)을 상호교차(相互交次) 하시며, 고씨(高氏)보고 이 책(이冊)을 밟으며 방중(房中)까지 들어오게 한 후에는, 고씨(高氏)를 누우라 하여 기복상(其腹上)에 거좌(踞坐)하야 대도(大刀)를 고씨(高氏) 항부(項部)에 대(對)하며 천지대업(天地大業)에 중도불변(中途不變) 하겠냐고 다짐을 받으시니,
<선정원경(仙政圓經)>*고씨(高氏)께서 변리(變理)가 없겠노라 하니 그러면 그렇지 희열(喜悅)하시며 증산(甑山)께서 누우사, 내 복상(腹上)에 앉아서 그와 같이 다짐을 받으라 하신지라. 고씨(高氏)께서 하는 수 없이 그와 같이 하며 변(變)할 리(理)가 있소있가 하시며 의감(疑感)치 말으소소 하시며, 부서(符書)를 서취(書取)하야 소화(燒火) 하시며 천지(天地)에 고축(告祝) 하시니라.
후일 차 경석 성도는 현무경(玄武經) 공사에 대해 이 상호에게 기유년(1909) 원단(元旦:정월 1일) 상제님이 안 내성 성도의 집에서 <현무경(玄武經)>을 집필해 맡긴 것으로 전하지 않아 이 상호는 자신의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1926>에 “기유(1909) 정월 일일 사시 천사께서 현무경을 종필(집필을 마치심)하사 차 경석에게 맡기시다. 原文: 己酉正月一日巳時 天師께서玄武經을終筆하사 車京石의게맛기시다”라고 기록했다가 후에 내막을 알고 <대순전경 초판:1928>에서 안 내성 성도 집으로 바로잡아 기록합니다.
<보천교 교전敎典>에는 상제님이 기유년(1909) 원단(元旦) 차 경석 대흥리 집에서 현무경(玄武經)을 집필해 공사를 집행한 것으로 전합니다. 이 상호는 보천교 시절 차 경석 성도로부터 사료를 채취하여 기록한 <증산천사공사기>에 차 경석 성도 집으로 기록했다가 김 형렬 미륵불교에 입교해 김 형렬 성도로부터 <현무경> 입수에 대한 전말을 자세히 듣고 <대순전경 초판>에 안 내성 성도 집으로 바로잡아 출간하게 됩니다. 김 형렬은 1913년 봄 선도교(태을교) 시절 대흥리 태모 고수부님으로부터 <현무경>을 필사해 가면서 공사 내막을 자세히 들은 사람입니다.
차 경석 성도 측의 <보천교 교전>의 기록은 이종물 사명자로서 이해 당사자로 당연히 종통 주장을 위한 주관적 서술의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마땅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당시 안 내성 성도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었던 이 상호의 <대순전경 초판> 초기 기록과 함께 역시 안 내성 성도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었던 김 형렬 수석성도의 <동곡비서>의 신뢰성이 단연 가장 높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대순전경 초판>, <동곡비서>, <증산도 도전>은 안 내성 성도 집에서의 공사처결을 전하고 있으며, <보천교 교전>, <대개벽경>, <용화전경>은 초기 기록과는 다르게 차 경석 성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