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경(玄武經) 또한 도안(都安) 세 살림을 맡은 안 내성(安乃成) 성도에게 기유년(己酉年) 정월(正月) 원단(元旦) 천지인신(天地人神)의 비밀을 모두 함축해 신권(神權)을 부리는 조화부(造化符)로 봉인하여 내리신 신부(神符)입니다. 대흥리 본소 옆에 살던 안 내성(安乃成) 성도는 상제님으로부터 받으신 현무경(玄武經)을 태모님에게 바칩니다. 상제님은 사명기(司命旗)와 현무경(玄武經)을 당시 수석성도인 태운 김 형렬(金亨烈) 성도나 차 경석(車京石) 성도 혹은 문 공신(文公信) 성도나 김 경학(金京學) 성도에게 안 내리시고 경만장 안 내성(安乃成) 성도에게 내렸는데, 상제님 천지공사의 종통 핵심은 여기에 모든 천기가 담겨있다고 보면 됩니다.
종통 사명에서 중요한 것은 사명기(안내성 성도에게 내리신 사명기 公事圖는 현무경 亥符圖(心靈神臺))와 현무경(玄武經)을 내리신 천지인신(天地人神)의 신권공사가 일등방문 경만장 안 내성(安乃成) 성도에게 처결해 집행된 사실이지 후일 누구에게 전달되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종통문제의 핵심을 한참 빗겨난 사실왜곡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안 내성(安乃成) 성도가 상제님 친필 현무경(玄武經)을 천지인신(天地人神) 공사로 집행된 후 하사받아 태모 고수부님에게 바쳤다는 사실이며 곧 이어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태을주 3년 수련공부로 들어가 상제님 어천 사실도 모른 채 전주 수통목(水桶木)으로 옮겨 어천하신 이후 다시 나타나신 상제님으로부터 봉두난발(蓬頭亂髮)공사와 상두쟁이 상투 매는 공사를 친히 받고 태을주 3년 수련공부를 마쳤다는 사실입니다(신해년 1911). 현무경(玄武經)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상제님 기유년(1909) 6월 24일 어천이후 계축년(道紀 43,1913) 봄 김 형렬 성도가 필사해 간 이후 동 계축(癸丑)년(1913) 9월 19일 현무경파 순천도를 창교한 장 기준(사수)이 찾아와 태모 고수부님과 차 경석 성도가 함께 약장궤를 처음 개봉해 장기준이 필사해 가면서입니다.
<대순전경 초판>*기유 년(1909) 정월 1일에 현무경이 탈고되거늘 안 내성의 집에서 백 병(흰 병)에 물을 담은 후에 양지에 글을 써서 권축(두루마리)을 지어 병입구를 막아 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 위에 현무경 상하 편을 놓아두었더니 선생이 화천하신 후에 경석이 내성에게 와서 현무경을 빌려 가면서 병구(병입구)막은 축지(두루마리종이)를 빼어서 펴보니 "길화개길실(吉花開吉實), 흉화개흉실(凶花開凶實)"이라는 글이 씌어 있더라.
原文: 己酉 正月 一日에 玄武經이 脫稿되거늘 安 乃成의 집에서 白甁에 물을 담은 후에 洋紙에 글을 써서 卷軸을 지어 甁口를 막어 놋코 그 압헤 白紙를 (깔)고 白紙 우에 玄武經 上下篇을 노아두엇더니 先生이 化天하신 後에 京石이 乃成에게 와서 玄武經을 빌어 가면서 甁口막은 軸紙를 (빼)여서 펴여보니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이라는 글이 씨여 잇더라.
<대순전경 초판>*병세문은 주지(두루마리 종이)에 써서 물 담은 백병구(흰 병 입구)를 막아서 차 경석의 집에 두신 것인데 화천(어천)하신 뒤에 발견되었으나 그 후로 원지(원래 종이)는 없어지고 다만 구구상전(입에서 입으로 서로 전함)된 것이니 차서(차례 순서)가 많이 위착(어긋남)된 듯하며 그 이외 산문(흩어진 문장)도 분명한 기록이 없으므로 듣는 대로 기록하니 오락(그릇누락)이 없지 못할 줄로 사(생각)하노라.
原文: 病勢文은 周紙에 써서 물담은 白甁口를 막어서 車 京石의 집에 두신 것인대 化天하신 뒤에 發見되엿스나 그 後로 原紙는 업서지고 다만 口口相傳 된 것이니 次序가 만히 違錯된 듯하며 그 以外 散文도 分明한 記錄이 업슴으로 듯는 대로 記錄하니 誤落이 업지 못할 줄로 思하노라.
<동곡비서>*기유년(己酉 1909年) 정월 1일에 현무경(玄武經)이 세상에 출현하거늘, 안내성의 집에서 흰병에 물을 담은 후에 양지에 글을 써서 권축(卷軸)을 지어 병입을 막아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 위에 현무경 상하편을 놓아 두었더니, 선생이 선화하신 후에 차경석이 내성의 집에 와서 현무경을 빌려가면서 병입을 막은 종이를 빼어서 살펴보니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 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더라.
<증산도 道典>*내성이 태을주 공부에 들어가기 전 고수부님을 찾아 뵙고 현무경을 올려 드렸으나 수행을 하면서 ‘손가락 깝작거리는 놈은 다 죽으리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 떠올라 현무경을 찾아갈 생각을 아예 버리고 공부에 일심하니라. 내성이 수통목에서 일심으로 태을주를 읽어 율려 도수를 실현하고 대흥리에 가서 고수부님께 인사를 올린 뒤에 그 길로 각지를 돌며 태을주를 읽어 병자를 잘 고치니 포교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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