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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30 22:01
공부론을 통해서 본 다산 '기호(嗜好)'론의 의미 -욕망의 문제와 관련하여-
 글쓴이 : 선유도
 

공부론을 통해서 본 다산 '기호(嗜好)'론의 의미 -욕망의 문제와 관련하여-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다산의 기호의 개념은 도심을 지향하는 경향성과 형기가 지닌 피할 수 없는 욕망을 향한 경향성으로 나뉘어져 있다. 다산은 자주 인간을 신형묘합(神形妙合)의 존재로 설명한다. 인간의 욕신과 거기에서 연유하는 욕망에 대해 소극적인 평가를 하였던 전대 성리학자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본디 몸과 마음은 미묘하게 하나로 합쳐져 있으니 둘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특히 신()자를 써서 몸과 마음이 하나임을 확고히 못박은 쇠못을 삼은 것인데 이제 이 못을 빼버리면 대학에서 수신(修身)은 없어질 것이리라.'라고 하여 공부에 있어서 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다산이 몸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이러한 주장은 조선조의 성리론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진전된 논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통합적인 이해를 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논리적으로 과연 얼마나 만족스럽게 관철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좀 더 구명되어져야 할 과제이다. ()을 대변하는 도심과, 몸을 대신하는 인욕간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성리철학의 가장 오래된 논쟁이었고, 유학사 속에서는 다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인욕을 긍정하는 흐름들을 수 없이 찾아 볼 수 있다.

예로 잘 알려진 주자와 호굉과의 천리와 인욕에 관한 치열한 논쟁은 송대의 공부론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논쟁의 하나였다. 호굉은 천리와 인욕을 '동체이용 동행이체(同體異用 同行異體)'라고 하면서 성 자체에는 선악이 없다고 주장한 반면, 주자는 천리와 인욕이 동일한 체라고 주장하는 호굉의 입장에 반대해서, 천리를 가리는 인욕을 제거하는 공부를 강조한다물론 공부론의 주도권은 존천리(尊天理) 알인욕(遏人欲)을 강조하는 주자계열로 넘어 갔으나, 인간의 정감과 신체를 긍정하고 욕망의 구성체계를 승인하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왕용계나, 왕심재 혹은 나근계와 이지 등에 이르기까지 유학사의 흐름에서는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다산의 성 기호론이 욕망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설명체계가 매우 독특하다는 점에 있다. 욕망과 천리와의 관계설정이 성리학에서처럼 정치한 구조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일견 매우 절충적이고 또한 선택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리학의 공부론과 비교하기 위하여 일단 다산의 욕망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의 영체(靈體) 안에는 본디 원하고자 하는 욕망의 일단이 있다. 만약 이런 욕망의 마음이 없다면, 천하만사의 일을 도대체 해 나갈 수가 없다. 오로지 이욕에 밝은 자의 욕망은 이욕에 쫓아서 꿰뚫어 나아가며, 의리에 밝은 자의 욕망은 도의에 따라서 꿰뚫어 나간다. 욕망의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이 두 욕망은 최선을 다하되 후회하지 않는다. 이른바 탐욕의 인간은 재물을 위하여 몸을 바치고, 열사는 명예를 위하여 몸을 바친다. 내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그의 마음이 담박하여 욕망이 없으므로 선하지도 못하고 악하지도 못하여 학문도 이루지 못하고 산업도 하지 못한 채 곧 바로 천지간에 버린 물건이 되었다. 인간이 어찌 욕망이 없을 수 있는가?

 

이 글에서는 다산은 인간이 가진 욕망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욕망없는 인간은 아무런 '행사(行事)'도 이룰 수 없는 죽은 인간에 불과하다. '마음이 담박하여 욕망이 없는 인간은 천하에 버린 인간이다.' 라는 언명 속에는 담연한 본체를 회복하고자 하는 성리학의 공부론에 대한 지독한 독설이 스며 있다. 그러나 그의 욕망론은 결코 무한질주를 하지 않는다. 그의 욕망론은 결코 앞서의 현성론자 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가 몸담았던 봉건적 문화체계 전반을 야유하거나, 욕망의 철저한 자유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도심이라는 대체의 욕망을 따르도록 권고한다. 즉 그는, '대체는 형체가 없는 영명한 것(無形之靈明)이며, 소체는 형체가 있는 육신(有形之軀穀)이다. 대체를 따르는 것은 성을 따르는 것(率性)이고, 소체를 따르는 것은 욕망을 따르는 것(循欲)이다. 도심은 향상 대체를 기르고자 하지만, 인심은 항상 소체를 기르고자 한다. 천명을 즐거워하고 알면 도심을 배양하게 되고, 극기(克己)하고 복례(復禮)하면 인심을 제재할 수 있으니 여기서 선과 악이 판가름난다.' 라고 선악의 분기점은 욕망을 조절하는 것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도심과 욕망 사이를 왕복하는 다산의 인성론에서 욕망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논리적 메커니즘, 즉 그의 공부론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성리학이 경론(敬論)을 대신할 충분한 설명체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산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설명은 개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마음을 빠뜨리는 것은 형기(形氣)의 사욕 또는 습속의 오염, 외물의 유혹에 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심이 마음을 빠뜨려 대악을 저지르는 데 이르게 된다.'라거나, 혹은  '행사를 근거로 말하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으며 선을 하기란 하늘에 오르는 것처럼 어렵고 악을 하기란 언덕이 무너지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이는 형기의 누()가 많기 때문이다.' 라고 육신의 욕망을 검속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선악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본인 자신에게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미묘한 기미에 수시로 변화되는 욕망을 과연 어떻게 조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부족하다. 이 점은 앞으로 다산의 상제(上帝) 개념이나 신독(愼獨) 개념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함께 좀 더 검토되어져야 할 내용이다. 즉 다산의 공부론이 과연 모종의 신학적 요소 혹은 종교적 요소를 함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좀 더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산의 글에서는 성리학의 공부론에서 개진하고 있는 수양법의 많은 부분이 도학적 정적주의로 치부되어 사실상 홀시되고 있다. 성리학의 공부론에서는 존양 공부를 실현할 때, 철저한 무욕성(無欲性)을 지향하는가 아니면 과욕(寡欲)을 지향하는가의 문제는 유학사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던 부분이다주렴계가, '수양을 하는데는 과욕(寡欲)에서는 멈추어서는 안되고, 대개 무욕에 이르러야 한다. 욕심이 없으면 성립명통(誠立明通)하게 된다.' 라고 주장한 이후 이 부분은 후일 많은 이견들을 불러 왔다. 주자도 이 부분에 대한 주석을 통해 이 구절의 주장처는 과욕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진식(陳埴)이 우려한 바와 같이 이 무욕은 자칫 불교의 적멸과 같은 의미로 전화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주자는 극기는 무욕이 아니라 과욕의 상태를 의미함을 밝히고 있다.

무욕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은 자칫 불가의 논리와 착종될 우려가 있다. 주자도 이 점을 우려하였다. 그는 무욕에 이르는 것은 사실 성인이 아니면 이르지 못하는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到無欲 非聖人不能也). 무욕이란 현실적으론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공부의 최대치에 지나지 않는다. ()의 공부는 필경 과욕을 통해서야 도달할 수 있기에(無底工夫 則由於能寡欲) 짐짓 설정한 공부의 표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갈 옷을 입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문제는 여기에 개인의 사욕이 개재되어 있는가의 여부이다.  이에, 이천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욕망을 잉태하고 있을 수밖에 없으며, 단지 '욕망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 것(所欲不必沈溺)'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절(中節), 부중절(不中節)의 문제고, 이는 마음이 항상 경의 상태를 유지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성리학의 설명체계와 비교할 때, 다산의 성 기호론에 대한 설명은 욕망에 대한 그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해석이 더욱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성에 대한 해석을 본체론적 입장에서 한 것이 아니라, 조선후기라는 특정한 시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다분히 정치사회적인 맥락속에서 새롭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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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15-05-30 22:06
 
다산과 주자의 주장 중 욕망에 관한 주장에 관하여
주자는 이상주의에 다산은 현실주의에 가까이 섯을까?
사오리 15-05-30 23:11
 
성미가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사람은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이룰 수 없으
나, 마음이 온화하고 기품이 평온한 사람은 온갖 행복이 절로 모인다.
가우스 15-05-30 23:52
 
욕성/무욕성
혁명밀알 15-05-31 01:28
 
다산의 성 기호론에 대한 설명은 욕망에 대한 그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해석이 더욱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혁명밀알 15-05-31 01:29
 
즉 그는 성에 대한 해석을 본체론적 입장에서 한 것이 아니라, 조선후기라는 특정한 시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다분히 정치사회적인 맥락속에서 새롭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겨울 15-05-31 11:16
 
'본디 몸과 마음은 미묘하게 하나로 합쳐져 있으니 둘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특히 신(身)자를 써서 몸과 마음이 하나임을 확고히 못박은 쇠못을 삼은 것인데 이제 이 못을 빼버리면 대학에서 수신(修身)은 없어질 것이리라.'라고 하여 공부에 있어서 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스칼라 15-05-31 12:45
 
욕망없는 인간은 아무런 '행사(行事)'도 이룰 수 없는 죽은 인간에 불과하다.
목화씨 15-05-31 13:57
 
진식(陳埴)이 우려한 바와 같이 이 무욕은 자칫 불교의 적멸과 같은 의미로 전화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주자는 극기는 무욕이 아니라 과욕의 상태를 의미함을 밝히고 있다.
그때그모습 15-05-31 19:13
 
우리의 영체(靈體) 안에는 본디 원하고자 하는 욕망의 일단이 있다.
 만약 이런 욕망의 마음이 없다면, 천하만사의 일을 도대체 해 나갈 수가 없다.
 오로지 이욕에 밝은 자의 욕망은 이욕에 쫓아서 꿰뚫어 나아가며, 의리에 밝은 자의
욕망은 도의에 따라서 꿰뚫어 나간다
멜론 15-05-31 21:54
 
다산의 공부론이 과연 모종의 신학적 요소 혹은 종교적 요소를 함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좀 더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산의 글에서는 성리학의 공부론에서 개진하고 있는 수양법의 많은 부분이 도학적 정적주의로 치부되어 사실상 홀시되고 있다.
산백초 15-06-01 20:53
 
무욕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은 자칫 불가의 논리와 착종될 우려가 있다. 주자도 이 점을 우려하였다. 그는 무욕에 이르는 것은 사실 성인이 아니면 이르지 못하는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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