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정약용의 한(漢)-송(宋) 수사학적 시야(視野)
다산경학은 우선 <수사학(洙泗學)>이라는 이름아래 경전의 본래 정신을 재발견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공자와 맹자의 경전정신에 벗어난 해석을 '수사(洙泗)의 구(舊)가 아니다(非洙泗之舊<中庸自箴>)'라 하여 거부하여 비판적 지적을 하기도 하고, 수사(洙泗)의 참된 근원에 접한 사람(接洙泗之眞源者<十三經策>)을 높여서 일컫기도 한다. 이처럼 그는 <수사학(洙泗學)>을 학문의 기준으로 표방함으로써, 당시의 정통적 경학으로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던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내지 의리론적 경전해석을 벗어나서 선진(先秦)시대의 경전정신 그 자체에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다산은 주자의 의리론적 경전해석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당시 청조의 경학을 이끌어가던 학풍인 한학 곧 고증학(訓詁學)의 학풍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송학(宋學)-주자학의 경학에서 한학-훈고학의 경학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송학(宋學)과 한학(漢學)의 치우치고 왜곡된 경전해석을 벗어나고자 하였던 것이다. 곧 다산경학에서 <수사학(洙泗學)>이란 바로 송학과 한학을 넘어서 성인(공자)의 경전정신과 다산 자신의 현실에 기반하는 세계관을 일치시켜 확인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산은 경학의 기반 위에 자신의 독자적 세계관을 정립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다산의 수사학(洙泗學)이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 세계관을 창의적으로 발현하는 방법으로서 '복고'를 표방한 것이라 보는 것은 옳다. 그러나 다산이<수사학(洙泗學)>을 일컫는 것은 단지 자신의 창의적 사상을 제시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공(孔)․맹(孟)의 권위를 끌어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다산경학은 그의 학문체계에서 방편적 수단이 아니라 근원적 위치를 지니는 것이다. 곧 다산경학은 다산자신의 세계관이 지닌 새로운 빛으로 공․맹의 진정한 정신을 재발견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수사학(洙泗學)>이요, 다산은 자신의 경학체계를 재구성함으로써 경학의 기반을 사회개혁을 위한 원천으로 확립하고자 한 것이라 하겠다.
다산의 경학적 입장은 송학-주자학이나 한학-훈고학을 배타적 입장에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 입장에서 그 긍정적 의도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송학과 한학을 지양한 자신의 경학세계가 지닌 근원적 진실성을 공자의 정신과 일치되는 것으로 확인함으로써, 이를 일단 수사학(洙泗學)이라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은 <중용강의보> 에서 송대 유학자들의 인성론이 선을 즐거워하고 도를 찾고자 하는(樂善求道) 마음씀에서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주자를 비롯한 송대 유학자들의 경전해석이 불교의 영향을 받아 공자의 본래적 경전정신으로서의 <수사구론(洙泗舊論)>과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명확히 지적한다.
여기서 다산은 주자학의 의리론적 경전해석에 따른 왜곡을 극복하기 위하여 공자의 본래정신으로서 수사학(洙泗學)을 진리의 기준으로서 밝히고 있다. 다산이 도학-주자학의 경전주석체계를 비판하면서 경전 자체에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수사구론(洙泗舊論)을 강조한 것은 창신(創新)을 위한 기반으로서 복고을 추구하는 것이며, 수사구론(洙泗舊論)은 바로 학문적 진실성을 관철하기 위한 비판정신의 기준을 확립하는 방법이다. 곧 도학적 관념체계에 의해 왜곡된 현실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진실의 기준이요 실용의 근거를 수사구론(洙泗舊論)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한편으로 도학의 관념적 해석체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훈고(訓詁)-실증(實證)을 중시하는 청조 고증학 곧 <한학(漢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한학(漢學)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한계를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경학체계를 수사학(洙泗學)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다산은 경전의 해석 방법으로서 성현의 말씀을 전해 듣는 <전문(傳聞)>, 스승의 해석을 계승하는 <사승(師承)> 및 의리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의해(意解)>의 세 가지가 있음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는, <대>』을 경(經) 1장과 전(傳) 10장으로 분석하며 경(經) 1장을 공자의 말씀이요 전(傳) 10장은 증자(曾子)의 뜻이라 단정하는 주자의 해석은 전문(傳聞)이나 사승(師承)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뜻으로 결단하는 <의해(意解)>의 경우로 지적한다. 따라서 주자의 경전주석은 의해(意解)에 치우쳐서 <전문(傳聞)>과 <사승(師承)>을 상당히 벗어난 것으로 본다. <전문(傳聞)>과 <사승(師承)>으로 경전의 전승되어온 인식을 넘어서서 보편적 의리에 따라 판단함으로써 결단을 내린 <의해(意解)>가 중심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산에 의하면 <전문(傳聞)>이나 <사승(師承)>의 경우에는 시대가 멀어질수록 확실성이 떨어지므로, 수(隋)․당(唐)보다 위(魏)․진(晉)이 낫고, 그보다 한대(漢代)가 낫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대한 송대의 주석인 <칠서대전> (七書大全)만 알고, <춘추> (春秋)나 <삼>』(三禮)도 소홀히 하며 한당(漢唐)시대의 주소(注疏)를 모은 <십삼경주>』(十三經注疏)를 무시하는 당시 도학의 경학적 학풍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고증학적 입장을 따라 <경서>를 논의하면서 반드시 먼저 고훈(詁訓)으로 <자의(字義)>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자의(字義)>를 밝히지 못하고 구(句)와 장(章)과 편(篇)의 뜻이 이해될 수 없고, <자의(字義)>도 온전히 통하지도 않은 채 경전의 대의(大義)부터 논의하기 시작하는 것은 미묘한 뜻을 캐들어 갈수록 성인의 뜻은 더욱 은폐되어가서 착오만 깊어지게 할뿐임을 역설한다. 이처럼 그는 경전해석에서 <자의(字義)>의 훈고(訓詁) 및 <전문(傳聞)>과 <사승(師承)> 등 증거를 보다 확고하게 정립할 것을 요구하여,<한학(漢學)>을 존중하는 고증학의 실증정신을 경학의 기본방법으로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경학방법은 <한학(漢學)>을 그대로 준용하려는 입장은 아니다. 마치 그가 의해(意解)에 치우친 <송학(宋學)>을 비판하는 것처럼, 고훈(詁訓)에 사로잡혀 있는 <한학(漢學)>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는 「오학론」(五學論)에서 성리학의 본래 의도를 '도(道)'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니, 이로써 그 실천할 도리를 스스로 힘쓰는 것(所以知道認己, 以自勉其所以踐形之義)이라 인정하면서 당시의 성리학이 개념의 분석과 분파적 분열에 빠져있는 폐단을 비판하였다. 이와 더불어 훈고학(訓詁學; 考證學)에 대해서도 경전의 자의(字義)를 밝히는 것이니, 이로써 도덕과 교화의 의도에 통달하려는 것(所以發明經傳之字義, 以達乎道敎之旨者)이라 제시하면서 훈고학이 자의(字義)를 밝히고 구절(句節)을 바로잡는데 불과하고, 선왕(先王)‧선성(先聖)의 도덕과 교화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 한계를 비판하고 있다. 곧 당시의 고증학(考證學)이 한(漢)‧송(宋)의 절충(折衷)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지는 한학(漢學)을 받들어 글자만 통하게 하고 구절만 떼었을 뿐이요, 그 속에 담긴 성(性)‧명(命)의 이치를 이해하거나 효(孝)‧제(弟)의 가르침이나 예(禮)‧낙(樂)과 형(刑)‧정(政)의 제도를 인식하는데는 어두운 사실을 지적하여, 훈고학-고증학이 근시적 맹목성에 빠져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다산의 입장에서 보면 한학(漢學; 訓誥學)은 '고고(考古)'의 고증을 방법으로 삼았으나 명확한 변론의 분석이 부족하니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學而不思) 폐단이 있으며, 송학(宋學; 性理學)은 '궁리(窮理)'를 위주로 하여 고증(考據)에 소홀함으로써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는'(思而不學) 허물이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의 경학방법은 한학의 훈고적 방법과 송학의 의리적 방법을 포괄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종합‧지양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그는 조선시대 경학사(經學史)에서 독자적 경학체계와 독자적 세계관의 철학적 기반을 확고하게 정립하는 획기적 업적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처럼 경학을 통한 다산의 학문관이 객관적 사실의 분석적 인식으로서 고증적 내지 실증적인 태도를 학문의 기초적 방법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실증의 방법을 천착하는데 매몰되지 않고 여기서 나아가 실용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존재의 실현이나 사회적 질서의 구현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실증의 방법을 통해 추구하는 목적을 상실한 일종의 맹목현상임을 경계한 것이다. 따라서 다산의 수사학적(洙泗學的) 경학의 시야는 자신의 경학체계에서 고증학적 방법을 도입하지만, 청조 고증학(考證學; 漢學)의 학풍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가치질서의 인식을 위한 해명에 관심의 목표를 두고 있다. 나아가 수사학적 경학의 시야에서는 주자의 경학체계를 정통화하여 배타적 폐쇄성을 강화해갔던 도학(道學)의 경학태도와는 정반대로 수사학적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면 양명학의 견해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보여준다. 그만큼 정통성의 권위가 아니라 진실의 개방정신을 수사학의 핵심정신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