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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23 19:01
다산과 서학(西學) 사이
 글쓴이 : 선유도
 

다산과 서학(西學) 사이 

 

서학은 조선에 선교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책과 학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이것은 문화적 충돌을 피하면서 지적 대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좋은 여건이었다. 서학은 특히 퇴계의 후예인 남인 계열의 학통에서 흡수되고 비판되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까지 조선 유학의 근본 논제로서의 주재(主宰)를 살피고, 이를 통해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특징을 개관한 것도 바로 이 접목의 지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주기 위해서였다.

 율곡의 주기(主氣)에 대한 주리적(主理的) 반발에는 몇 가지 계열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둘 있다. 하나는 앞에서 살핀 1) 인물성동이론에서의 낙론(洛論)계열이고, 또 하나는 2) 퇴계의 후예인 성호(星湖)학파이다. 서학은 성호학파의 주리적(主理的) 계열과 접목되었고, 다산의 사고 또한 이 토대 위에서 구축되었다.

나는 지금 유학과 서학(西學), 그리고 주자학과 다산학의 차이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차이는 너무 현격하여 숨길 수 없다. 그렇지만 사상에는 이질성과 더불어 동질성이 존재하며, 이것의 일정한 층위에서 유형을 형성한다. 다산과 서학은 이기(理氣)의 구도에서 볼 때, 세계와 인간에 대한 자연학적이기보다 신학적 관점이 두드러지는 주리적 사고 유형에 속한다. 요컨대 주자학의 주리(主理)와 서학, 그리고 다산은 같은 계열의 사고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리치를 위시해 이벽(李檗) 등의 친서파(親西派)는 기독교의 중심적 교리를 유학의 연장이나 보충, 즉 보유(補儒)의 관점에서 읽었다는 것, 그리고 조선의 서학이 퇴계의 주리 계열의 지식인들에게서 본격 논의되고 흡수되어 최초의 신부를 내게 되었다는 점에 깊이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같은 계열로 묶일 수 있다면 다산이 기독교도냐 혹은 유학자냐 하는 논쟁도 보다 근원적인 지평에서 읽을 때 서로 모순되지 않고 화해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두 전통을 창조적으로 종합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나는 다음에서 이들 삼자 사이의 이동(異同)을 살펴보려 한다. 이 문제를 다룰 때는 섬세하고 공정해야 한다. 퇴계가 주문했듯이 우리는 '같은 가운데 다른 것을 찾고, 분석에 철저하면서 결국 전체를 회통시키는' 입체적 그림을 그려 주어야 한다.

 퇴계는 인간에 대한 우려와 비관 위에 이()와 기()를 확연히 갈라 보려 했다. 육신을 경계하고 덕성을 확충해 나가라는 그의 가르침은 도덕적 엄격주의와 금욕주의로 이끌게 마련이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은 이()의 가치를 퇴계 이상으로 높이면서 식욕과 성욕을 극단적으로 혐오했다. 그는 퇴계가 기()의 작위로 밀쳐 놓았던 칠정(七情)까지 이()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지만, 여기서 오히려 일상적 정서와 욕구는 악덕으로 배제되었다. 그는 이단으로 배척되었던 노장과 불교의 금욕적 수련을 동정적으로 볼 뿐 아니라, 판토하 신부가 쓴 악덕 극복의 지침서인 <칠극(七克)>을 유교의 훈련 매뉴얼보다 더욱 구체적이라고 칭찬했다

성호의 제자인 신후담과 홍유한도 실천적 금욕을 일상에 구현하려 했다. 홍유한은 예수회의 저작에 고무되어 일생을 육신의 고행에 바치겠다고 마음먹을 정도였다. 아내를 가까이 하지 않았고, 늘 거친 음식만 먹었으며, 서학의 축일에 맞추어 조용한 명상의 날을 보냈다. 이 같은 경건주의와 금욕주의는 성호학파 내부의 일반적 경향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1779년 겨울의 천진암(天眞菴) 강학회를 있게 한 기풍이었다. 녹암 권철신의 주도 아래 모인 다산 정약용 등 일군의 학자들은 새벽에는 찬물로 세수하고 <숙야잠(夙夜箴)>을 읽고, 해가 뜨면 <경재잠(敬齋箴)>, 낮에는 <사물잠(四勿箴)>, 그리고 해가 지면 <서명(西銘)>을 읽었다. 이 강학회는 어느 모로 보나 주자학적 지침에 의한 수련회였다. 그럼에도 서학과의 친연성이 모호하게 겹쳐, 아이러니칼하게도 지금 천진암은 카톨릭 교회가 선점하여 성지로 개발하고 있다. 그로부터 5년 뒤 이승훈이 세례를 받게 되면서 서학은 조선에 본격적으로 전파되게 되었다.

 다산은 성호의 문하이면서, 그의 가계가 서학에 깊이 연루되었고, 그 자신 한때 몰입하기도 했다. 그가 서학을 버리고 유학으로 돌아온 것은 제사와 전례의 문화적 관습, 그리고 영혼불멸설 등의 교리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서학의 핵심은 아니다. 다산은 천주 혹은 상제에 대한 관념에서, 그리고 인간의 분열적 실존에 대한 인식에서 서학의 교리를 부정한 적이 없다. 그는 오히려 서학의 그 신학적 관점을 <오래된 유학>, 즉 공자와 맹자, 그리고 자사의 전통에서 재확인하고, 그 둘을 창조적으로 접목했다.

이를 그의 경학(經學), 즉 고전 유교 경전에 대한 그의 재해석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경학은 자신의 주창대로 <수사학(洙泗學)의 복고(復古)>로만 읽을 수 없다. 모든 해석은 역사적이고 상황적이며 맥락적인 바, 누구도 텍스트 자체에 합치할 수 없고 해석자의 주관이 개입한다. 그의 경학은 <그 자신의 독자적 해석>이다. 그는 경전 해석이라는 양식을 빌려 자신의 상황과 문제, 그리고 의견을 피력했을 뿐이다. 그의 경학(經學)을 서학의 위장된 변증이라 말하는 것도 편파적이지만, 또 거꾸로 그것을 공맹 유학의 순전한 복원으로 읽는 것도 순진하다 하겠다. 그의 경학에는 그 자신에 의해 해석되고 창조된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모든 창조는 순종이 아니고 잡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점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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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15-05-23 19:17
 
주자학의 주리(主理)와 서학, 그리고 다산은 같은 계열의 사고 유형으로 볼 수 있을까?
등대 15-05-23 22:41
 
다산은 성호의 문하이면서, 그의 가계가 서학에 깊이 연루
사오리 15-05-23 23:12
 
비 개인 후 산색을 보면 그 경치가 신선하고 아름다우며, 고요한 밤에
종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더욱 낭랑하고 은은하다,
꿈이였어 15-05-24 00:47
 
다산은 천주 혹은 상제에 대한 관념에서, 그리고 인간의 분열적 실존에 대한 인식에서 서학의 교리를 부정한 적이 없다.
그는 오히려 서학의 그 신학적 관점을 <오래된 유학>, 즉 공자와 맹자, 그리고 자사의 전통에서 재확인하고,
그 둘을 창조적으로 접목했다.
혁명밀알 15-05-24 01:16
 
율곡의 주기(主氣)에 대한 주리적(主理的) 반발에는 몇 가지 계열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둘 있다.
하나는 앞에서 살핀 1) 인물성동이론에서의 낙론(洛論)계열이고, 또 하나는 2) 퇴계의 후예인 성호(星湖)학파이다.
서학은 성호학파의 주리적(主理的) 계열과 접목되었고, 다산의 사고 또한 이 토대 위에서 구축되었다.
스칼라 15-05-24 12:42
 
그의 경학(經學)을 서학의 위장된 변증이라 말하는 것도 편파적이지만,
 또 거꾸로 그것을 공맹 유학의 순전한 복원으로 읽는 것도 순진
목화씨 15-05-24 15:57
 
성호의 제자인 신후담과 홍유한도 실천적 금욕을 일상에 구현하려 했다.
홍유한은 예수회의 저작에 고무되어 일생을 육신의 고행에 바치겠다고 마음먹을 정도였다.
명유리 15-05-24 22:07
 
녹암 권철신의 주도 아래 모인 다산 정약용 등 일군의 학자들은 새벽에는 찬물로 세수하고 <숙야잠(夙夜箴)>을 읽고,
해가 뜨면 <경재잠(敬齋箴)>을, 낮에는 <사물잠(四勿箴)>을, 그리고 해가 지면 <서명(西銘)>을 읽었다
산백초 15-05-25 10:05
 
다산은 성호의 문하이면서, 그의 가계가 서학에 깊이 연루되었고, 그 자신 한때 몰입하기도 했다. 그가 서학을 버리고 유학으로 돌아온 것은 제사와 전례의 문화적 관습, 그리고 영혼불멸설 등의 교리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서학의 핵심은 아니다. 다산은 천주 혹은 상제에 대한 관념에서, 그리고 인간의 분열적 실존에 대한 인식에서 서학의 교리를 부정한 적이 없다. 그는 오히려 서학의 그 신학적 관점을 <오래된 유학>, 즉 공자와 맹자, 그리고 자사의 전통에서 재확인하고, 그 둘을 창조적으로 접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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