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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19 15:47
다산정약용 사상과 서구 합리성
 글쓴이 : 선유도
 


다산정약용 사상과 서구 합리성 

 

철학사에서 근대성의 새벽은 인식의 새로운 길에 대한 성찰, 즉 방법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열렸다. 이런 과정은 담론사에서 반복되었으나 근대 초에 우리는 인식론사에 있어 두드러지게 높은 문턱을 발견한다. 근대 인식론은 근대에 새롭게 이루어진 과학적 성과에 대한 메타적 반성으로부터 발아한 것이 아니다. 근대에 새롭게 형성된 인식론적 장 안에서 근대 과학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인식론적 장을 드러내는 것은 인식론에서의 근대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근대 자체의 인식론적 근거를 드러내는 일이다

인식론적 반성이 근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인식론적 반성은 중세의 사유가 함축하고 있던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회의하면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형이상학과의 불가분한 관계를 통해서 가능했다.

물론 근대적 사유의 핵심이 수학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생각의 설득력 여부는 수학적 존재들의 존재론에 상관적이다. 수학적 존재들을 감각적 존재들과 구분되는, 그보다 더 심층적인 실재들로 보는 한에서 근대 사유의 핵심은 수학에 있다는 생각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수학적 존재들이 형상들과 감각적 존재들 사이에 있다고 했던 플라톤에게서, 또는 극미의 존재들을 오로지 수학적 구조들(예컨대 텐서 방정식)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현대 물리학에서 성립할 것이다. 근대의 수학은 측정치들을 경제적으로(마하) 서술해 주는 개념적 도구일 뿐이다. 근대 과학의 플라톤주의적 해석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사용한 수학은 플라톤적 수학이기보다는 아르키메데스적 수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근대 과학에서 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수학은 서술을 위한 도구였지 설명을 위한 존재(aitia)는 아니었다. 근대적 사유는 수학적이지만, 그 테제가 존재론적 수준에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적 사유는 전근대 사유를 가능하게 했던 어떤 형이상학적 원리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렇다면 전근대 사유를 떠받치고 있던 형이상학의 근본 원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전근대 인식론의 밑뿌리에서 인식 주체의 동일성, 인식 객체의 동일성, 그리고 주체와 객체, 사유와 존재의 일치를 발견한다. 데카르트의 철학 역시 이런 토대 위에서 움직였다. 그에게 사유하는 주체는생각하는 것(res cogitans)이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res extensa)와 똑같이 사물/실체일 뿐이다

세계에 대한 탐구는 감성이 파악하는 감각적 성질들을 걷어버리고 두 실체의 일치가 이루어졌을 때 성립한다. 근대적 사유는 현상 저편과 감각 저편의 두 심층을 일치시키는 이 끈, 자연의 빛을 끊어버렸을 때 성립했다. 이런 과정은 칸트에게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근대적 사유의 전형을 칸트에게서 찾을 것인가? 칸트는 전근대 사유에서의 외관을 현상으로 대체함으로써 근대적 사유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그 현상을 주체에 의해일정하게 구성되는 인식 질료로 파악함으로써 근대 사유의 핵심을 비켜 갔다. 칸트는 객체의 동일성을 논파했지만, 객체의 가변성을 주체의 동일성으로 흡수함으로써 동일성 사유의 그늘 속에 머물렀다. 근대적 사유의 전반적인 흐름은 객체의 가변성과 주체의 가변성 사이에서 성립하는 우발성(contingence)을 그 핵으로 한다.

우발성을 기초로 한다는 것은 가변적 객체와 가변적 주체의 만남을 통해 형성되는 것, 그 이전에 어떤 것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이 만남에 의해 생겨난 결과를 순수하게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꽁트가 생각한 실증성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곧 경험을 통해서 가능하다

경험을 지배하는 밑바탕은 가시성, 보다 넓게는 감성이다. 이 감성을 통해 드러나는 소여들을 넓혀가고 그것을 가장 합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근대적 학문의 전반적인 흐름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경험론에 의해 논박 당하고, 라이프니츠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감각주의에 의해 논박 당하고, 독일 관념론이 실증주의에 의해 논박 당한 것은 근대적 사유의 전반적인 흐름에 있어 필연적인 것이었다

근대 사유는 우발성을 토대로 하는 경험의 사유이다. 그리고 경험의 한계는 끝없이 넓어지지만 결코 끝나지는 않으며, 때문에 인식에서의 유한성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경험주의/실증주의를 넘어서려는 현대 인식론이 바로 이 주어진 것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역시 조금도 우연이 아니다.(예컨대 바슐라르의 새로운 합리주의는 이 주어진 것에 대한 집요한 공격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는 주희에게서 전근대적 인식형이상학의 전형을 발견한다. 객체의 동일성은 에 의해 보장된다.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도 리는 있었다[未有天地之先 畢竟是先有此理]. 그리고 천지는 리에 입각해서 존재할 수 있었다[先有箇天理了 却有氣]. 이 점에서 리는 선험적이며 초월적이다. 천지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선험적이고, 천지와 분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초월적이다

그러한 현실적인 리는 늘 에 구현되어 존재한다. 인식은 기와의 부딪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부딪침을 통해 이루어진 경험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는 리가 전제된 차원에서 존재하며, 따라서 기와의 부딪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험도 리의 선험성을 전제해서 이루어진다경험적인 것은 우발적 차원에서 개별적인 사실을 낳는 것이 아니다. , 경험적인 현실이 모두 기로 구성된다 해도 기는 오로지 리의 마이너스적 차원에서만 존재한다

형상은 질료에 구현되어야 실존할 수 있지만 질료가 온전한 형상의 현존을 가로막듯이, 리는 기가 있어야 그 터잡을[掛塔] 곳이 있지만 기는 리의 순수성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진정한 인식은 기에 부딪쳐 생겨나는 경험을 넘어서는 데에서 성립한다. 객체의 동일성에 도달하는 것은 곧 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객체의 동일성과 더불어 주체의 동일성이 요청된다. 주희에게 인식의 주체는 마음[]이고, 마음이 우리 몸을 주관한다. 경험 세계의 모든 것은 기의 작용이지만, 마음은 극미의 기로 되어 있는 투명한[虛明] 존재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 알맹이다. 그러나 이 알맹이 속에 더 근본적인 알맹이가 들어 있다. 마음이 경험적 자아라면 은 선험적 자아이다.

그것은 참된 인식과 인의예지라는 도덕적 실체를 갖춘 本然의 성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본연지성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기질지성을 갖추고 있다. 본연지성은 개별적 실체들이 갖추고 있는 절대적 선이지만, 기질지성은 개별적 존재들에 묻어 있는 현실적인 기질들이다. 따라서 기질지성은 늘 본연지성에 대해 마이너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안의 도덕적 알맹이를 찾아가는 것은 마이너스 통장을 메워나가는 것과도 같다. 마치 거울의 떼를 벗기어내야 순수 투명한 본연의 거울이 보이듯이.

이제 이 주체의 동일성과 객체의 동일성 사이에 보다 핵심적인 동일성의 끈이 놓인다. 이러한 끈은 성즉리(性卽理)의 테제에서 가장 선명하고 극적으로 표현된다

성즉리의 테제를 통해 우주와 인간(과 다른 모든 개체들) 사이에 동일성(일정한 상응)이 성립한다그러나 리는 기에 가려 있고 본연지성은 기질지성에 가려 있다. 따라서 성즉리를 깨닫는 것은 곧 기를 정화해내는 것과도 같다

, 수준 낮은 경험은 수준 높은 경험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며, 궁극적으로 미망과 욕망의 장인 경험의 수준을 벗어나야 성즉리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그래서 사물에 나아가 그 하나 하나의 리를 궁구(窮究)하는 것은 곧 우리 안의 본연지성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기도하다. 존심(存心)과 궁리(窮理)는 거울 이미지를 형성한다리라는 객체의 동일성, 성이라는 주체의 동일성, 그리고 성즉리(性卽理)라는 주객 사이의 동일성을 통해 주자학이 성립했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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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15-05-19 16:05
 
동양과 서구사상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서로 연계되어 왔는가?
결국 주장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동서가 추구하는 본질적 사상은 다른가?
몽마르뜨 15-05-19 17:29
 
감성을 통해 드러나는 소여
I wish you the best of luck! 행운을 빕니다!
등대 15-05-19 20:08
 
인식론적 반성이 근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순신 15-05-19 20:32
 
성즉리의 테제를 통해 우주와 인간(과 다른 모든 개체들) 사이에 동일성(일정한 상응)이 성립한다.
 그러나 리는 기에 가려 있고 본연지성은 기질지성에 가려 있다.
따라서 성즉리를 깨닫는 것은 곧 기를 정화해내는 것과도 같다.
등대 15-05-19 20:32
 
본연지성은 개별적 실체들이 갖추고 있는 절대적 선
기질지성은 개별적 존재들에 묻어 있는 현실적인 기질
겨울 15-05-19 20:54
 
근대 인식론은 근대에 새롭게 이루어진 과학적 성과에 대한 메타적 반성으로부터 발아한 것이 아니다. 근대에 새롭게 형성된 인식론적 장 안에서 근대 과학이 가능했던 것이다
목화씨 15-05-19 22:09
 
수학적 존재들을 감각적 존재들과 구분
사오리 15-05-19 23:07
 
산과 숲은 경치 좋은 곳이지만 일단 집착하면 시장판이 되어 버리고, 글
과 그림은 고아한 일이지만 일단 탐내어 빠져들면 상품이 되어 버린다.
마음에 탐하고 집착함이 없으면 속세도 신선의 세계가 되고, 마음에 얽
매이고 연연함이 있으면 즐거운 세상도 고해가 된다.
혁명밀알 15-05-20 00:29
 
현실적인 리는 늘 氣에 구현되어 존재한다. 인식은 기와의 부딪침을 통해 이루어진다
명유리 15-05-20 07:05
 
경험을 지배하는 밑바탕은 가시성, 보다 넓게는 감성이다
산백초 15-05-20 19:15
 
대 과학에서 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수학은 서술을 위한 도구였지 설명을 위한 존재(aitia)는 아니었다. 근대적 사유는 수학적이지만, 그 테제가 존재론적 수준에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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