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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2-28 10:26
은신처에서 보낸 날들
 글쓴이 : 하얀민들레
 

은신처에서 보낸 날들 이미지



열다섯 탈북 소년이 중국 은신처에서 적어 내려간    
한국판 ‘안네의 일기’!

책 소개


“이번에는 큰아버지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실 것 같다”


96년 어느 날, 중국 연길에서 만난 한 탈북자 청년과 인연이 된 것을 시작으로, 문국한 씨는 생전 처음 북한의 처참한 실상을 알게 되었다. 그 즈음 북한에 연고가 있는 조선족 서 씨 여인을 만나 장마당에서 인육이 거래되고 사람들이 굶어죽는 북한의 현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이 비극을 모른 체 할 수 없다는 사명감에 시달리게 된다. 


배곯는 北어린이, 南보다 19cm 작아… '다른 인종' 우려 : 뉴스 : 동아일보


어느 날, 서 씨 여인의 꿈에 한 소년이 나타나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목을 졸랐다. 여인은 얼마 후 그 꽃제비 소년을 서시장 부근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이 책의 주인공 장길수 군과 인연이 되었다. 소년은 혼자가 아니었다. 외할머니를 시작으로 열다섯 명의 일가족 전체가 몇 차례에 걸쳐 탈북을 감행하다가, 일부는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던 결손가정이었다. 길수가족은 그때부터 문국한 씨를 큰아버지, 서 씨 여인을 큰어머니로 부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밟게 될 날만을 꿈에 그리며, 북한에 두고 온 나머지 식구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얼룩진 길수가족의 기약 없는 은신처 생활이 이어졌다. 지난한 기다림 속에서 대한민국으로 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절망이 짙어지는가 하면, 길수가족을 응원하는 방송이 전파를 타고 ‘길수가족 구명 운동본부’가 만들어졌을 때는, 한없는 희망이 생겨나기도 했다. 큰아버지는 이 모든 시선들을 감내하면서 한국에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아무런 대가없이 길수가족 전체를 중국에서 먹여 살리며 보살피고 있었다.

길수 가족은 매일 소원을 적은 종이학을 접었다. 그림 솜씨가 좋았던 길수 형제는 북한의 실상을 크레용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열다섯 살 길수 소년이 스스로 ‘문제 기록장’이라고 일컬은 이 일기장에는 생존 문제 못지않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던 질풍노도 시기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으려 노력하는 길수 군이 분에 못 이겨 일기를 써 내려갔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열다섯 살이었다.

대한민국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평화통일을 염원하던 때에, 중국의 은신처에서는 길수가족이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속에 대한민국으로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목숨처럼 자유를 갈망하는 한 탈북 소년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 밖이었다. 큰아버지 입에서는 좀처럼 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의견이 분분해져 서로 갈라져 싸우는가 하면, 큰어머니의 딸인 이 선생님은 은신처 식구들을 보살피며 심각한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다. 장마당 할머니와 은신처의 보호자, 그리고 길수가족 모두가 피를 말리는 나날들을 보냈다. 

좁고 갑갑한 은신처 안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다가도 이내 못마땅해 하는 날들이 사정없이 흘러갔다. 의심을 살까봐 물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한국에서 큰어머니가 사다주시는 신발을 신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길수는, 은신처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휘파람을 불었다가 일가족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기도 했다.

어느 날, 대련 은신처에 머물던 길수가 연길로 간 어머니의 전화 통화에서 위험을 직감했을 무렵, 어머니는 ‘큰아버지 곁을 떠나지 말라. 길수야, 우리 같이 살자!’던 통화를 끝으로, 한 탈북자의 밀고로 북송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자유의 땅 대한민국으로 가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평생 눈물이 날 일 앞에서, 길수 군은 자유가 목숨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는 절절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어머니를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며 이 일기는 끝을 맺는다.

머지않아, 큰아버지가 3년 여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구명운동을 펼친 끝에, 길수가족은 2001년 큰아버지의 인솔 끝에 버스와 열차를 타고 은신처를 벗어나 중국 북경의 유엔난민기구 진입에 성공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전 세계 외신으로부터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진입 사흘 후 중국을 벗어나 은신생활 22개월 만에 비로소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 땅에 도착했다.


책 속으로


오늘은 웬일인지 ‘큰아버지가 우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서 안 좋게 가셨기 때문이다.
--- p.58

어머니가 나가고 나면 중국 공안(경찰)에게 잡히지는 않았는지, 사고가 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나라 없는 백성,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속담과 같이, 북한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짐승같이 숨어 살아야 한다.
--- p.66

오늘 장춘에 있는 은신처로 갔던 장마당 할머니가 도착했다. 나는 ‘야, 좋은 소식이 있겠구나!’ 언제 한국으로 간다, 온다 하는 소리를 할 줄로 믿고 정말로 기뻐했다. 자나 깨나 손꼽아 기다리던 제일 큰 소식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소식은 전혀 없고 우리가 빨리 자유를 찾아가자면 글과 그림을 많이 쓰고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어머니가 책과 크레용을 가득 내놓을 땐 정말로 기가 막혔다.
--- p.84

한국 사람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남보다 무엇이 특출해서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이 그렇게 우러러 보는가? 모두가 키가 크고 잘생겼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코라도 다 삐죽하게 나왔을까? 나는 북한에서 살 때 텔레비전으로 한국 사람들이 거리에서 시위 투쟁하는 장면을 식구들하고 보았다. 그때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남조선은 못살고 거지 판이라더니 어디에 천이 많아서 구호들을 써 들고 다니고, 옷도 다 저렇게 잘 입었을까?” 하시곤 했다.
--- p.87

저녁에 KBS 방송을 들었다.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를 듣는데 ‘길수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길수가족’이 중국에 숨어 사는데 한국에 계시는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방송을 듣자마자 손뼉을 쳤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한국에 계시는 큰아버지가 얼마나 수고하시는지 절실히 느꼈다. 한국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북한의 현실을 보다 빨리 알리는 일인 것 같다.
--- p.106

우리는 1년에 잘해야 신발 두 켤레를 신을 수 있었다. 그 신발은 한 달만 신어도 다 헤져 기워야 하고, 기운 데를 또 기워서 신고 다녀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신발이 없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학교에 가기 싫었는데 신발이 없다는 구실이 생겨서 차라리 잘 됐다고들 한다.
--- p.110

어머니는 ‘너하고는 같이 못 살겠다’고 하시며 짐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가셨다. 어머니가 나가시니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래서 삼촌이 집에 두었던 술을 몽땅 마셔 버렸다. 평상시에 술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는데 오늘은 술에 취하고 싶었다. 그렇게 쓰던 술이 오늘은 그리 쓰지 않았다. 얼마 후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대문을 나서니 한쪽 벽 옆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그냥 못 본 척하고 지나갔다. 울고 있는 어머니를 힐끗 뒤돌아보니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 p.113

의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10위안짜리 목욕표를 주면서 목욕하고 점심도 먹으라고 또 50위안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한국사람 둘과 의사 선생님 그리고 학철이 아저씨와 나 이렇게 불고기 식당에 들어가 불고기를 실컷 먹었다. 참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되어 인연이 되었다. 그 의사 선생님은 베트남과 한국 등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무상으로 치료를 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너희들도 커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라.”고 말해주기까지 하였다.
--- p.133

큰어머니가 있을 땐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나마 든든했는데 늙은 장마당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더 뒤숭숭해진다. 우릴 죽으라고 내버려둔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런 안전 대책도 없다. 게다가 국경이 가까운 연변에서 의지할 사람도 없이 큰어머니마저 떠나갔으니 우린 잡히면 끝장이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안전만은 큰아버지 큰어머니도 책임을 못 진다.
--- p.143

오늘 오후 차로 장마당 할머니와 영국이 아버지가 이곳 대련 은신처를 떠났다. 연길의 집으로 갔는지 흑룡강으로 갔는지 정확히 모른다. 할머니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우리를 붙잡고 간곡히 부탁을 하셨다. “큰아버지를 영원히 따라야 한다. 그리고 여기의 규율을 잘 지켜야 해.”
--- p.146

큰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왜 너희들이 이곳 대련까지 왔는가. 우리가 출판하려는 책을 연길에서 썼기에, 연길이란 단어가 많이 들어가 있을 것이므로 공안들이 대 수색을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또한 북한의 특무들을 파견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렇게 되면 우리 신변이 위험할 것 같아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 p.148

북한 사람들이 주체사상으로 얼마나 무장되었는가는 다음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어느 한 곳에 ‘구호나무’가 있었다. 구호나무라면, 조선의 항일 빨치산 시기 빨치산들이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김일성 장군 만세!’ ‘일제를 타도하라!’ ‘조선의 해방은 멀지 않았다!’라고 쓴 글들을 항일 투쟁시기 유물이라고 하면서 기가 막히게 보호를 하던 나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구호나무가 있는 산에 불이 붙어 구호나무도 타게 될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17명의 20대 젊은 조선 인민군 병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그 나무를 끌어안고 보호해 살렸다. 구호나무 한 그루의 생명과 17명의 젊은 청년들의 생명을 바꾼 것이다. 어떤 생각으로 무장되었기에 나무 한 그루와 17명 전사들의 생명을 바꾸겠는가.
--- p.150

오후 3시경 삼촌과 나는 부엌 칸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니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래서 삼촌이 순간을 억제 못해 그런 것 같고, 나는 연길에서는 마음껏 소리도 치고 활개도 쳤었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못해 답답해서 그런 마음을 가졌고, 참지 못하고 창문가에 가서 휘파람을 불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15명 식구의 안전에 완전한 불안감을 갖다 준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은신처 문 밖을 나서는 날에는 우리들과의 인연은 끝장이라던 큰아버지의 무게 있는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지 않았는가. 큰아버지께서 오죽하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 p.154

버스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보니 한국으로 가는 배나 비행기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고, 그것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는 동안 버스는 종점에 닿았고, 우리는 바닷가로 갔다. ‘언제쯤 저 넓고 넓은 바다 위에 우리를 실은 배가 바다 물결의 환영과 축복을 받으면서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가려는지.’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처럼 넓고 넓은 세상에서 살고 싶었고, 무한한 자유를 찾고 싶었다. 나는 바다에게 ‘우리가 언제쯤 너희들처럼 무한한 자유를 가질 수 있겠느냐?’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 p.175

할머니에게서 어머니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참으로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식이었다. 비참하였다. 어머니가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다니...
--- p.438

꿈속에서 어느 하루도 어머니를 만나 보지 못한 적이 없고, 잠에서 깨면 온몸이 고된 일에 시달린 것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다. --- p.441



저자

장길수

1984년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교사인 아버지와 여군출신인 어머니 사이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창 공부할 중학교 2학년인 1999년 1월,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남은 식구들을 구하러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국경 경비대에게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던 끝에 극적으로 탈출했다. 1999년 8월, 중국 연길에서 조선족 여인 서영숙 씨와 만난 것을 계기로 문국한 씨와도 인연이 되었다. 문국한 씨는 길수 가족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의식주를 제공하고 보호해주었다. 저자는 그때부터 북한 실상을 알리는 크레용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중국 은신처 경험을 일기로 남겼다. 그가 그린 그림 일부는 「서울 NGO 세계대회」에 출품되어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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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민들레 21-12-28 10:36
 
‘나라 없는 백성,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속담과 같이, 북한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짐승같이 숨어 살아야 한다.
하얀민들레 21-12-28 10:37
 
우리가 빨리 자유를 찾아가자면 글과 그림을 많이 쓰고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어머니가 책과 크레용을 가득 내놓을 땐 정말로 기가 막혔다.
하얀민들레 21-12-28 10:39
 
그 의사 선생님은 베트남과 한국 등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무상으로 치료를 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너희들도 커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라.”고 말해주기까지 하였다.
하얀민들레 21-12-28 10:40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안전만은 큰아버지 큰어머니도 책임을 못 진다.
하얀민들레 21-12-28 10:42
 
나는 바다에게 ‘우리가 언제쯤 너희들처럼 무한한 자유를 가질 수 있겠느냐?’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늘배움 22-01-05 09:54
 
열다섯 탈북 소년이 중국 은신처에서 적어 내려간   
한국판 ‘안네의 일기’!
늘배움 22-01-05 09:55
 
외할머니를 시작으로 열다섯 명의 일가족 전체가 몇 차례에 걸쳐 탈북을 감행하다가, 일부는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던 결손가정이었다. 길수가족은 그때부터 문국한 씨를 큰아버지, 서 씨 여인을 큰어머니로 부르게 되었다.
늘배움 22-01-05 09:57
 
대한민국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평화통일을 염원하던 때에, 중국의 은신처에서는 길수가족이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속에 대한민국으로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목숨처럼 자유를 갈망하는 한 탈북 소년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 밖이었다.
늘배움 22-01-05 09:58
 
머지않아, 큰아버지가 3년 여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구명운동을 펼친 끝에, 길수가족은 2001년 큰아버지의 인솔 끝에 버스와 열차를 타고 은신처를 벗어나 중국 북경의 유엔난민기구 진입에 성공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늘배움 22-01-05 09:59
 
어머니가 나가고 나면 중국 공안(경찰)에게 잡히지는 않았는지, 사고가 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나라 없는 백성,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속담과 같이, 북한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짐승같이 숨어 살아야 한다.
겨울 22-01-05 16:29
 
그 즈음 북한에 연고가 있는 조선족 서 씨 여인을 만나 장마당에서 인육이 거래되고 사람들이 굶어죽는 북한의 현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이 비극을 모른 체 할 수 없다는 사명감에 시달리게 된다.
겨울 22-01-05 16:30
 
길수 가족은 매일 소원을 적은 종이학을 접었다.
겨울 22-01-05 16:31
 
어느 날, 대련 은신처에 머물던 길수가 연길로 간 어머니의 전화 통화에서 위험을 직감했을 무렵, 어머니는 ‘큰아버지 곁을 떠나지 말라. 길수야, 우리 같이 살자!’던 통화를 끝으로, 한 탈북자의 밀고로 북송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겨울 22-01-05 16:32
 
한국 사람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남보다 무엇이 특출해서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이 그렇게 우러러 보는가? 모두가 키가 크고 잘생겼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코라도 다 삐죽하게 나왔을까? 나는 북한에서 살 때 텔레비전으로 한국 사람들이 거리에서 시위 투쟁하는 장면을 식구들하고 보았다. 그때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남조선은 못살고 거지 판이라더니 어디에 천이 많아서 구호들을 써 들고 다니고, 옷도 다 저렇게 잘 입었을까?” 하시곤 했다.
겨울 22-01-05 16:32
 
할머니에게서 어머니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참으로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식이었다. 비참하였다. 어머니가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다니...
산백초 22-01-05 20:39
 
대한민국을 밟게 될 날만을 꿈에 그리며, 북한에 두고 온 나머지 식구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얼룩진 길수가족의 기약 없는 은신처 생활이 이어졌다.
산백초 22-01-05 20:39
 
열다섯 살 길수 소년이 스스로 ‘문제 기록장’이라고 일컬은 이 일기장에는 생존 문제 못지않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던 질풍노도 시기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산백초 22-01-05 20:40
 
가족들은 의견이 분분해져 서로 갈라져 싸우는가 하면, 큰어머니의 딸인 이 선생님은 은신처 식구들을 보살피며 심각한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다.
산백초 22-01-05 20:41
 
한국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북한의 현실을 보다 빨리 알리는 일인 것 같다.
산백초 22-01-05 20:42
 
그가 그린 그림 일부는 「서울 NGO 세계대회」에 출품되어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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